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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 [오마이포토] '두근두근 내인생' 조성목, '아빠 나 잘하고 있지?'

 <박헌영 평전>.
ⓒ 실천문학사(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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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발표대로 정말 남로당 고위 간부들이 일본과 미국의 간첩이었을까? 미국에 협조해 북한을 붕괴시키려 시도했을까?"

<박헌영 평전>(실천문학사, 654쪽)은 '공산주의자들이 왜 그들의 나라가 돼야 할 북한에서 거의 모두 죽거나 버림 받았는가' 하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1989년 구로공단의 노동운동을 다룬 장편 <파업>으로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고 <경성 트로이카>, <이현상 평전>으로 익숙한 소설가 안재성씨는 이에 대한 답변으로 박헌영을 등장시킨다. 박헌영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해답이 보인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렇게 단언한다.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라거나 불세출의 영웅이라 찬양하기는 어렵지만 결코 미국의 간첩 노릇을 했거나 비겁한 적은 없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제국주의에 온몸을 던져 싸운 애국자였고 이승만 파시즘에 맞선 민주주의자였다."

평전은 이 명제를 차근차근 증명한다. 박헌영의 출생에서 죽음까지의 과정을 때로는 다큐멘터리 영상처럼, 때로는 대하드라마처럼 꼼꼼하고 생생하게 기록·복원한다. 평전은 이를 통해 박헌영을 '미제의 간첩', '일제의 첩자'로 보는 북한의 결론을 뒤집고 있다.

"박헌영은 간첩 혐의를 단 한 번도 인정한 적 없다"

글쓴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도합 10년에 이르는 감옥살이가 일제와 타협한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북한의 법관들이 제대로 감옥살이를 해보지 못한 이들로 구성되어 '사상범 예비구금법'의 자세한 내용조차 알지 못한 소치였다."

"미국의 간첩이라는 근거는 더욱 우스꽝스러웠다. 박헌영이 접촉한 미국 측 인물들은 미군 사령관 하지 등 너무 잘 알려지거나 혹은 정보업무와 관련 없는 하급 장교들로 간첩행위를 위해 만난 인물들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대들이었다."

박헌영 재판을 직접 참관했던 북한 중앙방송위원장 남봉식의 증언을 통해 박헌영이 미제의 간첩임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증언이 허위임을 역설하기도 했다. 

"박헌영은 자기가 진짜 일본의 간첩이라거나 미국의 간첩이라는 진술을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다만 모든 것이 자기 잘못이라고만 진술했다."

 글쓴이에 의해 복권된 비운의 공산주의자들.
ⓒ <박헌영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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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은 '그런데도 북한 재판기록은 박헌영의 실제 발언 중 필요한 부분만을 인용하고 인민에게 사죄한다는 내용의 창작을 덧붙였다'고 지적했다.

글쓴이의 손에서 복권된 인물은 박헌영만이 아니다. 글쓴이는 정판사 사건의 주범으로 몰리자 월북했다가 박헌영과 함께 숙청당한 권오직, 소련에서 일제의 밀정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김단야,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였던 김재봉, 박헌영의 최측근이었던 이관술, 일제하 노동운동의 대표적 인물이던 이재유 등 비운의 공산주의자들도 이 책에서 깊이 있게 조명하고 있다. 

김일성과 북한에 대한 에누리 없는 평가

글쓴이는 박헌영과 공산주의자들이 북한에서 버림 받은 이유에 대해 "한국전쟁 패전의 일차적 책임자인 김일성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위기였다"며 "(김일성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생사를 걸어야 했고 (그 해답은) 2인자(박헌영)에게 책임을 떠미는 것이었다"고 못 박았다. 또 "공산주의운동사에는 수많은 종파들이 등장하지만, 김일성의 빨치산 파벌처럼 철저하게 배타적인 종파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비판한다.

평전의 '에필로그'는 본론보다 심각한 주제를 풀어내고 있다. 김일성과 북한 사회주의 실천 과정에 대해 에누리 없는 평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전은 북한이 남로당 숙청을 시작으로 다음에는 소련파를 제거했고, 그 다음에는 연안파를 숙청했으며, 그 후에는 항일유격대의 주력이던 갑산파들에 대한 대숙청으로 이어졌다며 1953년부터 1968년까지 15년 동안 대부분의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이 죽거나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어 "남한 권력의 주력이 친일파와 친미파들로 이뤄진 데 비해 북한 권력의 핵심이 항일빨치산파로 구성된 점 자체는 비난할 수 없는 일이었다"면서도 "다만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고민과 그 대중적 실천 경험이 부족한 군 출신들의 권력화는 북한을 질곡에 빠지게 했다"고 주장했다.  

"외세의존적 지도자 김일성, 피의 공화국 세운 이승만"

 1949년 3월 소련 최고회의 계단을 오르는 북한 지도부.
ⓒ <박헌영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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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권력에 대한 글쓴이의 비판은 이어진다.

그는 "김일성의 집권 50년은 주체사상이라는 이름의 자주노선으로 요약되지만 김일성이 죽는 그날까지, 주체와 자립은 구호요, 희망에 머물러 있었다"고 평했다. 이어 "민주주의 발전 정도와 경제력의 수준은 대체로 정비례한다는 세계사적인 경험은 사회주의 단계도 비켜가지 못했다"며 "김일성은 반제국주의의 상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주민을 외국의 무상 식량지원 없이는 버틸 수 없게 만든 외세 의존적 지도자로 기록되었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남한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이야말로 수십만의 무고한 동족의 주검 위에 세워진 피의 공화국"이고 "학살의 명분으로 제공된 민주주의란 것이 사실은 가진 자들의 이권에 불과했다"고 질책한다.

그렇다고 글쓴이가 '자유롭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안씨는 "불의의 지배 권력에 맞서, 인류 역사상 가장 희생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 투쟁한 이들이 공산주의자"였고 "비록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이상사회를 향한 인간의 여정이 멈춘다면 그날이 인류의 종말이 될 것"이라며 실천하는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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