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산마을 고등학교 풋살리그' 후기리그 득점왕상을 차지한 장영우 선수.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아주 소중한 상이다.

'2009 산마을 고등학교 풋살리그' 후기리그 득점왕상을 차지한 장영우 선수.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아주 소중한 상이다. ⓒ 장영훈


"후기리그 득점왕상. 3학년 1반 장영우. 위 선수는 2009 풋살 후기리그에서 최종 공격수로서 날카로운 패싱능력과 뛰어난 골 감각으로 가장 많은 득점을 하였기에 이 상장을 드립니다."    -2009년 12월 23일, 산마을고등학교장 윤영소.

내 이름이 호명됐다. 일주일 전부터 수상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머릿속이 까매졌다. '수상 소감은 어떻게 말하지?', '감사한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은데 어떡하지?' 많은 걱정을 안고 'MBC 연기대상'이나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나 볼법한 레드카펫을 지나 단상위에 섰다. 단상 바로 옆에 있는 화면에는 내 얼굴이 떠있었고 그 밑에는 간략한 프로필이 소개됐다.

"감사합니다. 졸업을 앞두고 받은 상이라 더 기쁩니다. 언제나 그랬듯 상을 받는 일은 무척 기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상을 받을 만한 사람인가?' 되돌아보게 됩니다. 앞으로도 풋살리그 많이 아껴주시고, 풋살하다 공 터지면 전화주세요. 바로 사서 택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지? 단상에 오르자 말이 술술 나왔다. 수상 발표 전까지 덜덜 떨었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수상 소감을 거침없이 발표했다. 특히 진지하게 수상 소감을 들었던 전교생들은 '공 터지면 전화주세요. 바로 사서 택배로 보내드리겠습니다'라는 마지막 말에서 '빵' 터졌다.

FC 산마을 소속으로 후기리그 내내 함께 뛴 동료들은 영화 <디워> 이무기에 가까운 괴성을 내질렀다. 평소 나의 축구 실력을 동경(?)하는 몇몇 직속 후배들도 손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박수를 쳤다. 물론 강압은 절대 아니었다.

체감 기온 영하 10도, 몸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한기 때문에 가만히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추웠던 지난 12월 23일. 강화도에 있는 산마을 고등학교에서 '2009 산마을 풋살 후기리그' 시상식이 열렸다.

후기리그 시상식에서 나는 남자부 득점왕상을 거머쥐었다. 후기리그 23경기에 나와 무려 23골을 터뜨렸고, 총 6개팀 가운데 소속팀을 3위(9승 6무 8패)에 올려놓은 혁혁한 공을 인정받은 것. 전기리그에도 23경기에 나가 18골을 터트렸으나 후반기엔 더욱 물오른 골감각을 선보였다. 상장과 함께 부상으로는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페르난도 토레스 선수가 신을 법한 빨간색 스타킹, 부상 방지를 위해 꼭 필요한 무릎 보호대를 받았다.

지난 2007년 처음 리그에 데뷔해서 득점 순위 5위권 안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며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선배들에 밀려 득점왕 고비를 마셨던 나는 3년 만에 한을 풀었다. 얼마전, 서울 서대문구 그랜드힐튼호텔에서 펼쳐졌던 '2009 K-리그 대상'에서 득점왕을 수상한 동국이 형처럼.

나는 우리나라 공격수 중에 이동국 선수를 가장 좋아한다. 언제 어디서나 골을 터뜨리는 동물적인 감각, 뛰어난 골 결정력에 전매특허인 발리슛. 이동국에게는 '최고의 공격수'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그리고 내 별명 역시 '이동국'이다. 산마을의 이동국이니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산동국' 정도 되겠다. 왜 산동국이냐고? 이동국과 플레이가 비슷하다 못해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182cm-70kg의 탄탄한 체격조건을 비롯해 골문 앞에서 얄미울 정도로 침착하며 좌우 측면 크로스를 한 치 망설임 없이 발리슛으로 연결하는 고감도 슈팅능력까지. 나는 이동국을 닮았다. '득점왕이 본 득점왕', 지금부터 시작된다.

관련기사 ☞
산마을 풋살리그, 프리미어리그 못잖아요!

기나긴 슬럼프 탈출, 화려한 부활의 날갯짓 펼치다


 풋살리그에서 3위를 차지한 'FC 산마을', 득점왕을 차지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공헌을 해준 고마운 친구, 후배, 선생님

풋살리그에서 3위를 차지한 'FC 산마을', 득점왕을 차지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공헌을 해준 고마운 친구, 후배, 선생님 ⓒ 엄예슬


참 외롭고 기나긴 시간이었다.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나는 지난해 산마을 풋살리그 23경기에서 7골을 넣었다. 소속팀인 AS산마을은 6개 팀 중 6위를 기록했다. '쪽' 팔렸다. 주위에서는 '키도 크고 멀쩡한 놈이 너무 골을 못 넣는다'고 비아냥댔다. 정말이지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보다 더 슬프고 힘들었다.

동국이 형의 심정이 이해됐다. 지난해 8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에서 K리그 성남 일화로 팀을 옮긴 동국이형은 14경기에 출장해 2골 2도움을 기록,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둬 많은 축구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성남 팬들은 독일 분데스리가를 비롯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선진 축구를 경험한 동국이형에게 달라진 모습을 기대했지만, 골 결정력 슈팅 감각 팀플레이 등 별로 달라진 점이 없었다. 내심 화려한 부활을 기대했던 동국이형의 꿈은 모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러나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간판 공격수' 조재진을 일본 J리그 감바 오사카로 이적시킨 최강희 전북 감독이 이동국을 영입한 것. 팬들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판했지만 나는 예상했다. 녹색 유니폼을 입고 전주성(전주월드컵경기장)을 펄펄 나는 동국이형의 모습을. 그리고 골을 넣고 펼치는 '사자왕'의 포효를. 이러한 내 예상은 기가 막히게 떨어졌다.

유니폼을 갈아입은 동국이형은 180도 달라졌다. 최전방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미드필드 지역까지 내려와 동료 선수들에게 공격 기회를 만들어주었고,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수비 지역으로 뛰어와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기도 했다.

동국이형에게서 '왕년에 볼 좀 찼다'는 권위의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달라진 동국이형은 올 시즌 해트트릭을 무려 2번 했다. 팀이 위기에 처했을 땐 노련한 플레이로 후배들을 독려, 전북 해결사 역할을 자처했다.

불과 1년 만에 확 바뀐 나와 동국이형. 부활 요인은 의외로 간단하다. 골 지역 앞에서 욕심을 버리고 침착하게 슈팅을 한 점. 개인 득점에 연연하지 않고 팀플레이에 신경 쓰다 보니 저절로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한 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슈팅 연습을 했다는 점까지.

동료와 감독 없이 절대 못받는 상, '득점왕'


 이동국 선수와 최강희 감독이 서로 껴안으며 '2009 K-리그' 우승 기쁨을 나누고 있다.

이동국 선수와 최강희 감독이 서로 껴안으며 '2009 K-리그' 우승 기쁨을 나누고 있다. ⓒ 전북 현대



그렇다고 나와 동국이형이 혼자 잘나서 득점왕에 오른 건 절대 아니다. 나에겐 5명의 FC 산마을 동료 선수들이 있었고, 동국이형에게도 루이스-최태욱-에닝요로 이어지는 '판타스틱 4'와 '강희대제' 최강희 감독이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축구는 팀 경기다.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경기가 절대 아니고 어느 선수 하나 호흡이 맞지 않으면 '골'을 만들 수 없다. 그라운드에 있는 11명의 선수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공을 차야 골을 만들 수 있고 이길 수 있다. 득점왕이 되는 길은 무지 험난했다. 시즌 중간 갑작스럽게 부상도 찾아왔고 고3이다보니 '대학 입시'라는 큰 변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도 모르게 찾아온 슬럼프는 정말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는 긴 터널과 같았다.그럴 때마다 든든히 내 곁을 지켜준 동갑내기 남아는 '장영우 득점왕 등극'의 일등 공신이다. 중학교 때부터 담배를 펴 저질 체력을 자랑하지만 남아의 최대장점은 포기하지 않는 집중력이다. 11명이 뛰는 축구와 달리 5명이 뛰는 풋살은 체력 부담이 엄청 크다.

'골키퍼-수비-미드필드-공격'이라는 경기의 큰 틀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지만, 운동장을 누비는 선수가 한정돼 있다 보니 골키퍼를 제외한 선수 모두 수비수이자 미드필더, 공격수다.

양평에서 온 남아는 경기마다 데이비드 베컴보다 조금 부정확한 '양평 크로스'를 올렸고, 문전 앞에서 호시탐탐 득점 기회를 노린 나는 남아의 크로스를 야금야금 골로 넣었다. '포텐(잠재력이 드디어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뜻)'이 폭발할 때면 우린 물 만난 고기가 됐다.

우린 마치 골에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상대 골문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가했고, 산마을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는 10골을 기록하는 '괴력'을 발휘한 바 있다. 그 경기에서 나는 무려 5골을 터뜨렸었다.

FC 산마을의 감독님이자 우리 학교 체육 선생님이신 박충환 선생님의 도움도 컸다. 시즌 초반, 팀워크가 맞지 않아 서로 욕하고 싸울 때 우리를 사랑으로 보듬어 주셨다. 호주 유학시절 아마추어리그 선수로도 활동하신 선생님의 별명은 '루니 박'. '득점의 달인' 루니와 '산소탱크' 박지성이 결합된 신들린 플레이를 선보이기 때문.

가운데 있는 나를 중심으로 오른쪽에선 남아의 자로 잰 듯한 '양평 크로스'가 내 발 앞까지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도착했고, 왼쪽과 중앙을 넘나드는 '루니 박'은 프로 선수 못지않게 잘 뛰었다. 이렇게 득점왕을 차지하는 데는 주위 동료들의 도움이 컸다.

동료들의 도움과 희생이 없었다면 득점왕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1학년 신입생으로 골키퍼를 본 창현이가 그랬다. "형은 제 인생의 히어로에요!"

내가 동료들의 전폭적인 도움에 의해 득점왕을 탄 것처럼 동국이형도 '판타스틱 4'의 도움이 컸다. 루이스-최태욱-에닝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K리그 최고 공격수들은 동국이형과 함께 전북의 우승을 이끌었다.

동국이형과 마찬가지로 K리그 무대에서 여러 번 실패와 좌절을 맛봤던 최태욱은 '날쌘돌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빠른 돌파에 이은 크로스로 동국이형의 '헤딩 슛'을 이끌어냈다.

루이스와 에닝요는 동국이형과 '찰떡호흡'을 선보였다. 박지성 선수가 즐겨한다는 위닝 게임에서나 볼법한 3자 패스, 그리고 환상적인 2대1 돌파에 이은 깔끔한 마무리까지.

세 선수는 올 시즌 공격수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기술과 슈팅을 선보였다. 그 결과 동국이형은 득점왕을 차지했고, 전북은 창단 후 15년 만에 K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남아공 월드컵 우리 모두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에게 있어 2009년은 꿈만 같았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풋살리그 득점왕이라는 큰 타이틀을 거머쥐어서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1년 동안 정말 고생했다. 공부하면서 공차는 일,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매 경기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로 득점왕이라는 상도 타게 됐다.

지난 6월 27일 내셔널리그 예산 FC-대전 한국수력원자력 경기를 보러 예산 종합운동장을 찾은 적이 있다. 평소 내셔널리그 연맹 소속 기자로 활동하던 탓에 친하게 지내는 예산 구단 관계자와 본부석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경기를 봤다.

예상대로(?) 경기는 3-3 무승부로 끝났고, 구단 관계자는 나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우리 애들이 너무 골을 못 넣는다. 차라리 영우가 들어가 뛰는 게 낫겠다. 우리 숙소로 올 생각 없느냐?"고 말했다.

당황한 나는 '썩소'를 날리며 대답했다. "그 말 진심이세요?" 그 분은 "당연히 진심이지!"라고 답했다. 선수들 훈련할 때 운동장 트랙 한 쪽에서 공을 갖고 놀던 나의 트래핑 실력을 봤다며 큰 키에 발재간이 좋아 보인다는 말을 남기면서. 객관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기분은 좋았지만 참 당황스러웠다.

  "파주 NFC 잔디 밟아 봤어?" 안 밟아봤으면 말을 말어! 기자단 초청 축구대회에 출전해 베스트 골을 수상한 나

"파주 NFC 잔디 밟아 봤어?" 안 밟아봤으면 말을 말어! 기자단 초청 축구대회에 출전해 베스트 골을 수상한 나 ⓒ 강나리


2008년 10월 28일에는 파주 NFC에서 열린 '제3회 내셔널리그 기자단 초청 친선축구대회'에서는 내셔널리그 기자단 대표로 선발 출전, 3피리어드 종료 직전 미드필드 중앙에서 벼락 같은 중거리 슛으로 골을 기록한 바 있다.

이 골을 벤치에서 지켜본 '내셔널리그 기자단'의 김기복 실업축구연맹 부회장은 "쟤 누구야? 슈팅이 아주 발등에 얹혔네. 실력이 장난 아닌데…"라며 박수를 쳐주시며 나의 축구 실력에 혀룰 내둘렀다.

함께 경기에 나섰던 '내셔널리그 기자단'은 경기 후 뒤풀이 자리에서 내게 비공식적으로 평점 10점(?)을 부여하기도.

태어나서 처음 밟은 파주 NFC의 최고급 잔디, 박지성 선수가 씻었던 샤워실, 히딩크 감독이 앉았던 벤치 등 '우리나라에서 축구하기 제일 좋은' 파주 NFC는 내게 '베스트 골 상'을 선물했다.

선배 기자들은 '젊음이 좋다. 영우니까 할 수 있는 슈팅'이라며 나의 플레이를 극찬했고,  상품으로 받은 험멜사의 '내셔널리그 공인구'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용 볼'로 사용하고 있다.

올해를 끝으로 풋살리그 3년 생활을 마친 내 목표는 축구기자가 되어 '축구기자 축구팀'을 만드는 것이다. 이름 그대로 현직 축구 기자만 입단할 수 있는 팀이고 감독은 축구 실력이 좋은(?) 언론사 축구담당 부장님들께서 맡아주실 거다. 물론 웬만큼 볼을 차야 입단할 수 있는 팀이다.

축구 기자가 축구기자 전용 축구팀을 만들어 아마추어 축구리그나 K3리그에 진출하는 꿈, 생각만 해도 너무 설렌다. 그렇다면 동국이형의 2010년 꿈은 무엇일까?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어 생애 첫 월드컵 본선 출전을 꿈꾸고 있는 동국이형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어 생애 첫 월드컵 본선 출전을 꿈꾸고 있는 동국이형 ⓒ 전북 현대


굳이 여쭤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출전. 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눈물이 글썽 거릴 정도지만, 동국이형은 지금까지 월드컵 본선 무대를 제대로 밟아본 적이 없다. 1998년 월드컵 본선 한 경기에 교체 출전해서 13분 뛴 게 전부다.

월드컵 참가 48년 만에 4강에 올랐던 2002년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엔트리 탈락 이후 4년 만에 2006 독일 월드컵 출전을 노렸지만, 그 해 4월 5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K리그 경기에서 오른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을 입어 월드컵 참가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런 동국이형이 올해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지난 파라과이와의 평가전(8월 12일)에 출전했고, 지난달 15일 덴마크와의 경기에서도 선발로 출장했다. 허정무 축구대표팀 감독은 K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화려하게 부활한 동국이형을 일찌감치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시켰고,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도 무난히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인생사 새옹지마'란 옛말이 있다. '거친 풍파와 역경을 맞이했지만 언제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 모른다. 동국이형은 거친 풍파와 역경을 이겨냈다.

남아공 월드컵에 나가 한국을 사상 첫 원정 16강으로 이끌 준비도 마쳤다. 초록 그라운드를 누비며 힘차게 포효할 이동국이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칠 그 날이 머지않았다.

산마을 야생 축구를 마스터한 내가 대학에 가서도 아마추어 선수로 활동, 열심히 몸을 만들어 축구 기자가 된 뒤, 축구기자 축구단을 만들 그 날도 머지않았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일 아침부터 동네 뒷산을 올라야겠다.

축구 이동국 장영우 득점왕 남아공 월드컵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