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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문을 잠궈서 산타가 못왔잖아!

 

"엄마, 올해는 꼭 문을 열고 자."

"왜?"

 

"작년에 엄마가 문을 잠그고 자서 산타 할아버지가 못 왔잖아. "

"그래서 산타가 못 오신 거래?"

 

"그럼. 우리집에 굴뚝도 없는데 산타 할아버지가 어떻게 들어와? 문을 열고 자야지."

"엄마가 큰 실수를 했네. 올해는 꼭 문을 열고 잘게."

 

"이번엔 와야할 텐데. 근데 엄마, 애들이 그러는데 산타가 부모님이라고 하더라."

"뭐? 부모님? 난 아닌데? 너희 학교 애들은 착한 일을 안해서 산타한테 선물을 못받으니까 부모가 준 거겠지. "

 

"맞아. 그럴지도 몰라. 암튼 애들이 그렇게 말했어."

"니가 받은 선물은 엄마가 구하기 힘든 거야. 난 아니야."

 

"하긴 그거 외국에서 온 거잖아. 그것도 중국."

"... 그러게. 물 건너서 온 걸 엄마가 어떻게 사겠니...(쩝..)"

 

중국에서 온 것이 외국에서 온 것이라... 말은 맞네

 

딸 때문에 웃겨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외국에서 온 거라는 말에 밥알이 다 튈 뻔했습니다. 어디가서 6학년이란 소리를 안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작년 크리스 마스 이브에 일이 많아 선물을 준비 못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딸은 매년 그렇듯이 산타가 머리맡에 선물을 놓고 갈 거라는 생각에 잠을 자다 깨다 반복하며 머리맡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아침까지도 없는 선물 때문에 얼마나 상심했는지 모릅니다.

 

언니는 별로 착하지 않아서 산타가 선물을 안 줄 것을 알지만 자기는 착하기도 하고 아직 초등생이니 선물을 줄 거라 굳게 확신했는데 깨졌으니 실망이 클밖에요. 아마 올해가 동화책 속에 나오는 산타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적 우리집에는 한번도 오지 않았던 산타

 

산타를 기다리는 딸을 보면서 어릴적 산타를 기다렸던 제 마음이 보였습니다. 어릴적 산타는 유독 우리집에는 단 한번도 오지 않으셨습니다. 매년 양말을 머리맡에 두고 잤지만 한번도 그 양말 속에서 나를 기쁘게 하는 '행복'이란 선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모르지만 저는 산타를 무척 기다렸습니다.   

 

상상을 잘하는 저는 산타를 있다고 믿고 싶었고, 부모 산타가 뭔가를 해주길 기대했습니다. 그것이 부모의 관심이든, 애정어린 한마디든, 아주 사소한 것이든 상관없이 내 자신이 특별한 존재로서의 특별한 선물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부모님은 먹고 사는 데 바쁘셨기에 자식의 이런 감상적인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셨고, 결정적으로 크리스마스에 오는 산타를 알지도 못하셨습니다.

 

어른이 된 후에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왜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안 줬어? 난 맨날 양말 걸어두고 잤는데?"

 

"양말을 와 걸어놓고 자노? 내는 그런거 주는지도 몰랐는데? 니도 자식 다섯 키워 봐라. 산타가 뭐꼬? 날짜가 우찌 가는 줄도 모르고 산게 이 나이 됐다 아이가."

 

산타가 될 수 없었던 부모님에 대한 이해

 

친정엄마의 그 한숨에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또 놀랐습니다. 엄마가 산타를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으셨구나. 엄마의 입장에서는 그런 날 자식들에게 선물을 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있지 못했던 겁니다. 더군다나 겨울은 여름에 비해서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엄마는 걱정이 더 많으셨을 테지요.

 

엄마에게 솔직하게 물어본 이후, 전 오히려 우리집에 산타가 오지 못했던 이유가 충분히 이해도 되고, 섭섭한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만약 안 물어봤다면 전 여전히 '왜 우리 부모는 남들 부모처럼 자식한테 정서적인 행복을 안 준 거야, 난 왜 이런 집에서 태어난 거야'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전 어른이 되면, 자식을 낳으면, 아이 마음에 동심의 산타를 선물하는 부모가 되어야지 다짐했습니다. 그 덕분에 제 딸들의 머리맡에는 산타의 냄새가 나는 선물들이 매년 찾아왔습니다. 헌데 작년은 놓쳤네요. 실망하는 딸에게는 산타가 못 온 이유를 엄마가 깜박잊고 현관문을 잠궈서 산타할아버지가 못오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난 책 선물은 싫어. 산타가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둘째 딸은 순진해서(?) 제 말을 그대로 믿습니다. 언니가 아무리 산타의 정체를 밝히려고 해도 눈치를 못채서 언니의 속을 터지게 하고, 저는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습니다. 큰딸에 비해 모든 것이 다 순진한 둘째입니다. 큰딸은 초등 4학년때 산타가 준 책에 쓰인 글씨체와 엄마의 글씨체가 같은 걸 알고 모든 걸 파악했습니다. 그 뒤로 제게 "난 책 선물은 싫어. 산타가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큰딸은 선물 안 줍니다. ^^

 

올해는 문을 잠그지 말라는 딸의 신신당부를 가슴 깊이 새기며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산타의 선물을 준비하려는데 어떤 선물을 할까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크리스마스, #산타할아버지, #동심, #부모님,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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