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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동작동 국립묘지 29번 묘역에서 '고 김오랑 중령 3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12일 오후 동작동 국립묘지 29번 묘역에서 '고 김오랑 중령 3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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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독재가 막을 내린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았던 그해 바로 오늘, 이른바 '서울의 봄'을 예감케 하며 젖어들던 역사의 순리를 한 순간에 산산조각 내며 또다시 엄동설한으로 회귀시키던 역사의 반동 앞에서 고 김오랑 중령 당신은 온몸으로 결연히 저항하며 나섰습니다.

사전에 이미 육사 동기생들로부터 상황을 전달 받고 피신을 권유 받았음에도 자신이 가야할 길을 당당히 굳히고 있었던 당신이었습니다. 칼로 일어선 자들의 오만보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가 먼저였으며 직속상관의 보호가 먼저였습니다."

12일 오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묘지 29번 묘역에서 '고 김오랑 중령 3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지난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쿠데타군으로부터 직속상관이던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보호하려다 6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숨진 고 김 중령(당시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을 추모하는 이날 행사에는 고인의 조카 김영진씨와 친구를 비롯한 평화재향군인회, 민주군인회 회원 등 2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날 추도사를 한 김용환 '고 김오랑 추모사업회'(아래 추모사업회) 회장은 "고 김 중령은 하나회라는 초유의 패거리 반란군에 홀로 맞서 고독한 전투를 벌였다"며 "만약에 기꺼이 몸을 던져 반란을 단죄했던 비운의 군인 김오랑 마저 없었다면 우리 군의 현대사는 오로지 참담의 역사, 그 자체가 되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그는 "마땅히 진정한 참 군인의 길을 걸어간 고 김 중령의 삶과 정신을 대한민국 국군의 정훈자료로 올림으로써 군과 군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고 후대의 귀감으로 남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데타군 박종규 소장, 전화로 용서 구해

'고 김오랑 추모 사업회' 김준철씨가 준비한 제수를 차리고 있다.
 '고 김오랑 추모 사업회' 김준철씨가 준비한 제수를 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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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오랑 추모 사업회' 김준철씨가 준비한 제수를 차리고 있다.
 '고 김오랑 추모 사업회' 김준철씨가 준비한 제수를 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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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식 참석자들이 고 김오랑 중령의 영전에 묵념을 하고 있다.
 추도식 참석자들이 고 김오랑 중령의 영전에 묵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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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추도식에는 12·12 반란 당시 쿠데타군에 가담했던 박종규 예비역 소장이 용서를 구하는 전화를 해온 사실이 소개되어 눈길을 끌었다. 당시 3공수여단 15대대장이었던 박 씨는 최세창 여단장의 지시에 따라 부하들을 이끌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러 갔다가 고 김 중령과 교전을 벌여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당사자다.  

추모사업회 김준철씨는 "3일 전 박 소장이 '용서를 구한다'는 전화를 해왔다"며 "박 소장이 '30년 전 그날, 사랑하는 후배 김오랑도 잃었지만, 내가 데리고 갔던 부하 3명도 불구가 되었다. 그 부하 중 나아무개 대위는 암으로 내일을 기약 못하는 상황이고, 나도 올해 식도암 4기 선고를 받았다, 하늘의 벌인지도 모르겠다, 부디 모든 분들이 12·12에 참여했던 나와 나의 부하들을 용서해 달라'고 전해왔다"고 소개했다.

김씨는 "박 소장이 '나에게도 지난 30년은 고통스러운 세월이었다, 특히 12‧12가 (법원에 의해) 군사반란으로 규정된 지난 97년 이후, 명예도 잃고 연금도 박탈되어 근근이 살아왔다'며 회한을 토로했다"고 밝혔다.  

추모사업회는 "지난 11월 11일 '고 김오랑 중령  무공훈장 추서 및 추모비 건립 건의안'을 여야 국회의원 48명이 공동 발의하여 국회 본회의에 제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국회의원들은 아무도 이 법안에 서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12·12 반란의 주역 중 하나인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은 지난 10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12·12는 쿠테타가 아닌 정당한 수사권 행사"였다며 지난 95년 문민정부의 12·12 재심의에 대해 "우리나라 좌파가 엄청난 승리를 한 것이 당시의 재심의"였다고 주장했다.


태그:#12?12 반란, #김오랑 중령, #12?12, #김오랑추모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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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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