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지난 7일 오전 합정동 노무현 재단에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데 대해 "저는 단돈 일원도 받은 일이 없다. 결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지난 7일 오전 합정동 노무현 재단에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데 대해 "저는 단돈 일원도 받은 일이 없다. 결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중국 춘추전국시대 위나라의 충신 방공이라는 사람이 인질이 된 태자를 따라 조나라의 한단으로 떠나면서 왕에게 물었다.

"만약 한 사람이 시장에 나타나 호랑이가 나왔다고 소리를 지르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믿지 않겠다." 방공이 두 번째로 물었다. "그럼 두 사람이 시장에 나타나 호랑이가 나왔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왕의 대답이 같았다. "믿지 않겠다."

마지막으로 방공이 물었다. "만약 세 사람이 시장에 나타나 호랑이가 나왔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그러면 믿게 될 것이다."

방공은 "시장에 호랑이가 있을 리 없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세 사람이 말을 하면 없는 호랑이도 있는 것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떠난 뒤 저를 모략하는 사람은 세 사람 이상 될 것입니다. 부디 왕께서는 현명하게 들으시기 바랍니다"라고 간언한 뒤 적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훗날 방공은 인질에서 풀려난 뒤에도 끝내 섬기던 왕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주변의 간신들이 방공을 중상모략 해댄 탓이다. <한비자>에 나오는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고사다. 

노 전 대통령을 모욕한 검찰-언론-정치권의 '삼인성호'

최근 검찰이 한명숙 전 참여정부 국무총리를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한 뒤 소환을 통보해 파장이 커지고 있다. 한 전 총리 측은 "단돈 1원도 받은 적이 없다"며 검찰의 표적수사를 주장하고 있다. 검찰을 통해 '정치적 반대파'에 도덕적 타격을 입히려는 권력자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는 반발이다.

검찰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범죄 혐의를 엄정 수사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한 전 총리의 뇌물 수수 주장은 밝혀진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도 검찰은 일부 언론을 통해 한 전 총리의 혐의 사실을 끊임없이 흘리고 있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곽 전 사장은 "양복 주머니 한쪽에 2만 달러, 다른 한쪽에 3만 달러를 넣고 삼청동 총리 공관을 찾아가 한명숙 전 총리에게 직접 전달했다"는 진술을 했다고 한다. 이는 검찰 수사 관계자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얘기다. 검찰이 한 전 총리 소환을 앞두고 피의사실을 불법으로 공표하며 언론플레이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4월 30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대국민 사과의 말을 한뒤 검찰에 출석하기 위해 사저를 나서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4월 30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대국민 사과의 말을 한뒤 검찰에 출석하기 위해 사저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사실 검찰의 불법 피의사실 공표로 피해를 본 정치인들은 한 둘이 아니다. 대표적인 피해자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불과 6개월 전인 지난 5월, 국민들은 전직 대통령이 퇴임한 지 1년 3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지켜봐야 했다.

이 때도 문제가 된 것은 검찰의 불법 생중계였다. '검찰-언론-정치권' 3인이 확인되지도 않은 피의사실을 주거니받거니 발표하고 부풀려 전직 대통령을 모욕한 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검찰이 "1억원짜리 피아제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말하면, 언론은 "봉하마을 논두렁에 사람들이 몰린다"고 비아냥거리는 식이었다. 정치권까지 가세한 3인의 조리돌림 속에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졌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모인 500만 조문객의 비판 여론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검찰은 또 다시 '삼인성호' 공작을 시작한 모습이다. '노무현→ 한명숙'으로 표적만 바뀌었을 뿐, 현재 검찰과 일부 언론의 주고 받기 행태는 노 전 대통령 사건과 닮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번엔 검찰의 뜻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시 당하지 않겠다"며 반격에 나선 한 전 총리 측의 기세가 만만찮다. 여당 내에서조차 검찰의 피의사실공표를 문제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야당은 이 참에 검찰 개혁을 해치워야 한다며 칼을 갈고 있다.

검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제멋대로 '귀신' 그리지 않기를

한명숙 사건의 파장을 최소화하려면, 무엇보다 검찰이 실체적 진실을 빨리 밝혀내야 한다. 사실은 사실대로, 거짓은 거짓대로 엄정하고 중립적으로 수사하면 된다. 물론 확인되지 않는 사실을 뒷구멍으로 흘려주는 불법행위를 먼저 중단해야 한다.

이왕 <한비자>를 언급한 김에 고사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한비자>에는 제나라 왕이 그림 잘 그리는 화객(畵客)과 나눈 대화도 소개된다.

제나라 왕이 화객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가장 그리기 어려운가". 화객이 대답하기를 "개나 말을 그리기가 가장 어렵습니다"라고 했다. 제나라 왕이 "그럼 어떤 것이 가장 그리기 쉬운가"라고 묻자 화객은 "귀신을 그리기가 가장 쉽다"고 답했다.

왕이 이유를 묻자 화객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개나 말은 누구나 아침 저녁으로 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귀신은 형체가 보이지 않으니 아무렇게나 그려도 아주 쉽습니다."

실체적 진실이 국민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검찰이 제멋대로 '귀신'을 그리지 않기를 바란다.


태그:#한명숙, #피의사실공표, #검찰, #삼인성호, #한비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