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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서 한국 다니러 오신 지성수 목사님과 함께 지성수 목사님 이름을 안 지 20년. 두어번 만나뵌 지 15년 정도 되었네요. 항상 멋지게 사셔 그런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는 듯합니다. 반가웠습니다.
▲ 호주서 한국 다니러 오신 지성수 목사님과 함께 지성수 목사님 이름을 안 지 20년. 두어번 만나뵌 지 15년 정도 되었네요. 항상 멋지게 사셔 그런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는 듯합니다. 반가웠습니다.
ⓒ 모 택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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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카페에 '시드니 사랑방 모임'이 있습니다. 1년 전 오마이뉴스에 올려진 제 기사거리를 보고 쪽지가 와서 다시금 온라인으로나마 만나뵈던 그리운 지성수 목사님이 거기 계십니다. 그렇게 온라인으로 소식을 주고 받고 있었는데 지성수 목사님이 한국을 방문한다고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저는 회사에 다녀 목사님이 참 그립고 뵙고 싶지만 못 뵙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12월 5일 저녁 무렵 부산 광안리 한 콘도에 머무를 것이라는 쪽지가 왔습니다. 6일 일요일 17시까지 출근하면 되니 토요일 부산 가서 목사님과 하룻밤 자고 다음날 6일 평화교회에서 예배 드리니 목사님 설교 듣고 점심 같이 하고 울산 오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지성수 목사님은 그냥 일반적으로 아는 목사님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아는 목사님이라면 안부 전화나 하고 말았을 일입니다. 하지만 지성수 목사님은 저에게 매우 특별한 분입니다. 지성수 목사님 직함을 들어 알게 된 것은 20여년이나 되었고 두어번 만난 게 15년 정도 된 듯합니다.

지난 90년 초 노동운동에 관심있을 때였습니다. 서울서 전국노동자대회를 해서 참가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우연히 '빈들의 소리'라는 몇 쪽 안되는 작은 책자 한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종교나 철학, 명상과 같은 데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 소책자 내용이 참 맘에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필자에게 전화를 해서 매월 좀 보내 주십사하고 청하였는데 고맙게도 매월 우편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빈들의 소리'를 만든 분이 바로 지성수 목사님이셨습니다. 당시 지성수 목사님은 생활교회를 하시면서 부천에서 민주화 운동을 겸하고 계셨습니다. 기복교회가 넘치는 상황에서 지성수 목사님과의 만남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 두어번 직접 뵌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 날 때 긁적인 글을 우편물로 보내주면 그것 중 일부를 '빈들의 소리'에 실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참 따뜻한 분 같아 늘 마음 한 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호주와 한국은 너무 멀기에 생전 한 번쯤이라도 뵈려나 했습니다. 일상에 쫓기며 지내다가도 문득문득 가끔 한번씩 생각나는 지성수 목사님을 꼭 뵙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참으로 귀한 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꿈에나 그리던 목사님이 지난 11월 말일 날 한국을 오신 것입니다.

지난 12월 5일 오후 부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저녁 7시 맞춰 출발한 것입니다. 학성공원서 부산 노포동 가는 좌석버스 타고 1시간 달리니 노포동 전철 타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전철타고 다시 광안리에 가니 또 한시간 가량 걸렸고 처음 가보는 곳이라 이래저래 헤매다 광안대교가 보이는 바닷가 근처 목사님이 오신다는 한 콘도에 도착하니 또 1시간이 흘렀습니다. 울산 집에서 출발하여 그렇게 3시간이 걸렸습니다.

로비서 기다리는데 잠시후 진짜로 지성수 목사님 일행이 나타났습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요. 만나니 목사님도 "아~ 창기 왔어"하고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우린 18층 방으로 올라가 짐을 내려놓고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목사님을 아시는 분들이 여러분 방문하셨습니다. 밤 늦도록 우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난 피곤해서 눈 좀 더 붙일 테니 자네가 가서 아침 먹고 오게."

전날 저녁 다른 분 다 가시고 서울서 오신 일행 세 분과 저 이렇게 다섯 명이 그 방에 잤습니다. 일요일 아침 목사님은 식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피곤하다며 나머지 네 명만 식사하라 했습니다. 콘도 식당은 뷔페식이었습니다. 1인 1만2000원 하는 표를 4장 내고 들어 갔습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북적였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빠진 일행 세 분과 함께 평소 먹기 쉽지 않은 뷔페 음식들이라 그날 배 터지도록 뱃속에 집어 넣었습니다. 나중엔 배가 너무 불러 혼났습니다.

10시쯤 넘겨 평화교회를 찾아 갔습니다. 서울서 개인택시 하는 분이 목사님 모신다면서 택시 대절하여 부산까지 오셨더군요. 지성수 목사님이 훌륭한 인품을 지녀 그런지 그런 경우도 다 있더군요. 그 분의 도움으로 교회까지 갔습니다. 기사님 혼자 있을때 넌즈시 물어 보았습니다.

"지성수 목사님이 기름값 하라고 돈 좀 주시던가요?"

물어본 제 입이 부끄럽더군요. 그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저는요. 한 푼도 받을 생각 없는데요."

참 멋진 택시기사님이신 거 같습니다. 돈도 못 벌고 가스비도 많이 들 터인데 말입니다. 호주서 오신 목사님 일행을 위해 봉사하고 계시다니 말입니다.

마음 착한 서울서 온 택시기사님  왼쪽에 계신 분이 이번에 지성수 목사님 일행을 서울서 부산까지 모시고 오신 서울서 개인 택시 기사 하신다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중간엔 지성수 목사님과 단짝이시구요. 오른쪽엔 서울서 함께 오신 일행이십니다.
▲ 마음 착한 서울서 온 택시기사님 왼쪽에 계신 분이 이번에 지성수 목사님 일행을 서울서 부산까지 모시고 오신 서울서 개인 택시 기사 하신다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중간엔 지성수 목사님과 단짝이시구요. 오른쪽엔 서울서 함께 오신 일행이십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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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회는 광안리에서 멀잖은 곳에 있었습니다. 사회 운동에 관심 많은 교회가 그렇듯이 그곳도 작은 교회였습니다. 교인도 50여 명 남짓하구요. 첫인상이 좋은 목사님과 함께 해서 그런지 교인도 모두 착해 보였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 도착해서 목사님 서재에 들어갔습니다. 책꽂이엔 온통 책이 꽂혀 있었습니다. 사회 운동에 관심 많은 목사님답게 운동권 책도 많이 눈에 보였습니다.

예배 시작하고 설교하시는데 아주 짧게 설교하셨습니다. "윤리적 상상력이란 무엇인가"란 제목으로 말씀하셨는데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라는 요지였습니다. 세상은 칼라 시댄데 생각은 아직도 흑백논리로 가득 차다며 현실을 비판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지성수 목사님 설교를 처음 들어 보았습니다. 깊은 삶의 성찰에서 오는 교훈이 가득한 설교 잘 들었습니다.

식사하시는 지성수 목사님 6일 오전 11시 평화교회 예배후 비빔밥의 식단으로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날 목사님은 많은 밥을 비벼 드셨습니다. 저에게 아침을 양보한 목사님. 얼마나 배고팠을까요? 그 생각을 하니 미안한 맘이 절로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성수 목사님.
▲ 식사하시는 지성수 목사님 6일 오전 11시 평화교회 예배후 비빔밥의 식단으로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날 목사님은 많은 밥을 비벼 드셨습니다. 저에게 아침을 양보한 목사님. 얼마나 배고팠을까요? 그 생각을 하니 미안한 맘이 절로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성수 목사님.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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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후 식사시간이 이어졌습니다. 3층은 예배실이고 4층은 식당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교회 건물은 아니고 전세 들어 있는 듯했습니다. 식당에 가보니 이미 식단이 다 차려져 있었습니다. 서너 가지 반찬에 팥을 얹은 시루떡에 비빔밥이 나왔습니다. 저는 목사님 바로 앞에 앉아 밥을 먹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큰 그릇에 밥을 많이 받아 와 비벼 드셨습니다. 허겁지겁 드시는 걸 보고서야 아침 뷔페를 피곤하다고 드시지 않은 게 아니라 울산서 참석한 저에게 식권을 양보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속으로 얼마나 미안하던지요.

"목사님은 이후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식사 후 오후 1시경 저는 이제 울산으로 가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아쉬웠습니다. 17시까지 특근 출근이 잡혀 더이상 목사님 일행을 따라가지 못하니 참 아쉬웠습니다.

"우린 이제 봉하로 출발할 걸세. 가서 노짱을 한번 만나 뵈야지. 예까지 왔는데..."

목사님은 부천서 민주화 운동 당시부터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많이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보를 듣고 목사님도 많이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호주 시드니 한인회에 뜻있는 분들을 모아 시드니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관을 설치하고 추모식도 진행하였습니다. 거기서 추도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호주 시드니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관에서 평소 많이 존경하시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냥 보내 드리기 안타까워서 추모관을 만들고 추도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사진은 추도사하는 지성수 목사님.
▲ 호주 시드니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관에서 평소 많이 존경하시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냥 보내 드리기 안타까워서 추모관을 만들고 추도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사진은 추도사하는 지성수 목사님.
ⓒ 김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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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만 우린 평화 교회 앞에서 헤어져야 했습니다.

"호주 한번 초청 할 테니 꼭 놀러 오게."

저에게 그런 여운을 남기고 지성수 목사님 일행이 봉하마을 고 노무현 님이 계신 곳으로 떠나는 것을 보고 저도 울산으로 향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봉화 마을 노짱을 만나러 가 본 지성수 목사님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시드니 사랑방 모임에 이런 글을 남기셨더군요,

"봉화마을에 갔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초라한 시설들, 그런 것을 노방궁이라고 모함을 하던 조중동을 생각하니 치가 떨렸습니다. 새벽에 부엉이 바위에 올랐을 노무현 님을 생각하며 산을 올랐습니다. 일행과 집사람 셋이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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