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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제일루', 이 다섯 글자만으로도 그 멋스러움이 떠오른다. 7번 국도를 따라 강릉에서 동해를 거쳐 삼척으로 내려가다가 보면, 죽서루란 이정표가 곳곳에 보인다.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에 위치한 보물 제213호 죽서루(竹西樓). 우리나라에서 피향정, 태고정 등 보물로 지정된 몇 개 안되는 정자 중 한 곳이다.  

 

관동제일루 명성에 걸 맞는 죽서루

 

죽서루를 '관동제일루'라고 칭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대표적인 것은 정자가 서 있는 주변의 경관 때문이다. 관동팔경이 모두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데, 유일하게 죽서루만 내륙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관동팔경에 끼일 만큼 절경에 자리했다는 것이다. 관동팔경이란 강원도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와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경상북도 울진의 망양정, 평해의 월송정을 말한다. 이 중에 죽서루만 동해와 접해있지 않다.

 

 

그만큼 죽서루 주변의 경관은 장관이다. 바위 위에 그대로 길고 짧은 기둥을 세워 누정을 올려 스스로의 운치를 더했고. 누정의 이름에서 보이듯 주변에는 대나무가 자란다. 죽서루 밑으로는 옥빛 고운 오십천의 맑은 물이 흐르고, 주변은 온통 기암괴석이다. 이를 보고 누가 반하지 않았겠는가? 이인로가 난새나 봉황같은 인물이었다고 <김거사집>의 서문에서 극찬한 고려 명종 때의 문신인 김극기( 1150경~1204경)의 시에 죽서루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면, 죽서루는 이미 지어진 지가 800년이 훨씬 지났다는 이야기다. 

 

스스로 자연을 닮은 누정

 

죽서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지어졌다. 원래는 5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가운데의 5칸은 기둥이 서 있지 않은 통간인데 비해, 양편에 한 칸씩은 기둥 배열이 있기 때문이다. 죽서루가 자연 그대로를 이용했다는 것은 누정마루 밑의 기둥 때문이다. 긴 것은 주추를 놓고, 짧은 것은 자연 암반을 그대로 주추로 이용을 하였다. 그래서 누정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이 모두 제멋대로다. 자연과 같이 어우러지면서 스스로가 자연이 되었다.

 

 

죽서루 밑으로 흐르는 오십천은 옥빛이다. 어찌 저리도 맑은 물이 흐르고 있을까? 오십천을 흐르는 냇물은 손이라도 담구면 그대로 물이 들 것만 같다. 죽서루 곁에 있는 기암괴석에는 커다란 구멍이 하나 뚫려있다. '용문바위'라는 이 바위는 신라 제30대 문무왕이 동해의 호국용이 되어 오십천 물을 따라 올라왔다가,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놓고 바위를 뚫고 지나가 생긴 구멍이라고 한다. 전설 속의 이야기니 헛웃음을 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 하나에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여유가 그리운 시절이다.

 

시인 묵객들의 각축장

 

죽서루는 그야말로 시인 묵객들의 실력을 가늠하는 각축장이다. 누정 안에는 수많은 게판들이 걸려있다. 숙종, 정조, 율곡 이이 등의 글이 있다. 현판의 글씨도 여러 사람이 썼다. 부사 허목의 '제일계정(第一溪亭)'은 현정 3년인 1662년에 쓴 글로, 계곡에 선 정자 중에서는 단연 제일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죽서루 밑을 흐르는 맑은 오십천과 밑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어울린다. 죽서루의 대명사처럼 된 '관동제일루'란 현판은 숙종 37년인 1711년에 부사 이성조가 썼다. 이렇게 많은 명필들과 시인들이 죽서루에 글 하나를 남겨 놓았다.

 

 

진주관 죽서루 아래 흐르는 오십천 물이 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 가누나

차라리 그 물줄기를 님 계신 한강으로 돌려 한양 남산에 대고 싶구나.

관원의 여행길은 유한하고 경치는 보고 또 보아도 싫증나지 아니하는데

그윽한 회포가 많기도 많아 나그네의 시름을 달랠 길이 없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중 죽서루에 관한 글이다. 죽서루에 관한 수많은 글들이 전하는 것도, 그 아름다움에 도취된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죽서루에 부는 대바람소리

 

 

관동팔경 중 제일루라는 죽서루. 찬바람이 오십천을 휘돌아 벽을 타고 오른다. 주변이 잘 정리된 죽서루는 이제는 삼척 제일의 명소가 되었다. 태백에서 흐르기 시작하는 물줄기가 오십 번을 굽이쳐 동해로 흘러든다고 하여 붙인 오십천. 죽서루 밑을 흘러 동해로 합수치는 물들이 오래도록 죽서루를 잊지 않을 것 같기만 하다. 죽서루 곁에 서있는 까만 오죽(烏竹) 숲이 바람에 소리를 낸다. 흡사 대나무로 만든 젓대 소리라도 되는 듯. 아마 이 대바람소리가 계속되는 한 죽서루의 그 흥취도 함께 이어질 것이다.


태그:#죽서루, #관동팔경, #관동제일루, #삼척, #오십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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