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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아프간 재파병 동의안을 다음 달 12월 중순 국회에 제출해 되도록 빨리 재파병을 결정짓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같은 날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과의 대화'에 나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된 한국이 "국제적인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아프간 재파병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대통령이 언급한 "국제적인 책임"은 어려움을 당해 도움이 필요한 국가에 도울 여력이 있는 한국이 도움을 줘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러나 아프간 재파병은 도움을 받는 아프가니스탄의 필요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한국의 정치적 이득에 더 초점을 맞춘 지극히 이기적인 결정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재파병을 결정했고 그것은 수십 년 동안의 무장 갈등과 그에 따른 생존의 위협과 피폐해진 삶에 진저리가 나 있는 아프간 국민들의 필요를 고려한 것이 아니다.


아프간 재파병은 강대국의 침략으로 야기된 부당한 무장 갈등 상황을 지지하는 것으로 오히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평화에 기여해야 하는 책임을 저버리는 행위다. 한국이 아시아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기꺼이 국제적 책임을 지기 원한다면 좀 더 분석적이고 포괄적으로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이해하고 아프간 재파병을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다. 특별히 그 결정이 많은 아프간 국민들의 생사와 관련되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무장세력을 절대 '악'으로 보지 않는 아프간 국민들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팜(Oxfam)은 지난 11월 18일 아프가니스탄 여론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응답한 아프간 국민들 중 70%가 아프간에서 일어난 무장 갈등의 주원인이 가난과 실업이라고 답했으며 탈레반의 폭력보다 허약한 정부와 부패가 더 중요한 사회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가난하고 직업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무장 세력에 합류하고 무장 세력의 논리에 동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여론조사에 근거해 옥스팜은 아프간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군사적 해결 이상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단체인 아시아재단(The Asia Foundation)이 10월 발표한 2009년 아프간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아프간 국민들은 안전문제를 당면한 가장 큰 문제로 뽑았다. 지역에 따라 35%에서 높게는 48%의 응답자가 안전문제를 지적했고 순차적으로 실업, 허약한 경제, 부패, 가난 등을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응답자의 71%는 아프간 정부가 무장세력 문제를 군사대응이 아닌 협상과 화해로 해결하길 원했고, 56%의 응답자는 무장 세력의 무장 봉기 동기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를 해석하면 아프간 국민들은 무장 세력을 절대 악으로 보지 않으며 현재의 무장 갈등 상황을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전쟁을 겪은 아프간 국민들은 전쟁이 또 다른 전쟁을 부른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미군 증강은 탈레반 폭력 증가, 세력 모집에 기여


9·11 이후 미국 정치권과 군을 상대로 외교와 개발 지원을 통한 세계 안보 문제 해결을 주장하며 활발한 로비를 벌이고 있는 미국 시민단체인 3D 안보는(3D Security) 11월 정책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책 전환을 주문했다.


이 정책보고서는 먼저 탈레반 세력과 다른 극단주의 집단들의 성장과 확장을 막기 위해 미국의 정책은 아프간 모든 계층과 영역에서 국민 중심의 국가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아프간 지도자들을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덧붙여 아프간 문제의 핵심은 무력 전쟁이 아니라 "아이디어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탈레반 세력은 부패한 아프간 정부와 외세 개입을 비난하면서 지지를 얻고 있으므로 부패, 근본주의, 외세 개입 등으로부터 자유롭고 안전, 번영, 다양성이 성취되는 아프가니스탄의 미래 모습을 제시해 아프간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사적 접근보다는 강력한 외교적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정책보고서는 과거 수차례의 추가 파병이 아프간의 안전에 전혀 기여를 하지 못했거나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쳤음을 지적하며 또 다른 추가 파병도 아프간 국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안전문제를 해소한다는 보장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특별히 여론조사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아프간 국민들은 미군 증가에 따른 민간인 피해를 우려하고 있고 상당수의 아프간 국민들은 미군의 대규모 주둔이 폭력의 예방이 아니라 폭력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는 미군 증강은 오히려 탈레반의 폭력을 증가시키고 탈레반 세력 모집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책보고서는 일자리, 학교, 도로, 의료센터 등을 위한 막대한 개발 지원이 필요한데 현재 외국 지원의 2/3는 아프간 정부를 통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프간 정부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탈레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아프간 정부의 전국연대프로그램(NSP·National Solidarity Program)을 통한 지원이 효과적임을 주장한다.

 

NSP는 남·여를 불문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역대표들로 구성된 마을개발위원회(CDC·Community Development Council)를 통해 마을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사업을 지원한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NSP가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불안, 비효율적 통치,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전국 34개 주의 2만 개 마을에 식수, 위생, 수로, 전기, 학교 건축 등의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막대한 고용효과도 내고 있는 효율적인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파병보단 개발과 외교를 통한 평화 기여를 해야


한국은 아프간 재파병을 결정하면서 아프간 재건을 돕고 있는 지방재건팀(PRT) 활동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PRT는 기본적으로 군이 주도하는 재건활동으로 전적으로 운영을 맡은 국가의 계획에 따라 사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아프간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되지 않기도 한다. 특별히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PRT가 아프간 정부와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소외시킬 경우에는 아프간 정부의 신뢰와 자치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24일 아시아재단 한국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아프간 정부 '지역통치 자치회의'의 카리미 차관은 아프간 정부와 전혀 소통하지 않는 PRT 문제를 지적하면서 아프간 정부와의 협조를 강조하기도 했다. 결국 PRT는 외국군의 주둔과 영향력 확대에 기여할 뿐 아프간 개발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활동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조사보고서와 정책제안서 등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에 필요한 것은 군사력을 통한 문제해결이 아니며 군 병력의 증강은 오히려 탈레반 세력 확장에 도움을 주고 안전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한국군 파견은 어떤 목적이나 형식을 취하느냐에 상관없이 아프간 평화에 기여하기보다는 현재의 무장 갈등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지극히 빈약한 논리적 토대 위에서 미국이 중심이 된 강대국들에 의해 부당하게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 뾰족한 출구전략도 없이 매일 수많은 아프간 국민들을 희생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아프간 재파병 결정은 무력 대결의 확대와 아프간 국민들의 희생을 지속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또한 탈레반 세력의 확장과 병력 모집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결국 무장 세력에 아프간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자원을 지원해주는 셈이다.

   

한국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로 전환한 것은 사실이다. 국제사회는 한국의 개발 지원 확대에 기대를 걸고 있고 한국도 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그러나 주는 일은 어쩌면 받는 일보다 어려운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강조하는 것처럼 국제적 책임을 지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강대국의 힘의 외교에 좌우되는 정책 결정이 아니라 도움을 받는 나라의 정부와 국민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의 토대 위에서 도움이 가져올 영향에 대한 윤리적 책임까지도 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프간 재파병 결정처럼 군이 주도하는 PRT를 아프간 개발 지원처럼 포장하거나 PRT 활동 보호를 빌미로 재파병을 결정하는 얄팍한 수를 쓸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국제단체와 시민사회를 통해 아프간 개발과 안전 향상에 정말 도움이 될 수 있는 개발 지원을 해야 한다. 전략적인 면을 고려해 봐도 작은 나라 한국이 국제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은 파병을 통한 군사지원이 아니라 개발과 외교를 통한 평화에 대한 기여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태그:#아프간 재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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