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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19대 왕인 숙종의 제 1계비 인현왕후와 희빈 장씨의 얽히고설킨 내막을, 김만중의 '사씨남정기'를 읽으면서 야사로 먼저 접했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라는 구전 가요를 통해 미나리는 인현왕후요 장다리는 장희빈을 가리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뿐이랴 숙종과 그의 부인들의 이야기는 사극에서도 종종 사용되는 흥미진진한 소재거리였다. 정사와 야사를 통해 후대사람들에게 상상력을 맘껏 펼칠 수 있게 한 숙종과 그의 부인들, 그리고 희빈 장씨의 무덤이 있는 곳이 서오릉이다.

이제 조선 왕릉은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어 사람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왔다. 능은 얼핏 비슷해 보이는 무덤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아는 만큼' 보인다. 요즘은 능에 상주해 있는 해설사를 통해서도 능의 조성 역사와 무덤의 주인공들이 관련되어 있던 시대를 들을 수 있어,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다. 현장에서 그 시대의 역사와 삶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유물인 셈이다.

서오릉 조선 왕릉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는 명패
▲ 서오릉 조선 왕릉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는 명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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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릉은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위치한다. 서오릉은 그 자체가 능의 명칭이 아니라 서쪽에 다섯 개의 능이 있다는 뜻이다. 그곳에는 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의 5개 능과 순창원, 수경원이 있고 대빈묘가 있다. 숙종과 관련되어 있는 능이 명릉, 익릉, 대빈묘다.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에는 3호선 녹번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야 한다. 북부 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가용을 이용해 의정부 쪽으로 넘어가면 훨씬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능 입구에 있는 주차장을 가운데 두고 오른 쪽이 명릉이다. 예전에는 소풍을 간 아이들이 능역까지 들어가 사초지를 뒹굴던 기억이 있는데 언제부터인지 보호차원에서 정자각까지만 들어갈 수 있지 능역은 통제구역이 되어 있다. 그곳까지 관람하려면 관리실에 해설을 요청하거나, 해설사를 동반한 단체는 미리 양해를 구해놓은 후에 관람할 수 있다. 명릉은 능제의 역사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라는 의미로 개방이 되어 있어서 능역까지 돌아볼 수 있었다.

명릉은 조선조 19대 왕 숙종과 제 1계비인 인현왕후, 제 2계비인 인원왕후를 모신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묘는 쌍릉으로 나란히 같이 있다. 합장릉은 봉분이 하나이지만 쌍릉은 같은 언덕에 봉분이 둘인 것이다. 조금 뒤편 숙종 능 오른 쪽 위 언덕에 동원이강(同原異岡)의 배치로 제2계비인 인원왕후의 단릉이 있다.

서오릉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의 능이 있는 명릉, 정자각의 왼쪽 언덕에 인원왕후의 단릉이 보인다.
▲ 서오릉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의 능이 있는 명릉, 정자각의 왼쪽 언덕에 인원왕후의 단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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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각 하나에 능이 3개가 들어 있는 셈이다. 왕의 제는 능역에 올라가 지내는 것이 아니라 정자각에서 지낸다. 그래서 정자각에서 보면 능이 정면으로 보이게끔 되어 있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쌍릉 뒤편 골짜기를 사이에 둔 언덕에 쓸쓸히 홀로 놓여 있는 인원왕후 능은 그 정자각에서 비껴나 있다.

능은 우상좌하로 앉힌다고 한다. 그러니까 정자각에서 능을 바라보면 왼쪽 능이 왕이고 오른 쪽 능이 왕비의 능이다. 능에 가서 이것 때문에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살아 있을 때와는 반대의 위치라고 한다. 그런데 인원왕후는 왕의 오른 쪽 뒤편에 능이 있다. 제대로 하려면 인현왕후 쪽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숙종 승하 후 30여 년 뒤에 인원왕후가 승하하자 영조가 묘역 조성 예산문제를 들어 그곳에 정했다고 한다.

해설사가 인원왕후 능 뒤쪽에서 이미지를 잡아보라고 한다. 그러면 그 쓸쓸함이 더 해보이고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비록 숙종 능보다 위의 언덕을 차지하고 있으나 지아비 숙종의 묘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 같다고 덧붙인다. 명릉의 문무 석물들은 웅장하지 않고 소박하며 우리와 눈높이를 같이 하는 것이 돌의 차가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서오릉 숙종과 인현왕후가 잠들어 있는 쌍릉 형태의 명릉, 사진 왼쪽이 숙종이고 오른 쪽이 인현왕후 능이다.
▲ 서오릉 숙종과 인현왕후가 잠들어 있는 쌍릉 형태의 명릉, 사진 왼쪽이 숙종이고 오른 쪽이 인현왕후 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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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릉 숙종 능 오른 쪽 언덕에 놓여 있는 인원왕후의 능으로 가고 있다. 이런 형식의 능 배치를 동원이강형이라고 한단다.
▲ 서오릉 숙종 능 오른 쪽 언덕에 놓여 있는 인원왕후의 능으로 가고 있다. 이런 형식의 능 배치를 동원이강형이라고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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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릉 인원왕후 능 뒤편에서 바라본 명릉, 숙종과 인형왕후의 쌍릉이 나란히 보이고, 정자각도 그 능을 향해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 서오릉 인원왕후 능 뒤편에서 바라본 명릉, 숙종과 인형왕후의 쌍릉이 나란히 보이고, 정자각도 그 능을 향해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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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을 나와서 주차장 맞은편에 있는 서오릉의 정문으로 들어갔다. 명릉도 서오릉 권역에 속해 있어서 입장권은 한 번만 구입해도 되지만 입구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에 명릉과 다른 능을 오가려면 입장권을 끝까지 간직해야 한다.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 김씨가 잠들어 있는 익릉으로 가는 길목에 수경원이 있어서 들렀다. 수경원의 주인은 영조의 후궁이며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다. 왕이나 왕비의 무덤은 '능', 왕세자나 왕세자비, 왕을 낳은 후궁 무덤은 '원', 그 외 대군, 공주, 옹주, 후궁들의 무덤은 일반인과 같이 '묘'라고 칭한다.

영빈 이씨는 사도세자가 추존되어 왕이 되었기에 왕을 낳은 후궁인 셈이라 무덤을 '원'이라 불린다. '원'에도 홍살문과 정자각이 있지만 연세대학교 안에 있던 무덤을 이곳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원묘와 석물만 조성 되었다고 한다.

서오릉 서오릉 안에 있는 수경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의 무덤이다. 원래 원에는 홍살문, 정자각이 있게 마련인데 옮겨 오는 과정에서 빠졌다고 한다.
▲ 서오릉 서오릉 안에 있는 수경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의 무덤이다. 원래 원에는 홍살문, 정자각이 있게 마련인데 옮겨 오는 과정에서 빠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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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가 묻혀 있는 곳이 익릉이다. 인경왕후는 딸들을 낳았지만 모두 일찍 죽었다고 한다. 10세에 왕세자빈이 되고 13세 때 왕비가 되었다가 20세로 단명했다. 능의 석물이 명릉의 것보다는 우람한 것이 오히려 새로 조성한 것처럼 보였다. 지아비인 숙종과 함께한 시간도 짧더니 죽어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서오릉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의 능인 익릉
▲ 서오릉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의 능인 익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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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익릉에서 나와 잘생긴 나무숲 오솔길들을 걸어 명릉과는 멀리 멀리 떨어져 있는 대빈묘로 향했다. 희빈 장씨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같은 서오릉 권역이나 그 거리는 끝과 끝이다. 원래는 경기도 광주에 있었는데 1960년 말 이쪽으로 이장을 한 것이다.

왕을 낳았고 한 때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폐비가 되었기에 원도 아닌 묘다. 아들인 경종이 왕이 되어 옥산부대빈에 추존하였다. 원에는 문인석과 석말이 있었으나 묘에는 문인석은 있는데 석말은 없었다. 물론 석호 석양도 없다. 역사에서 인정받지 못한, 한 여인의 권력의 패배가 무덤에까지 덮여 있는 듯해 보인다.

청와대 옆에 있는 칠궁 안에는 그녀의 사당인 대빈궁이 있다. 얼마 전에 그곳을 방문했을 때 대빈궁의 기둥은 다른 후궁들 사당의 기둥과 달리 둥글었다. 이유를 물으니 그래도 한 때 왕비였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능 안에서는 쓸쓸함을 모두 안고 있는 묘였지만 칠궁의 사당 안에서는 그나마 대접을 받고 있는 형상이다.

서오릉 대빈묘 한 때 숙종의 부인이었고 경종을 낳은 ,희빈 장씨의  대빈묘, 서오릉 한 쪽 귀퉁이에 쓸쓸히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다.
▲ 서오릉 대빈묘 한 때 숙종의 부인이었고 경종을 낳은 ,희빈 장씨의 대빈묘, 서오릉 한 쪽 귀퉁이에 쓸쓸히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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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고전을 여러 각도에서 새롭게 각색하여 우리 앞에 보여준다. 어쩌면 마녀사냥의 희생자였을 수도 있는 장희빈을 재조명해 보자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녀를 이용해서 권력의 중심에 서 보려고 했던 남자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정당성을 주장하고, 그녀만 악녀로 남게 되었다. 천한 신분에서 한 나라의 왕비로 신분상승이 되고 보니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선을 넘는 행동을 마다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문화유산연구회의 해설사는 "희빈 장씨는 리더가 되었을 때 갖춰야 했을, 덕목이나 지혜를 터득할 기회를 잃어버린 불쌍한 여인 일 수도 있다"며 "이분법적 권선징악에 희생당한 여인들을 여자인 우리들이라도 달리 생각해보자"고 말했는데, 그 말에 공감이 갔다.

능은 번잡한 곳을 벗어나 잠시 역사 속에 자신을 푸근히 담글만한 공간이라 종종 찾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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