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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라이트노벨(가벼운 소설)'이 한국 문학계에 서서히 상륙하고 있다.

90년대 하루키와 바나나 등의 소설이 20∼30대 독자층을 노렸다면, 라이트노벨(일본에서는 줄여서 '라노베'로 통한다)은 10대에서 40대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상대로 한국 독서계를 두드린다.

기존 일본 소설 붐과 다른 점은 라이트노벨이 특정 작가의 작품에 대한 열광이 아니라 하나의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라이트노벨의 한국 상륙이 본격적으로 이뤄진다면 개별 작가의 작품과는 비교되지 않는 대단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요미우리 신문 기사 라이트노벨 진화론 상편 홈페이지.
 요미우리 신문 기사 라이트노벨 진화론 상편 홈페이지.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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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이후의 베스트셀러는 '라이트노벨'

라이트노벨은 표지나 삽화에 '아니메(애니메이션)' 풍의 일러스트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청소년 대상의 소설을 말한다. <라이트노벨 연구서설>(세큐사, 2009)에 따르면 이 용어가 정착된 것은 1990년부터다. 라이트노벨이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4년 8월, 닛케이BP무크가 <라이트노벨 완전독본>을 출간하면서다. 최근에는 중고생뿐만 아니라 30대 젊은이들로 독자층이 넓어져가고 있는데, 시장 규모도 점차 커져가는 추세다.

한국에 잘 알려진 미스터리, 호러 계열의 소설은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온다 리쿠, 오쿠다 히데오 등의 작품인데, 이들의 소설도 큰 범주(가벼운 소설)에서는 라이트노벨이라고 할 수 있다. 눈여겨볼 부분은 이들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들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온다 리쿠는 1990년대 후반 일본에서 미스터리 소설의 인기가 최고 절정에 달했을 무렵 이름을 알린 작가로 '크로스 장르(장르 넘나들기)'가 주특기다. 또 2000년대 이후 라이트노벨 출신 작가가 문단에서 상을 수상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무라야마 유카와 사쿠라바 가즈키의 나오키 상 수상, 오쓰 이치의 본격미스터리 대상, 사토 유야의 미시마 유키오상 수상 등.

 카도카와 스니커 문고 제14회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 12월 1일에 발매되는 슈가다크 묻혀진 암흑과 소녀.
 카도카와 스니커 문고 제14회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 12월 1일에 발매되는 슈가다크 묻혀진 암흑과 소녀.
ⓒ 카도카와 스니커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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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노벨의 전신은 1970년에 시작된 슈에이샤의 청소년 대상 코발트 문고다. 현재는 90년대 미스터리 소설에 힘을 쏟던 카도카와 문고의 작품이 라이트노벨 시장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 카도카와 문고는 라이트노벨 신인 작가를 육성하기 위해 '카도카와 스니커 대상'을 14회째 열고 있다.

쇼가쿠칸은 소년독자와 소녀독자 대상으로 각각 '가가가' '루루루' 문고를 만들어 카도카와 문고에 맞서는 중이다. 쇼가쿠칸이 주관하는 라이트노벨 대회도 올해로 4회째다. 그런데 쇼가쿠칸의 라이트노벨 대상 선고 기준이 흥미롭다. "비주얼화 되는 것을 의식한, 엔터테인먼트 소설일 것, 판타지, 미스터리, 연애, SF 등 장르 불문." 라이트노벨이 기존의 장르를 모두 섭렵한 탈 장르화된 새로운 장르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젊은 층이 라이트노벨에 보내는 관심 또한 뜨겁다. 카도카와와 쇼가쿠칸의 라이트노벨상 응모에는 2천 편 이상의 작품이 모이고 있으며, 인기도서는 10만권을 훌쩍 넘기는 판매고를 올린다. 일본 출판과학 연구소의 통계를 보면, 일본에서 라이트노벨은 매년 2천 점 가량 출간되고, 판매액은 3천억 원(추정)을 웃돈다.

작품관 사라지고, 스타일로 승부하는 일본 작가들

일본의 서점가들은 1990년대 후반 미스터리 소설의 유행 이후 라이트노벨이 압도적으로 인기를 끌자, 서점의 라인업을 미스터리에서 라이트노벨로 일신하는 등 독자들의 움직임에 맞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작가들의 장르 넘나들기는 이러한 유행과 무관하지 않다. 이미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관'이나 '세계관'을 독자들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장르' '스타일'로 소비된다. 독자가 작가와 스토리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오타쿠가 만든 '서브컬처', 국경을 넘다
'서브컬처'란 무엇일까. 서브컬처는 1950년 데이비드 리즈맨이 사회의 지배적 문화에서 일탈한 문화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기 시작한 후 사용돼 왔다.

일본에서는 1980년 이후 뉴아카데미즘 유행과 맞물리면서 일반적인 서브컬처 개념과 달리, 망가, 아니메, 게임, SF, 오컬트, 디스코, 피규어 등 오타쿠가 전파시킨 문화 전체를 지칭하며 '하이컬처'의 반대어로 쓰인다. 하지만 무엇이 서브컬처인지에 대해서는 논자에 따라 범위와 정의가 많이 다르다.

일본의 평론가 아즈마 히로키는 "오타쿠 문화는 1980년대 세계적으로 퍼진 포스트모던의 한 유형"이라며, "오타쿠 문화는 미국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창조해낸 고도 성장기 일본의 국가적 욕망을 상징하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라이트노벨 계열의 작가들은 그런 의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등 작가의 이름이 작품을 말해주던 시대의 작가들과는 획을 달리 한다. 일본문학에서 하루키, 바나나의 등장은 전시대 작가들과 다르게 포스트모던한 '개인'의 전면화였다. 그리고 이제 라이트노벨은 서사가 아니라 비주얼, 즉 스타일로 넘어가고 있다. 위 라이트노벨 대회 응모 요령은 더는 서사가 스토리의 중심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라이트노벨은 이미 소설이 '작품'이 아니라 '조립(합)된 이야기', 즉 망가(만화)나 게임 등의 스토리를 제공하는 '스케치'가 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미 일본에는 망가를 어떻게 조립하면 되는지, 라이트노벨을 어떻게 조합하면 되는지를 알려주는 종합사이트도 존재한다.

일본문학계에서는 라이트노벨이나 휴대폰소설의 등장을 '서사'의 또 다른 분기점으로 보고, '서브컬처'의 한 지류로 파악한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전통적인 의미의 문단이 붕괴된 일본에서는 이러한 종류의 소설이 유행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표하거나 이런 현상을 위기로 보는 분위기는 아니다.

 라이트노벨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망가 아니메 관련 종합 사이트 TINAMI.
 라이트노벨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망가 아니메 관련 종합 사이트 TINAMI.
ⓒ TINAMI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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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이 라이트노벨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본에서의 이런 경향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1990년대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국 독서시장에 등장한 후 일본 문학은 한국에서 승승장구하는 반면, 한국문학은 일본에서 여전히 맥을 못 춘다. 일본에서 한국의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이 이미 한 장르로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 통계를 보면, 한국 출판계 전체에서 일본 문학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1990년대 3%에서 2009년 현재 6%까지 올라갔다. 발행종수를 보아도 1997년 143종, 2000년 311종, 2004년 339종, 2006년 580종, 2008년 837종(약 250만 권)으로 매년 증가추세다. 이는 2008년 점유율 2위를 차지한 미국 522종(약 128만 권)을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2009년 11월 말 현재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1Q84>가 거의 모든 서점의 베스트셀러 상위순위를 휩쓸고 있으며, 11월 17일 집계로 56만 부를 돌파했다. 하루키의 약진으로 일본문학 판매부수는 2008년보다 25% 증가했다(<한국경제> 11월 15일자). 한국문학은 2007년 7752종, 2008년 8482종이 출간되고 있으며 점유율은 19.68%다.(아동도서·만화 제외)

 매년 출판되는 <이 라이트노벨이 대단하다> 소개서.
 매년 출판되는 <이 라이트노벨이 대단하다> 소개서.
ⓒ 다카라지마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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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아무리 선전을 해도, 일본에는 한국문학과가 존재하지 않으며, 한국 작가의 이름은 일본에서 거의 통용되지 않는다. 일본문학 시장에 90년대 이후 등장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거의 없다. 이러한 분석은 일본과 비슷한 소설 경향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의 소설보다 황석영이나 고은, 김지하 등의 작품이 일본에서 번역되고 있는 사실로 증명된다(1990년대 이후 문학에서만 유독 일본문학을 거의 일방적으로 수용/번역 하고 있는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라이트노벨은 향후 일본의 아니메나 망가에 익숙한 한국의 10대나 20, 30대 독자층을 대상으로 더욱 더 그 영향력을 넓혀 갈 것으로 보인다. 라이트노벨 자체가 아니메와 망가를 자양분으로 해서 성립된 장르인 만큼 독자들은 라이트노벨에서 위화감보다는 친숙함을 느끼기 쉽다.

일본의 오타쿠가 미국문화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수용해서 현재의 '독특한 문화'를 재창조했듯이, 한국에 수용되고 있는 일본의 서브컬처는 훗날 다른 형태로 한국 대중문화의 향방에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현재까지는 국내에서 한국문학과 라이트노벨의 독자층이 엄연히 다르고, 한국문학이 나름의 경쟁력과 독자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좀 더 멀리 내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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