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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한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자 오바마의 예정에도 없던 '파병 감사' 발언으로 한국의 아프간 재파병은 더욱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오바마의 방한 이후 국내의 여야 정치권과 시민사회 내부에서는 파병 관련 논쟁이 격렬하게 진행 중이다.

 

정부는 실사단 파견 이전부터 이번 파병의 의미를 축소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민간이 중심이 된 지방재건팀(PRT)은 군과는 엄연하게 다르며, 함께 파병되는 군의 역할은 지방재건팀 보호에만 한정된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용준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18일 실사단을 이끌고 아프간을 방문하고 돌아온 자리에서 우리 군이 탈레반 토벌 등 다른 전투에 참전할 가능성은 없다는 점을 반복했다.

 

과연 그럴까? 솔직한 발언은 정부쪽이 아니라 다른 쪽에서 나왔다. 국방장관을 지낸 한나라당 김장수 의원은 한 주간지와 인터뷰에서 "정부는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알리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접 가봤는데, 피아의 구분조차 어려운 현재 아프간의 여건은 감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안보학 교수는 더욱 솔직하게 300명 규모의 경호 병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새로 개발된 K-11 복합형 소총, 장갑차, 기동헬기 등으로 무장해야 한다"며 중무장을 주문하기도 했다.

 

군인을 보낸다는 것은,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지방재건팀(PRT)이 민간인 중심이라고 논점을 흐리지만, 민사작전이란 2차 대전 이후에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온 군사업무의 하나일 뿐이다. 지방재건팀을 보호하기 위한 병력이라지만, 무기를 든 군인은 교전을 전제로 한다. 어느 쪽이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전투가 시작되며 사상자 발생은 필연적이다.

 

파병론자들은 '국익'을 위해서는 그러한 희생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책임을 운운하며,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평화연구를 하는 필자는 이 파병으로 설령 '국익'이라고 불리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 빈곤과 전쟁의 고통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아프간 사람들 앞에서 총을 든 대가로 얻는 이익은 역사 앞에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지금 상황을 본다면, 그들이 말하는 국익이나 명분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대테러전쟁, 이미 실패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주창한 '테러와의 전쟁'으로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이미 8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미군과 나토(NATO)군이 그렇게나 오래 전쟁을 이어간다는 것은 이미 이 전쟁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탈레반을 몰아낸다며 서방이 '심어놓은'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은 비록 연임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아프간 민중에게는 물론 서방에서도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알카에다를 없애겠다며 쏟아 부었던 공중폭격으로 무고한 아프간 민간인들이 수없이 죽고 다쳤다. 자신의 부모와 자식, 친구를 죽인 미군과 다국적군은 아프간 민중에게 침략군일 따름이다. 침략군이 세운 정권이, 게다가 외부의 원조를 착복하는 부정부패로 가득한 정권이 민중의 지지를 받을 리 만무하다. 탈레반을 없애겠다고 8년 동안 전쟁을 벌인 결과, 아프간의 70% 이상을 탈레반이 장악한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졌다. 힐러리 미 국무장관까지 참석한 아프간 대통령 취임식에 언론조차 통제해야 했을 만큼 내부의 상황은 열악한 실정이다.

 

파병찬성론자들은 아프간 전쟁이 유엔의 결의를 얻은, 명분 있는 전쟁이라고 강조한다. 과연 그들이 유엔의 결의가 없었던 이라크 전쟁에 대한 파병을 반대했었는지는 심히 의문이지만, 그 결의의 핵심은 테러세력을 효과적으로 진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전쟁이 과연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가? 이름도 거창했던 '테러와의 전쟁'이 과연 테러를 없애고 있는가?

 

미군 다음의 숫자를 아프간에 파병한 영국군은 탈레반 반군과 전투 중심의 전략을 벗어나 탈레반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청년들을 돈으로 매수하라는 매뉴얼을 배포했다고 전해진다. 더 나아가 탈레반의 고위 사령관을 현지 정부에 참여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8년의 전쟁 끝에 총으로는 테러를 막을 수 없음을 인정한 꼴이다.

 

본래 무력으로는 테러를 막을 수 없다. 아니, 정확하게 그 무력이 테러를 만들어낸다.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가, 관타나모의 강제구금과 고문이 테러를 만들어낸다. 테러를 막겠다는 아프간 전쟁은 그 나라의 젊은이들을 줄줄이 탈레반의 병사가 되도록 했다. 탈레반은 미군과 나토군이 아프간을 점령했기에 싸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 미국마저 허우적거리는 상황이다. 이 속에서 2007년 민간인들의 죽음을 통해 파병을 철회했던 한국이 다시 파병해야 할 명분은 무엇인가? 국제사회의 공조? 테러와의 전쟁이 가진 정당성? 그런 것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철군이 예정된 미군과 나토군에 '들러리' 서는 파병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입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북미정상회담을 통한 평화협정체결과 아프가니스탄의 한국군 재파병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미국이 이번 아프간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위상이 크게 실추할 것이며, 이는 북핵문제 해결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렇게 미국이 어려울수록 도와야 한다고 한다. 더욱 솔직하게, '전략적 유연성'을 합의한 주한미군이 아프간으로 움직이는 것은 막기 위해 파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모두 잘못된 판단이다. 한국 정도의 파병 규모로는 아프간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변수가 되지도 않으며, 미국 역시 더 많은 병력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4만 명 추가 증파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사령관 스탠리 맥크리스털조차 "8만 명을 증파해도 탈레반을 소탕할 수 없"음을 시인했다. 실제 미국의 증파 규모 역시 4만 명의 반도 안 되는 1만∼1만5000명 수준이 될 것으로 미 언론들은 추정하고 있다.

 

오바마 역시 자신의 임기 내에 이 전쟁을 마무리하겠다는 발언으로 출구전략을 택하거나 철군의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 내부의 여론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는데, 지난 10월 17일 워싱턴포스트-ABC 여론조사에서는 절반 이상이 아프간 전쟁이 싸울 가치가 없다고 응답했다. 의료보험개혁 문제 등 여러 내부 문제로 고전하고 있는 오바마 정권이 여론의 반대를 무릅쓸 여유도, 명분도 없어 보인다. 나토 역시 철군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아프간에서 미군을 위시한 다국적군의 철수는 기정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굳이 재파병을 하는 것은 다른 나라들의 철군과정을 너무 민망하지 않게 하는 '들러리'를 서는 꼴이다.

 

주한미군을 붙잡기 위해 파병해야 한다는 논리는 어찌 보면 가장 현실적인 '계산'이다. 그러나 가장 안쓰러운 식민지 근성의 발로이다. 그 논리대로라면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한 주한미군을 붙잡기 위해서 이제 한국군은 미국이 원하는 그 어느 지역에라도 팔려가야 한다.

 

아프간의 평화, 이름 모를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기

 

 배형규 목사에 이어 심성민씨가 아프간 탈레반에 의해 추가 살해된 31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아프간사태 평화해결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두 희생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아프간에서의 즉각 철군을 외치고 있다.

현실주의적 '계산' 속에서도 한국의 재파병은 아무런 명분도 실익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구 저편 아프간 사람들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이다. 만약 이 공감이 가능하다면, 얼마간의 떡고물이 떨어진다고 하더라고 감히 다른 이들의 삶의 터전에서 총을 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2002년 우리는 미선이, 효순이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죽은 생명이 살아올 수야 없겠지만,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미국의 모습에 수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거리로 나왔다. 반미니 친북이니 딱지를 붙여댔지만 미선이, 효순이를 잃은 같은 교실 친구들의 울음이 우리의 손에 촛불을 들렸고, 그 두 청소년의 부모님이 느꼈을 슬픔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말라라이 조야라는 아프간 출신의 여성은 <나의 목소리를 높이다(Raising my voice)>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사실상 9.11 이후 최악의 대량학살은 오바마의 재임 중에 있었습니다. 나의 출신 지역인 파라(Farah)는 지난 5월에 미국의 폭격을 당했습니다. 150여 명의 사람들이 살해됐고 그중 대다수는 여성과 아이들이었습니다. 9월 9일 미국은 쿤두즈(Kunduz)에 폭격을 가해 2백여 시민을 살해했습니다. 아프간 인민은 질려버렸습니다."

 

오마바의 댕큐 사인을 받고 들어가는 한국군을 그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재건팀보다 그 팀을 지키는 군대의 인원이 훨씬 많다는 것이. 그곳에서 누군가 죽는다면, 그 죽음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인가? 재건팀을 지키기 위해 우리 군대가 쏠 총으로 인한 아프간 민중의 죽음 앞에 우리는 당당할 수 있는가?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에 슬퍼하고 분노했던 우리라면, 그 어떤 계산에 앞서서 이름 모를 아프간 사람들의 고통 앞에 겸허하게 아파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파병이 아닌 학교를, 군대가 아닌 민간구호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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