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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기관열차와 함께 가는 섬진강변 국도. 강물과 늦가을도 함께 흐른다.
 증기기관열차와 함께 가는 섬진강변 국도. 강물과 늦가을도 함께 흐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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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떠나라고 유혹하던 가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오매, 단풍 들것네' 하고 상념에 젖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추풍낙엽이 거리에 나뒹굴고 있다. 가을이 유난히 짧게만 느껴진다. 빠르게 지나가는 아쉬운 가을을 부여잡고 만추의 서정을 느껴볼 수 있는 숲길로 가본다.

섬진강과 보성강이 몸을 섞는 전라남도 곡성에 있는 태안사다. 태안사 숲길은 사철 좋지만 가을에 더 아름답다. 숲길을 따라 걷는 운치가 그만이다. 길도 꽤나 길다. 숲길이 자그마치 3㎞나 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산길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동차가 쌩쌩 지나다니는 아스팔트 포장길도 아니다.

흙길이다. 이 길이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사람 너댓 명이 손잡고 옆으로 함께 걸어도 될 만큼 폭이 넓다. 길도 길이지만 소나무와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떡갈나무 등이 빽빽한 숲이 하늘을 덮고 있어 고즈넉하다.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늦가을 산책을 즐기기에 아주 좋다.

산사로 가는 길에 발길을 들여놓는 순간 마음이 먼저 차분해진다. 숲길을 따라 쉬엄쉬엄 오르다보니 정말 편안한 휴식처를 찾아 피안의 세계로 가는 것 같다. 새소리, 물소리도 정겹다. 바람소리에서도 호젓함이 묻어난다.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얽히고설킨 세상사의 고달픔이 절로 풀어지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태안사는 절도 절이지만 절집보다 더 아름다운 게 이 숲길과 계곡이라고 한다.

태안사에서 만난 가을의 흔적.
 태안사에서 만난 가을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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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 사리탑. 그 옆을 지나는 스님의 발걸음에도 늦가을의 서정이 묻어난다.
 태안사 사리탑. 그 옆을 지나는 스님의 발걸음에도 늦가을의 서정이 묻어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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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는 한나절 머물러도 찾아드는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오붓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태안사는 신라 말 중국 유학파 스님이 전파한 선종, 참선 중심의 수행도량. 전국 9곳의 선방 사찰 가운데 하나로 '구산선문(九山禪門)'으로 불린다. 이런 연유로 태안사는 1200년 동안 선방 수좌의 수행터가 됐다. 고려 초까지는 송광사와 화엄사를 말사로 두었다고 한다. 지금은 거꾸로 화엄사의 말사가 됐다.

능파각도 운치 있다. 태안사 입구에서 절집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하는 누각식 교량인 능파각은 사찰로 들어가기 전에 세속에서의 일들을 씻어내는 곳. 한국전쟁 때도 소실되지 않고 남아있는 태안사의 오래된 목조건축물 가운데 하나다. 태안사의 명물이고, 가을 태안사를 대표하는 풍경이다.

절 앞에 있는 연못도 특이하다. 연못이 절집과 어우러져 멋있다. 실록이 넘실대는 봄·여름에도 좋지만, 늦가을의 서정과 버무려진 지금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 작은 섬 위에 우뚝 솟은 석탑은 여느 절에서나 만나기 어려운 풍경이다. 연못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삼층석탑은 부처님 사리를 모셔놓은 곳, 사리탑이라고도 한다. 현재 지방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늦가을로 물든 태안사 능파각(왼쪽)과 계곡.
 늦가을로 물든 태안사 능파각(왼쪽)과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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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 사리탑.
 태안사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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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에는 귀한 문화재도 많다. 일주문 계단 아래 우측에 고승들의 숨결이 깃든 부도군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있는 광자대사 윤다의 부도비(제275호)와 광자대사탑(제274호)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혜철스님의 제자인 광자대사는 '윤다'를 지칭하는데, 고려 태조 때 당우를 지어 태안사를 큰 절로 만든 스님이다.

대웅전 건물 뒤에 있는 혜철스님의 부도(제273호)도 보물로 지정돼 있다. 탑의 모양이 섬세하고 정교해 예술적 가치도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도태안사동종(제1349호)과 바라(제956호)도 보물로 지정돼 있다. 태안사 뒷길로 10여분 오르면 신숭겸 장군의 목 무덤도 있다.

신숭겸 장군은 태조 왕건을 고려 건국에 큰 공을 세웠던 인물. 고려태사 장절공으로 불린다. 장절(壯節)은 자신을 대신해 장렬히 전사했다고 해서 태조 왕건이 내린 시호. 장군이 전사하자 그의 용마가 머리를 물고 고향과 인접한 태안사 뒷산에 와서 3일간을 울다가 굶어 죽었다고 한다. 이를 발견한 태안사 승려들이 머리는 신숭겸 장군의 것이고, 애마는 그가 타던 것이라 믿고 이곳에 무덤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신숭겸 장군의 출생지는 곡성 목사동면. 여기에 '용산재'라는 서원이 있는데, 여기에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용산재 뒷산에 신숭겸 장군이 무예를 닦았다는 훈련 터가 있다. 또 죽곡면에 있는 화장산은 장군이 무예를 익혔던 곳이며, 여기에 당시 입었던 갑옷을 숨겨두었다는 '철갑바위'가 있다. 죽곡면 삼태리에는 말을 매어놓았다는 계마석이 있다.

태안사 대웅전.
 태안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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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줄배. 잊지 못할 늦가을의 추억을 선사한다.
 섬진강 줄배. 잊지 못할 늦가을의 추억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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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 입구에 있는 조태일 문학관도 관심거리. 조태일 문학관은 태안사 가는 숲길에 있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로 시작되는 '국토서시'로 널리 알려진 조태일은 이곳 출신. 지난 1999년 9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진 민족시인이다.

이 문학관에서는 시인의 육필 원고와 유품 그리고 그의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여러 전시품을 만날 수 있다. 늦가을 태안사 숲길을 걷고 그의 문학세계까지 엿본다면 만추의 서정을 더욱 짙게 해준다.

태안사 주변에 가볼 만한 곳도 많다. 섬진강 기차마을이 자동차로 20여분 거리. 증기기관열차나 레일바이크를 타고 섬진강 물길을 따라 가보는 것도 늦가을의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다. 섬진강변 호곡마을에서 옛날 강변마을 주민들의 교통수단이었던 줄배를 타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섬진강변에 녹색농촌을 체험할 수 있는 마을도 많다. 봉조농촌체험학교가 있고, 가정마을과 두계마을, 다무락마을도 있다.

좋은 여행지인 만큼 먹을거리도 실속 있다. 섬진강의 대표적인 먹을거리는 다슬기. 강변에 다슬기를 재료로 한 식당이 즐비하고 음식도 다양하다. 섬진강에서 잡은 참게로 끓인 참게매운탕도 유명하다. 갖은 양념에다 들깨를 갈아 만든 국물에 시래기와 민물참게를 넣고 푹 끓이는데,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곡성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전통시장에서 맛보는 국밥도 별미다.

섬진강변에 있는 봉조농촌체험학교. 옛 농촌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섬진강변에 있는 봉조농촌체험학교. 옛 농촌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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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변 가정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손두부 만들기를 체험하고 있다.
 섬진강변 가정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손두부 만들기를 체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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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태안사는 호남고속국도 석곡나들목에서 찾아 들어간다. 석곡면 소재지에서 18번국도를 따라 압록방면으로 가다보면 목사동면 지나서 오른쪽으로 태안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여기서 우회전, 다리를 건너 10여분 들어가면 태안사 입구에 닿는다. 자동차 통행량이 많지 않고 보성강변을 따라 길이 이어지기에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다. 태안사는 자동차를 타고 절 입구까지 갈 수 있다. 그러나 숲길의 멋은 발품을 팔아 쉬엄쉬엄 걸을 때 제대로 느껴진다.



태그:#태안사, #곡성, #만추, #능파각, #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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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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