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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선덕여왕>
 드라마 <선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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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아낌없이 제 모든 것을 드릴 것이옵니다." - 유신(엄태웅 분).
"폐하! 아낌없이 모든 것을 빼앗을 것이옵니다." - 비담(김남길 분).

이상은 지난 16일 방영된 드라마 <선덕여왕> 제51부의 끝 장면이다. "여왕 폐하 만세!"를 외치는 백성들의 환호 속에 즉위식 단상에 올라선 선덕여왕(이요원 분)을 바라보며 유신과 비담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소리쳤다. 비록 속마음의 방향은 달랐지만, 유신과 비담은 여왕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폐하'를 외쳤다.

'폐하'라는 이 표현은 드라마 <선덕여왕> 속에서 진흥왕·진지왕·진평왕에 대한 경칭으로 사용되었다. 이 표현이 다시 선덕여왕에 대한 경칭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하도 많이 들은 표현인지라, 이제는 그것에 대해 무감각해졌는지도 모른다. 당연히 그러려니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표현의 정확성 여부에 대해 의문을 품었을 시청자들도 '요즘 사극에선 다 그러니까'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한·중 간에 동북공정이란 역사분쟁이 발생한 이래 한국 사극에서는 기존의 '전하' 대신 가급적이면 '폐하'를 사용하고 있다. '가급적'이면 말이다. '그런 경향을 반영하여 <선덕여왕>에서도 폐하란 표현이 사용되는 거겠지'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언뜻 생각해보면, 실제로는 신라에서 그런 표현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판단이 들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신라'하면 떠오르는 것이 그 유명한 '사대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 속 폐하란 표현은 '시류를 반영한 역사학적 포퓰리즘 같은 것'의 반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선덕여왕은 정말 '폐하'로 불렸을까

그럼, 문제의 진상은 어떠했을까? 선덕여왕을 비롯한 신라 국왕들은 과연 '폐하'란 칭호로 불렸을까? 그렇지 않으면 '전하'란 칭호로 불렸을까?

폐하 혹은 전하 중에서 어느 쪽이 신라국왕에 대한 경칭이었는지를 따져보기에 앞서, 이 두 표현의 원래 의미를 먼저 검토하고 넘어가는 게 타당하리라 생각한다. 폐하(陛下)의 한자를 들여다보면 '계단 아래'라는 뜻이고 전하(殿下)의 한자를 들여다보면 '큰 집 아래'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어째서 그런 글자들이 군주에 대한 경칭으로 사용된 것일까?

중국 후한시대(25~220년)의 문학가·서법가인 채옹(133~192년)은 자신이 쓴 <독단>이란 책에서 폐하란 용어의 기원을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고대에는 신하가 천자(天子)에게 곧바로 진언을 하는 것은 불경한 일이라고 인식된 탓에, 왕의 거처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즉 '폐하'에 서 있는 시종이 신하의 말을 천자에게 대신 전달했다고 한다. 이처럼 '계단 아래'에 서서 진언을 올려야 할 만큼 높고 성스러운 존재라 하여 천자를 폐하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계단 아래'를 뜻하는 폐하(陛下)나 '큰 집 아래'를 뜻하는 전하(殿下)나 의미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두 용어가 모두 천자를 가리키는 데에 사용되었다. 송나라(960~1279년)의 고승(高承)이란 인물이 편찬한 <사물본기>에 따르면, 폐하와 전하의 의미가 분리된 것은 한나라 때부터였다. 이때부터 '전하'는 황태자나 제후를 가리키는 용어로 독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폐하와 전하의 의미가 갈라짐에 따라, 이후 중국을 상국으로 받드는 나라는 대(對)중국 관계에서만큼은 자국 군주를 폐하라고 부르지 않는 현상이 생겨나게 되었다. 중국과의 외교 마찰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중국 황제는 폐하라 불리고 한국 국왕은 전하라 불리었다는 인식은 바로 이 때문에 생겨났다.

사대주의 심한 조선시대에도 '폐하' 호칭

 드라마 <선덕여왕> 속 비담.
 드라마 <선덕여왕> 속 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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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국을 상국으로 받드는 나라의 군주라 하여 폐하라 불릴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점은 역대 한국왕조 중에서 사대주의가 가장 심했다는 평가를 받는 조선왕조의 사례에서도 잘 나타난다. 일례로, 세조 9년(1464) 7월 14일자 <세조실록>에는, 일본 무로마치막부 제8대 쇼군(실질적 통치자)인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조선에 보낸 서한에서 세조가 '폐하'라 불린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조선은 명나라를 상국으로 받들고 있었지만, 그 같은 조선-명 관계는 조선-일본 관계와는 무관한 것이었으므로 일본정부로서는 조선국왕을 폐하라 부르는 게 당연했던 것이다.

조선과 일본은 대등한 교린관계였으므로, 일본 쇼군이 조선국왕을 폐하라 불렀다면 조선국왕 역시 일본 쇼군에게 상응하는 예우를 갖췄을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이 일본을 황제국으로 불렀다는 <성종실록>의 기사 등을 볼 때에 그런 판단이 도출된다. 참고로, 당시 조선과 중국 등에서는 일왕(소위 천황) 대신에 쇼군을 최고 통치자로 승인했다.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폐하 소리를 듣고 또 그런 사례를 왕조실록에까지 기록하는 동안에 명나라는 이를 막지 않고 뭐했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조선측이 황제에게나 붙일 수 있는 조(祖)나 종(宗) 같은 묘호를 죽은 왕에게 붙이는데도 중국측이 이를 묵인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동아시아 전통시대에 국가 간의 사대(事大)라는 게 그저 형식에 불과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조선에게 실질적 굴복을 강요할 만큼 중국의 힘이 그리 강력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명나라는 여진족을 상대로 한 '대테러전쟁'에서 조선 군대의 힘을 빌려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조선이 조나 종 같은 황제의 묘호를 사용하는 것을 그저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명나라 뒤의 청나라 역시 막상 병자호란 이후에는 조선의 협력을 구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조선이 사용하는 황제의 묘호를 그냥 모른 체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폐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한·중 간 사대라는 게 그처럼 형식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황제가 아닌 왕의 경우에도 폐하라 불릴 수 있다는 것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구미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점은 대한제국이 선포되기 14년 전인 1883년에 조선과 대영제국이 체결한 한영수호통상조약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조약에서는 영국 여왕(당시 빅토리아 여왕)을 '대영제국 및 아일랜드의 여왕 폐하, 인도의 여제(女帝)'(Her Majesty the Queen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Empress of India)로, 조선 국왕(당시 고종)을 '조선 국왕 폐하'(His Majesty the King of Corea)로 불렀다. 이는 '왕' 혹은 '여왕'이란 표현과 '폐하'란 표현이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삼국사기>는 '전하', <삼국유사>는 '폐하'

이러한 사례들은 황제 이외에 대왕 혹은 왕이란 명칭을 가진 군주들도 얼마든지 폐하라 불릴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황제 명칭을 갖지 않은 신라의 왕들 역시 그렇게 불릴 수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도 그러했을까? 신라의 왕들은 과연 폐하라 불렸을까?

그런데 이 점과 관련하여 각 사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 신라 국왕에 대한 경칭으로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는 '전하'를, 일연의 <삼국유사>에서는 '폐하'를 사용하고 있다. 예컨대, <삼국사기> 권45 '김후직 열전'에는 병부령 김후직이 진평왕을 '전하'라 부르는 장면이 나오고, <삼국유사> 권2 '만파식적' 기사에서는 일관(日官) 김춘질이 신문왕을 '폐하'라 부르는 모습이 나온다.

한편, 필사본 <화랑세기>에서는 '폐하'가 사용되었다. <화랑세기> 제6세 풍월주 세종 편에는 미실이 진흥왕을 '폐하'라 부르는 광경이 나온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이 같은 <화랑세기>의 기록에 의거하여 '폐하'를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위와 같이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의 기록이 불일치하기 때문에, 사료상의 기록만 갖고는 신라에서 어떤 표현이 사용되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단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발견된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군주의 연대기)와 <삼국유사> 왕력(王曆) 편을 보면, 제27대 선덕여왕(재위 632~647년)의 후임자인 제28대 진덕여왕(재위 647~654년) 때까지는 신라가 독자적 연호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진덕여왕이 선포한 신라의 마지막 연호는 태화(太和)였다. <삼국사기> 권5 '진덕여왕 본기'에 따르면, 진덕여왕 원년(647) 7월에 태화란 연호가 선포되었다고 한다. 진덕여왕의 후임자인 제29대 태종무열왕 김춘추(재위 654~661년) 때부터는 독자적 연호가 선포되지 않았다.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지 않는 현상은 후삼국시대를 제외하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거의 그대로 이어졌다.

진덕여왕 때까지는 '폐하'라 불렀을 가능성 커

 드라마 <선덕여왕> 속 유신.
 드라마 <선덕여왕> 속 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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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행 국사 교과서에서 고려 광종과 조선 고종 등이 독자적 연호를 채택한 일을 '대서특필'하는 것은, 신라 진덕여왕 이후로는 후삼국을 제외하고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왕조의 자주성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독자적 연호를 채택한다는 것은 자국의 잣대로 시간을 구획한다는 뜻인 동시에 자국의 잣대로 우주를 인식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남의 나라 성인(聖人)이나 남의 나라 군주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자기 나라 군주의 연호를 사용한다는 것은, 자국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우주 즉 천(天)을 상대하고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우리는 천(天) 즉 하늘과 직통하는 나라'라는 자부심의 표현이었다. 남의 연호를 사용하는 나라는 '교환원을 매개로 하늘과 소통하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한 국가가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다는 것은 마치 한 개인이 계약서의 연월일 란에 "2009년 ○월 ○일"이라고 기입하지 않고 "내가 태어난 때로부터 ○년 ○월 ○일"이라고 표기하는 것처럼 '오만'하고 자주적인 행위였다. 

연호에 담긴 그 같은 의미를 고려할 때에, 우리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 진덕여왕 때까지는 신라가 훨씬 더 고도의 자주성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배경이 되고 있는 선덕여왕 시대에도 그 같은 고도의 자주성이 기본적으로 유지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본다면, 적어도 진덕여왕 때까지는 신라인들이 자국 국왕을 폐하라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중국의 황태자나 제후에게나 사용해야 할 전하란 표현으로 자국 군주를 부르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의 선덕여왕 역시 드라마 속의 선덕여왕처럼 폐하라 불리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유신과 비담은 여왕을 '폐하'라 불렀다

고려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서로 다른 표현을 사용한 것은, <삼국사기>에서는 태종무열왕 이후의 경칭을 기준으로 하고 <삼국유사>에서는 진덕여왕 때까지의 경칭을 기준으로 한 데에서 초래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먼 훗날의 역사가들도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경칭이 정확히 언제부터 '각하'에서 '님'으로 바뀌었는지를 정확히 분간하기 힘들지 모른다. 타임캡슐을 남기더라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타임캡슐'(문서·비석 등)을 남기지만, 후대에 그것은 자연적 혹은 인위적으로 파괴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 중에는 한국 대통령의 경칭을 일률적으로 '각하'로 기록하는 사람들과 일률적으로 '님'으로 기록하는 사람들이 생겨날지 모른다. 마치 일연과 김부식처럼.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선덕여왕의 후임자인 진덕여왕 때까지는 독자적 연호가 사용된 점으로 미루어보아, 실제의 김유신과 비담 역시 드라마 속의 그들처럼 선덕여왕을 '폐하'라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마음속으로 '아낌없이 제 모든 것을 드릴 것이옵니다'(유신)라 했는지 '아낌없이 너의 모든 것을 빼앗을 것이옵니다'(비담)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주군을 최고의 경칭으로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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