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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100분 토론>를 7년 11개월 동안 진행을 맡아온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가 19일 밤 서울 여의도 MBC본사에서 '100분 토론 10년 그리고 오늘'을 주제로 자신의 마지막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MBC <100분 토론>를 7년 11개월 동안 진행을 맡아온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가 19일 밤 서울 여의도 MBC본사에서 '100분 토론 10년 그리고 오늘'을 주제로 자신의 마지막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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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는 훈훈했습니다. 방송은 평소보다 더 많은 방청객을 수용하기 위해 여의도 MBC 방송센터 1층의 D스튜디오에서 진행됐습니다. 평소 백분토론의 방청객은 20명 안팎인데 이날은 역대 시민논객들을 비롯하여 백분토론 공식카페, 손석희 교수의 팬카페, 손 교수가 재직 중인 성신여대 등에서 400여 명이 방송에 참여하면서 객석에는 빈 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평소와 달리 차비조로 지급하던 출연료조차 나오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기자도 그 곳에 갔습니다. 성신여대생이 아닌 이상, 외부 출강도 잘 하지 않는 손 교수를 언제 다시 보랴 싶었습니다. 실제로 이날 방청객들 중에는 강원, 대구, 강진 등 먼 걸음을 마다 않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방송은 손 교수의 마지막 출연과 100분토론 10주년을 기념하여 '100분토론 10년 그리고 오늘'을 주제로 130분 동안 특집으로 진행됐습니다. 백분토론의 10년 역사와 주로 다루어진 주제의식을 되짚어보고 그간의 주요 토론 키워드들을 가지고 논의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토론문화, 특히 TV토론이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해서도 짚어보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패널로는 100분 토론 최다 출연자(23회)인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를 비롯하여 한때 백분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지난 400회 특집에 출연하여 가장 토론을 잘 하는 여성 논객으로 꼽히기도 한 나경원 의원 등 100분토론과 인연이 깊은 인사들이 출연했습니다.

참 손석희답다

19일 방송 분위기는 다소 무거울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자진사퇴라고는 하지만 옆구리 찔러 절 받기였으니까요. MBC 경영진은 3년간 회당 200만 원으로 동결해 온 손 교수의 출연료가 비싸다며 트집을 잡았지요. 아나운서가 뽑은 말 잘하는 아나운서 1위,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5년 연속 1위,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1위, 브론즈 마우스상 수상 등으로 검증된 실력을 고려하면 결코 비싼 것은 아닐 겁니다. 패널들도 회당 50만 원의 출연료를 받는다고 하니까요.

공정한 진행을 위해 평소 사람도 가려서 만나는 등 자기관리에도 철저한 손 교수가 사퇴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분명 무겁고 슬픕니다. 하지만 예상 외로 화기애애해서 놀랐습니다. 이는 15기에 이르는 역대 시민논객들과 100분토론 관련 카페 회원들이 총출동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손석희 교수와 제작진의 태도였습니다.

지난 10월 22일 그의 거취가 논란이 되자 손 교수가 백분토론 홈페이지에 직접 쓴 글
 지난 10월 22일 그의 거취가 논란이 되자 손 교수가 백분토론 홈페이지에 직접 쓴 글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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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손석희다웠습니다. 그의 거취에 대한 논란이 일자 손 교수는 직접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자진 사퇴를 알려왔습니다. 모두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으며, 계속 진행한다 해도 프로그램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유입니다. 어떠한 정치적 배경도 없으며, 행간의 의미도 찾지 말라 합니다. 목요일 밤마다 그를 보지 못하게 된 시청자로서는 안타깝지만, 8년 간 100분토론을 진행해 온 사회자답게 '쿨한' 결정이었습니다. 참으로 손석희다운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방송이 진행된 스튜디오에서도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균형감각 그리고 특유의 위트로 늘 보던 것과 같이 훌륭하게 사회를 보았습니다. 양 토론자 간에 날이 설 때도 있었지만, 손 교수 특유의 재치로 분위기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이날 토론 역시 참 재밌더군요. 방송이 끝나자 400여 방청객들이 진심으로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마지막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손 교수는 7년 10개월 전과 다름 없이 차분하고 여유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기자의 눈에는 역설적이게도 더 짠하기는 했지만요.

100분토론, 그리고 손석희

100분토론은 1999년 10월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던 고 정운영 교수의 사회로 시작됐습니다. 유시민 전 장관을 거쳐 손석희 교수가 사회를 보게 되면서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TV토론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지요. 공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도,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대담하고 젊은 토론을 지향하며 갖가지 파격적 시도를 해 왔습니다. TV토론 사상 최초로 해외 현지 생방송을 하기도 했고, 시민논객 제도를 최초로 도입한 것도 100분토론이었습니다. 민감한 현안을 비켜가지 않는 과감한 주제 선정, 끝장토론, 수많은 어록을 낳은 패널 등으로 수없이 인구에 회자된 백분토론은 이제 대한민국 대표 논객의 반열에 오르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의 한가운데는 항상 명 사회자인 손석희 교수가 있었지요.

100분토론이 종영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자만 바뀔 뿐인데 느낌은 거의 종영입니다. 그만큼 '100분토론'하면 자연히 '손석희'가 떠오릅니다. 송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는 것이 연상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손석희 교수 하차에 관해 나왔던 다른 이유는 백분토론의 낮은 시청률이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밤 12시가 넘어서 시작하는 심야 시간대 TV토론 프로그램이 2% 이상의 시청률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본방사수'는 하지 못하더라도 심정적으로 100분토론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국민의 수는 훨씬 더 많습니다. 손 교수가 자진사퇴한 마당에 정권의 외압을 다시 들먹이고 싶지는 않지만, 시청률이 이유가 됐든 수지타산이 문제든 간에 손 교수가 사퇴하는 것이 MBC에 결코 득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확실하지요. '손석희 파워'가 얼마나 대단하냐면, 이날 방송 앞뒤로 광고가 스무 개 남짓이나 붙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동안 손석희, 연기자로는 꽝

이날 방송의 끝자락에는 손 교수의 지인들이 보내온 영상메시지가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연세대 김주환 교수, 문화평론가 진중권, 김주하 앵커, 영화배우 김혜수 등이 '내가 보는 손석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평소 다 전하지 못한 사연과 질문을 전했습니다.

손석희 교수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동년배다.
 손석희 교수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동년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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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손석희 교수와 동년배임을 밝히며 젊어 보이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물어 스튜디오는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지요. 이에 손 교수는 한 술 더 떴습니다. 노회찬 대표와도 동갑이라네요. 노회찬 대표는 센스있게 'V' 자를 그리며 방청객들이 배꼽을 잡게 했답니다. 손 교수는 자신이 동안이 아니라 박원순 이사가 노안이라며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주었습니다.

손 교수와 동갑이라는 말에 브이 자를 그려보이는 노회찬 대표
 손 교수와 동갑이라는 말에 브이 자를 그려보이는 노회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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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박중훈씨는 과거보다 손 교수의 표정이 단조로워졌다는 점을 짚어냈습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자제해야 하는 위치에서 끊임없이 훈련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며, 연기자로서는 부족하다는 농을 던졌습니다. 사실 방송으로 보는 손 교수는 다소 딱딱해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인간미를 물씬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손 교수의 수업을 듣는다는 김주희(성신여대, 24)씨는 "방송 이미지와 달리 의외로 배려심이 깊다. 여학생들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매사 배려해 주신다"고 전합니다. 최고의 프로답게 수업이 알찬 것은 물론입니다.

아나운서 입사 초기, 밝은 표정을 숨기지 않던 손 교수의 모습
 아나운서 입사 초기, 밝은 표정을 숨기지 않던 손 교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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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나고 난 뒤

토론이 끝나자 십수 명의 방청객들이 앞으로 나가 손 교수에게 꽃다발과 감사패, 선물 등을 증정했습니다. 생방송이 끝나고도 여러 단위에서 찾아온 방청객들과 사진을 찍느라 스튜디오는 한참 더 떠들썩했습니다.

생방송이 끝나고, 꽃다발 세례를 받은 손 교수
 생방송이 끝나고, 꽃다발 세례를 받은 손 교수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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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청객들과 사진을 찍는 손 교수. 한 번에 몇십 명씩 찍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방청객들과 사진을 찍는 손 교수. 한 번에 몇십 명씩 찍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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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교수의 후임으로는 '회당 200만 원의 출연료를 줄 필요가 없는' MBC 직원인 권재홍 기자로 결정됐다고 합니다. 권재홍 기자는 뉴스데스크 앵커, 문화방송 보도국 경제부장과 편집부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보도본부 선임기자로서 '경제매거진 M'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새 진행자 발탁과 함께 100분토론은 토론방식에 변화를 주는 등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고도 하던데, 어찌됐든 권 기자에게는 부담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8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니까요.

손석희 교수님, 오랜 기간 수고하셨습니다.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처럼 이제 목요일 밤이면 영화도 보시고 책도 읽으시고, 잠도 푹 주무십시오. 졸린 눈 부벼가며 목요일 밤을 지새웠듯이 이제는 새벽을 깨워 라디오를 들어야겠습니다. 김주환 교수의 말마따나,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돋보이려 하기보다는 프로그램을 위해서 존재하는 진정한 방송인이신 손 교수님, 앞으로도 계속 쿨하고 훈훈하게, '손석희다운' 방송 부탁합니다.

MBC <100분 토론>를 7년 11개월 동안 진행을 맡아온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가 20일 새벽 서울 여의도 MBC본사 스튜디오에서 '100분 토론 10년 그리고 오늘'을 주제로 자신의 마지막 방송을 마친뒤 방청객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MBC <100분 토론>를 7년 11개월 동안 진행을 맡아온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가 20일 새벽 서울 여의도 MBC본사 스튜디오에서 '100분 토론 10년 그리고 오늘'을 주제로 자신의 마지막 방송을 마친뒤 방청객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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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손석희, #백분토론, #100분토론,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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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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