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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의 1년치 김치.
 딸아이의 1년치 김치.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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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무래도 작년 김장보다 적은 것 같아."
"배추는 적지만 총각김치는 많잖아. 그래도 1년은 충분히 먹을 수 있으니깐 걱정하지 마. 먹다가 모자라면 엄마네 와서 또 가지고 가면 돼지."

딸아이는 김장을 하면서도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다. 지난해 김장 땐 아예 1년 먹을 김치를 다 담갔다. 때문에 올해엔 번거롭게 김치를 하는 일이 많지 않았고, 김장김치를 먹는 맛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김장김치를 먹다 새로 담근 김치를 먹으면 어딘지 모르게 싱겁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딸아이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1년 먹을 김치를 한꺼번에 담그는 게 좋겠다고 했다.

추워진다는 소식에 급하게 시작한 김장

욕조에서 배추를 절였다.
 욕조에서 배추를 절였다.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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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올해 김장은 20일경에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웬걸, 지난 주말(14일) 추위가 몰려온다는 일기예보를 들은 남편이 배추와 무 등을 뽑아와 갑작스레 그날 김장을 하게 됐다. 우선 배추는 절여야 했기에, 총각김치를 먼저 담갔다. 그리고 나선 배추 120포기를 절이기 위해 배추를 4등분하고 욕조를 소금물로 가득 채웠다. 지난해에 예상한 시각보다 배추가 빨리 절여져서 달밤에 생난리를 쳤던 경험이 있어, 이번엔 딸아이와 난 소금 양 조절에 온갖 신경을 다 기울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소용이 없었다. 집이 아파트라, 욕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실내 온도가 너무 높은 것이다. 온도를 잘 판단해 소금 양을 정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수월하지 않았다. 밤 11시쯤 배추를 보고 온 남편이 배추가 좀 이상하다며 말했다.

"얼른 가서 배추 좀 확인해봐. 아까는 산처럼 올라왔었는데, 지금은 푹 꺼졌어."
"이제 절여지기 시작하나보지."

난 설마 지난해와 같은 일이 또 있을까 싶어 여유롭게 배추를 보러 갔고, 간 김에 뒤집어 놓을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120포기 배추가 당장 씻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아주 푹 절여진 게 아닌가.

"엄마 배추가 다 절여진 것 같아. 어떻게 해?"
"그러게 안 씻으면 안 되겠지…."

"응…."
"할 수 없다. 씻자."

"작년처럼 잘못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도대체 이유가 뭘까? 작년보다 소금도 적게 썼는데."
"엄마 여기가 너무 따뜻해서 그런가봐."
"그런가보다. 오늘따라 거실에 보일러도 틀었으니…."

배추를 다 씻고 나니 새벽 2시 반이 되었다. "에고, 내년에는 이러지 말아야 하는데~"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많은 양의 김치를 해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자꾸만 실수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힘들지만, 방부제 든 김치 손자에게 먹이기 싫어

배춧속 넣기.
 배춧속 넣기.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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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씻어 놓은 배추를 먼저 확인했다. 밤을 새워 잘 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더니 "아니 이 많은 배추를 언제 다 씻었어?"하며 놀란다. 적당하게 잘 절여진 배추를 보고 있으니, 지난밤 고생스러움이 저만치 날아가는 듯했다.

김치를 사먹어도 좋으련만…. 언젠가 마트에 갔다가 판매하는 김치의 맛을 보았다.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하지만 포장된 김치 대부분에는 방부제가 들어있었다. 그것을 보고 힘들고 귀찮아도 김치는 직접 담가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건강할 때까지는 딸아이에게 김치를 담가주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손자들도 요즘 애들 같지 않게 김치를 아주 잘 먹어 기분이 좋다.

120포기 절여진 배추를 앞에 두고 가족 모두가 팔을 걷어붙였다. 아들과 딸, 사위, 남편 등도 예년과 다른 눈빛으로 김장을 도왔다. 모두 열심히 일을 해서인지 진도가 아주 빨리 나갔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배추에 속을 넣고 있는데 올케와 남동생이 왔다. 지원군 둘이 더 늘어나니 더 속도가 붙었고,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빨리 깔끔하게 김장을 마쳤다.

"이렇게 김장하면 200포기도 거뜬할 것 같아요"

김장 후에 먹는 맥주와 막걸리 한 잔
 김장 후에 먹는 맥주와 막걸리 한 잔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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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와 배춧속.
 돼지고기와 배춧속.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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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마무리를 하고 김장의 '꽃' 돼지고기 보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슬쩍 나가 족발도 사왔다. 굴과 함께 노란 배춧속도 내놓고 은근히 끓인 배춧국도 상에 올렸다. 올케는 "이렇게 함께 김장 하면 200포기도 힘들지 않을 것 같아요"라고 한다. 가족이 다 모이니 잔칫집처럼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이날 최고 인기남은 배춧속을 처음 넣어보는 아들과 아주 익숙하게 일을 거들어준 사위였다.

김장을 끝내고 먹는 점심은 아주 꿀맛이었다. 거기에 곁들인 막걸리 한 잔은 쌓였던 피로를 모두 풀어주는 듯했다. 올케에게 배추, 무, 파, 겉절이 등을 싸주었다.

돌아가는 딸아이에게 "네가 가지고 온 김치통 모두 꽉꽉 채워져서 만족하니?"하고 물었다. 딸아이는 "응, 엄마 아주 만족해"하며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래 내년에는 엄마가 준비를 아주  철저히 해서 더 맛있게 담가줄게"하니 딸아이는 무척 좋아한다. 맞벌이 하면서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는 것을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그런 딸아이게 앞으로도 김장정도는 꼭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

대걸레를 들고 청소까지 하는 아들의 놀라운 변화. 거기에 남편은 설거지를 하면서 나보고 고생했다면서 쉬라고 한다. 올케 말처럼 이런 김장이라면 200포기, 300포기도 힘들지 않을 것 같다.

해놓은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
 해놓은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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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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