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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4일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
 10월 24일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
ⓒ 오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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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저는 <나는 미디어다>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KBS에서 4년 동안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이 책이 나오는데 가장 큰 힘이 된 건 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입니다. 저 또한 올해 KBS에서 해고되면서 삶에 많은 변화가 생겼거든요. 이번에 KBS사장에 KBS계약직지부 홍미라 지부장이 등록했습니다. 이 분 이야기를 잠깐 할까 합니다.

제가 매일같이 드나드는 KBS계약직지부 사무실(KBS 신관 흡연실을 임시 사용 중이죠 ^^)은 비정규직법 시행 직후 KBS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해고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입니다.

노조원 면면을 보면 이력이 참 다양합니다. 누구는 드라마를 만들었고, 누구는 뉴스를 만들었습니다. 편성전략을 담당하던 사람도 있고, 여론조사를 책임지던 사람도 있습니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각자 공간에서 자신만의 꿈을 키워가던 이 사람들이 지금은 100일 넘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외치며 국회 앞에, KBS 본관 앞에, 방송통신위원회 앞에 서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단순하고 소박합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

세상은 그렇습니다. 꿈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런 소박한 주장, 당연한 상식이 자리잡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참 아리송하다가, 때로는 자기 밥그릇 챙기려고
젊은 친구들 꿈을 짓밟는 어른들이 얄밉기도 합니다. 집회 도중 경찰에 막힐 때면, 나는 왜 이렇게 짓밟히고만 있는지 화도 났다가, 어디 노동자 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을 때면 혁명 투사가 된 듯한 착각에도 빠집니다.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때는 곰 한 마리, 곰 두 마리를 새며 무료함을 달래는 내 모습이 어이없어 혼자 키득거리기도 하다가, 누군가 수고한다며 캔커피를 건낼 때면 어찌나 감격스러운지 눈물이 글썽거립니다. 긴 하루를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뚜벅뚜벅 돌아갈 때는, 몸은 지쳐 가는데 세상은 꿈적도 안한다는 생각에 괜히 무기력해지면서 소주병을 찾게 됩니다. 그렇지만 아침이 되면 다시 피켓을 들고 '비정규직 철폐'를 외칩니다. KBS계약직지부 노조원들에겐 지난 100여 일이 그랬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거리 위에서 이러고 다녀야 할까요? 알 수 없습니다. 

해고된 뒤 생긴 원망과 분노, 그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배울 점 많아

 국회 앞 1인 시위
 국회 앞 1인 시위
ⓒ 오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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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가 되면서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감정을 바탕에 깔게 되었지만(이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 그렇다고 삶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해고가 되면 화가 날 것이라는 가정은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지난 100여 일의 노동 운동을
통해 느낀 한 가지는 세상이 참 모순되고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이지만 그래도 재미있고 배울 게 많다는 점입니다.

열심히 노동 운동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사람들, 제가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일단 열정적이고 긍정적이며 성실하고 끈질기더라구요. 기륭전자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시원한 목소리, 언론노조에서 만난 아저씨의 소탈한 웃음, 솔직히 그런 자세가 아니면 하기 힘든 것이 시민운동이고 노동운동이며 언론운동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할 일은 많고 사람은 적으며 열심히 뛰어 다녀도 세상이 변하는 것은 티끌만큼이니깐요.

어쨌든 요즘 저는 KBS에서 해고되면서 미디어 밖 세상을 제대로 구경하는 느낌입니다. 정.말. 기륭과 평택과 용산을 바라보는 느낌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감정도 다양해졌고, 그 안에서 공감하고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도 풍부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웃음도 많아졌고, 울음도 많아졌으며, 술자리에서 하게 될 이야기도 10배는 많아졌습니다. 뭐랄까, 지갑은 궁색해졌지만, 사람은 좀 넉넉해지고 큰 느낌입니다. 꽤 괜찮은 경험입니다.

내일을 바라보는 눈, 꿈도 단단해지는 것 같습니다. 해고통지를 받고, KBS 출입을 저지당하고 나니, 꿈의 화원을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되더라구요.

어제 있었던 재미있는 사건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KBS 계약직지부 홍미라 지부장(지부장이라는 말보다 누나라는 말이 더 친근하지만 일단 지부장으로 ^^)이 KBS 사장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홍미라 지부장이 앞세운 캐치프레이즈는 '공익과 인간이 자본과 효율을 압도하는 KBS'입니다. 그리고 그런 캐치프레이즈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로 ▲국가와 시장으로부터의 독립 ▲문화를 창조하고 선도하는 최고의 품질 ▲풍부한 정보, 개방적인 참여, 다양한 목소리가 넘치는 다양성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여성, 지역,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존중, 인간에 대한 올바른 대접-휴머니티 ▲인간과 자연, 개인과 사회, 도시와 시골의 단절된 관계를 복원하고 소통을 꿈꾸는 녹색 ▲정직에 대한 책임, 성실에 대한 책임, 공정에 대한 책임 ▲자유로운 조직, 창의적인 문화, 독창적인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등 7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조금 멋지지 않나요? 전 감히 공영방송 KBS가, 더 나아가서는 내일의 미디어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홍미라 지부장의 KBS 사장 후보 출마는 이벤트성 해프닝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KBS의 문제, 한국 미디어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공론화시키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방송 사장 지원서
 한국방송 사장 지원서
ⓒ 오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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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홍미라 지부장의 공통점은 보다 나은 내일, 보다 나은 미디어, 그러니깐 인간이 존중받고 꿈이 존중받는 내일의 미디어를 꿈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울퉁불퉁, 삐걱삐걱, 때론 넘어지고 때론 거꾸로 가기도 하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발전하고, 그것을 가능케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라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 보다 나은 KBS, 보다 나은 미디어를 꿈꾸기 위해서 이병순 사장이 나을까, 홍미라 지부장이 나을까... 전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www.iammedia.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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