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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씨 여물어 가는 곡성 연동마을 어머니 집
 상추씨 여물어 가는 곡성 연동마을 어머니 집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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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집 근처에서 아내와 산책하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곡성 연동마을에 사는 정동순씨 어머니다.

"광양이지요? 여기 부산인데요, 우리 어머니가 통화 좀 하고 싶다고 하네요."

그 집 막내딸이 전화를 걸어와 연동 어머니를 바꾸어준다.

"참나! 허망허네요. 내가 암이다요, 암."
"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연동 어머니'께서 암에 걸렸다는 얘기에 눈물이 앞을 가려 길이 보이지 않았다. 연동 어머니는 고향집에 있고 싶다며 곡성으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던 날, 아내와 함께 달려가니 밥맛이 없다며 숟가락 몇 번 뜨더니 이내 내려놓고 만다. 다음 날, 연동 어머니께서 주신 참깨를 모두 털어서 죽을 쑤어 아내와 함께 갔다.

"참말로 고마운 양반이여. 근디 머더게 죽을 다 쒀 왔소. 꼬소름헝게 참 맛있소."

"이게 마지막 퍼주는 장이 될랑가 모르겄소"

꽃상여 하나 얻어 타고 가려고 평생 흙과 함께 나뒹굴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셨던 연동 어머니
 꽃상여 하나 얻어 타고 가려고 평생 흙과 함께 나뒹굴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셨던 연동 어머니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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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만 78세인 연동 어머니는 지난 10월 10일 아침, 고단했던 이승의 무거운 짐을 훌훌 털고 먼 길을 떠나가셨다. 꼭 우리 어머니처럼 가냘픈 몸매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자식들 입에 먹이 물어 나르며 열심히 살다 가셨다.

"나 죽기 전에 요 묵은 장 좀 퍼가쇼. 이게 마지막 퍼주는 장이 될랑가 모르겄소."

장독대 한켠에 있는 장독에서 묵은 간장을 퍼 담아 주시며 주름진 얼굴을 펴보이셨다. 땀 흘려 농사지어 자식들에게 퍼 주는 그런 행복한 모습 말이다.

"글고, 고구마 캘 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랑가 모르겄소. 나 죽더라도 혹시 우리 집에 들르거든 집 뒤안 밭에다 듬섬듬성 고구마 숭거 놨응게 캐다 묵으쑈. 막내딸한테 나 죽더라도 시가집에 옴선감선 캐다 묵으라고 고구마 숭거놨다고 힜다가 혼나불었써. 하이간 나 없어도 꼭 캐다 묵으쑈."

그렇게 신신당부하던 연동 어머니는 지난 12일 예쁜 꽃가마 하나 얻어 타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먼 나들이를 떠나셨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허리 굽혀 평생 손발톱 속에 흙을 넣고 살던 마을 뒷산 고추밭에 묻혔다. 상여가 고추밭에 도착해 새로 짓고 있는 어머니 집으로 향할 때 나는 사위들과 마을 사람들 틈에 끼여 관을 들었다.

2남5녀 동순씨 형제들, 차례대로 어머니 가슴에 흙을 얹는데 마지막으로 나와 아내에게도 삽을 내주었다. 똑같이 자식 취급 해주는 유족들이 너무도 고마웠다. 나는 어머니 가슴에 흙을 얹으며 "어머니, 이제 편안히 쉬십시오. 그 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이승에서 흘렸던 땀방울 이제 거두시고 편히 쉬세요"라고 인사했다.

연동 어머니가 누운 밭은 해마다 고추 들깨 콩 배추를 심던 밭이었다. 몸이 아픈데도 자식들에게 나눠주려고 올봄에도 고추 들깨 콩을 심었다. 어머니 누운 무덤가에는 아침에 거둬놓은 콩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동순씨는 밭에 떨어진 콩알을 주워 "우리 어머니가 애쓰게 지은 농사네…"하며 아내 손에 쥐여 준다.

연동 어머니 무덤을 뒤로 하고 발길을 옮기려니 눈물이 핑 돈다. 적적하실까봐 가끔 전화를 걸면 "아이고, 고마운 양반. 잘 계시쏘?"하며 반가운 목소리로 살갑게 대하던 연동 어머니는 이제 먼 곳으로 가셔서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지워야 한다.

고추 들깨 콩 배추 심던 밭에 누운 연동 어머니

손발 움직일 때까지 연동 어머니는 손에서 호미를 놓지 않았다.
 손발 움직일 때까지 연동 어머니는 손에서 호미를 놓지 않았다.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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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1월, 고향 진뫼마을로 설을 쇠러 가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오마이뉴스>를 보다가 미국에 거주하는 정동순씨가 쓴 "설날, 밤새 오빠를 기다리던 날의 풍경"이라는 글을 우연히 읽었다. 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고향마을 추억 이야기가 너무도 가슴에 아릿하게 다가와 댓글을 달게 되면서 정동순씨 어머니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미국에 사는 정동순씨는 얼마나 고향이 그리울까? '마을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서 보내주면 참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한 끝에 마을 이름을 알아냈다. 동순씨 고향은 내가 주말이면 임실 진뫼마을로 가기 위해 타고 가는 고속도로 옆에 있는 곡성 연동마을이었다.

동순씨는 고향마을 사진을 잘 받았다며 고향마을에 어머니 홀로 농사지으며 살고 있는데 한번 찾아가봐도 좋다고 했다. 이왕이면 어머니 사진을 찍어서 보내면 더 좋아할 것 같아 사진기를 들고 찾아갔다. 그렇게 연동 어머니와 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감이 빨갛게 익어가던 2003년 가을, 미국 사는 딸 동순씨에게서 우리집 전화번호를 알아낸 연동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거기가 임실양반 집이 맞소? 나 여그 곡성인디요, 다름이 아니라 뭐 줄 것은 없고 감 좀 따갔으먼 해서 전화를 혔소. 언제 임실 집에 가요?"
"뭐더게 저까지 감을 줄라고 그러세요. 태풍 불어서 다 떨어져 불었을 턴디 자식들이나 따 주제."
"아니라우. 언제 올라요? 내 그날은 들에 안 나가고 지다리고 있을라요."

감을 가지러 가지 않으면 서운해 하실 것 같아 고향 가는 길에 연동마을에 들렀다. 그날 어머니는 아침부터 대추 인삼 넣고 닭을 푹 삶아두고는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 해 11월, 우리 어머니 제사 지내러 다녀오던 길에 스웨터 한 벌을 사 들고 연동 어머니댁에 들렀다. "뭐더게 옷을 샀냐"며 나무라시면서도 아내가 입혀준 스웨터를 입고 골목길에 서서 '어서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던 연동 어머니 모습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어머니 빈자리를 따뜻하게 채워주셔서 행복했습니다"

콩 걷어낸 밭에 연동 어머니 잠들고 들깨만 푸르게 남았다.
 콩 걷어낸 밭에 연동 어머니 잠들고 들깨만 푸르게 남았다.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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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연동마을 어머니와 나는 사위처럼 친아들처럼 인연을 맺고 살았다. 손자들 주려고 만든 엿이며 참기름이며 토종닭이며, 시래깃국에 넣어 먹을 들깻가루 같은 것까지 챙겨 주셨고, 몸뻬 속에 꼬깃꼬깃 넣어둔 돈을 꺼내 우리 아이들 손에 쥐어 주기도 하셨다. 설날이 오면 부산 아들네 집 가시는 연동 어머니를 하루 전날 모시고 와 순천 우리 집에서 함께 자며 밤새 긴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홀로 시골집에서 얼마나 적적할까'하는 생각에 가족들 데리고 가서 하룻밤 자고 오면서 말동무가 되어드리기도 했고, 몸뻬를 사다 드리기도 했다. 고향 가는 길에 연동 어머니 집에 들러 어두운 형광등을 바꾸었고 무뎌진 낫을 갈았으며 벼 벨 때 도와 드리기도 했다. 상처 난 곳 득득 긁고 계시기에 연고와 파스를 사다 드리기도 하며 꼭 내 어머니처럼 지냈다.

연동 어머니는 해마다 된장이며 고추장, 간장을 퍼 담아주셨고 땀 흘려 지은 쌀을 한 가마니나 주기도 해서 내 눈물을 쏙 빼놓기도 하셨다. 우리 어머니 살아생전 "너그덜 결혼하면 쌀 조께 깨 조께 콩 조께 조마니 조마니 싸 주고 싶다"던 약속 저버리고 너무 빨리 가셨는데 연동 어머니께서 그 빈자리를 메워 주셨다.

꼭 내 친어머니처럼 나를 대해주던 연동 어머니. '내 어머니 월곡댁 빈자리를 따뜻하게 채워주셔서 지난 7년간 저는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고맙고 고마웠습니다. 이제 편히 잠드셔요.' 연동 어머니 누운 고추밭을 바라보며 인사드리니 내게 이렇게 대답하시는 것만 같았다.

'아따! 손발 닳도록 뛰어댕김선 살다가 고추밭 아래 누우니 이리 핀허요!'

덧붙이는 글 | 김도수 기자는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고향마을로 돌아가 밭농사를 짓고 있고 전라도닷컴(http://www.jeonlado.com/v2/)에서 고향 이야기를 모은 <섬진강 푸른물에 징검다리>란 산문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 기사는 전라도닷컴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어머니, #진뫼마을, #섬진강, #덕치면, #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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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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