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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당시 희생된 한국인에 대한 사죄와 일본 평화헌법9조 반대를 알리기 위해 100일 동안 한국순례길에 나섰다.
▲ 한국순례 나선 마사키 타카시씨 태평양전쟁 당시 희생된 한국인에 대한 사죄와 일본 평화헌법9조 반대를 알리기 위해 100일 동안 한국순례길에 나섰다.
ⓒ 최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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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당시 희생된 한국인에 대한 사죄와 일본의 본격적인 군국주의 부활을 의미하는 '헌법 제9조 개정' 반대를 알리기 위해 도보순례에 나섰습니다"

지난 9월 9일부터 강화도 마니산을 출발해 서울, 강릉 등 동해안을 거쳐 오는 12월 17일 임진강까지 100일간 한국 도보순례에 나선 일본 생명평화운동가 마사키 타카시(正木 高志)씨는 일본국민들이 헌법 9조를 계속 유지한다면 한반도의 통일도 실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walk9'이란 주제로 20여 명과 함께 한국 순례길에 나선 그의 목적은 '헌법 9조를 (일본인) 스스로의 손으로 다시 선택한다'는 데 있다. 1945년 태평양전쟁의 패전으로 승전국인 미국의 주도로 일본 정부가 전쟁포기와 비무장을 맹세한 이 '헌법 9조'의 개정은 내년 5월부터 언제든지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도록 의회를 통과했다.

지난 8월30일 총선에서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뤘지만 하토야마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 의원들의 80~90%는 개정을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내 각종 미디어 여론조사 결과 50대 50으로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정치와 선거에 무관심한 20~30대 젊은 층이 지난 총선에서 대거 투표에 참여해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내에서도 이 '헌법 9조'의 개정 반대를 위한 새로운 움직임, 즉 '9조를 구하는 운동(9 aid movement)이 일고 있어 젊은 층의 투표율이 지난 총선처럼 3%정도만 참가해도 개정을 막을 수 있다"며 희망적이라고 밝혔다.

그를 생명평화, 반전운동가로 이끈 계기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과거 전쟁 당시 수많은 일본인과 한국인들의 희생을 알게 되면서 얻은 깨달음의 결과라고 고백했다. 태평양전쟁 말 미군의 포격으로 오키나와 희생자는 무려 25만여 명. 이 중 군인이 10만 명, 민간인이 15만 명이었고 그 중 1만5000여 명이 강제징용당한 조선인이었다.

그는 3년 전 오키나와 희생자 묘지에서 기도 중에 전쟁에 휩싸여 무참히 희생된 조선인이 생생하게 떠올라 사죄와 한국순례를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출발부터 신기한 일도 벌어졌다. 마니산에서 함께 걷던 일본인 3명, 한국인 3명과 함께 기념촬영 할 때 아침 해 주위로 무지개가 떠올랐고 당시 평화행진 중이던 도법스님도 만나 깊은 인연을 갖게 됐다. 지난 6일 순천에 도착한 그와 그 일행은 저녁 순천YMCA평화학교에서 '일본헌법9조' 개정 반대 설명을 위한 강연회를 한 데 이어 다음날 순천만과 구례를 거쳐 8일 광주로 향했다.

그는 "일본이 헌법 9조를 (개정하지 않고 국민투표를 통해) 다시 선택하기 위해서는 한국과의 화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사죄하는 일과 걷는 일도 자신이 할 수 있다"며 몸소 실천에 옮겼다.

일본이 패전하던 1945년 출생한 그는 동경교대 사학과를 졸업해 인도철학을 섭렵했고 2000년부터 농업을 시작했다. '마이사'라는 필명으로 음반도 냈고 '탈아메리카' 등 다수 저서 발간과 강연, 집필 활동도 하고 있다.


태그:#한국순례, #마사키 타카시, #일본 평화헌법9조, #WALK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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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어용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세월호사건 후 큰 충격을 받아 사표를 내고 향토사 발굴 및 책쓰기를 하고 있으며,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인생을 정리하는 자서전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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