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대전충남
"국제전화인데 우체국이라네…"
사기꾼 상대로 사기 친 내 친구
09.11.06 16:43 ㅣ최종 업데이트 09.11.06 16:43 김학현 (kimh2)

우리 부부가 친구 부부와 함께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는 길이었다. 친구의 휴대전화기가 울렸다. 친구는 전화를 받아들더니, 송화기 쪽을 손으로 가리며, 나를 향하여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국제전환데. 우체국이라는데…"

 

벌써 그 전화가 무슨 전화인 줄 안다는 눈치다. 나 또한 경험이 있기에 중국에서 걸려온 금융사기 전화라는 걸 금방 알아챘다. 난 속으로, '아직도 이런 전화를 하는가 보네' 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는 길이었다. 친구의 휴대전화기가 울렸다. 친구는 전화를 받아들더니, 송화기 쪽을 손으로 가리며, 나를 향하여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국제전환데. 우체국이라는데…"
ⓒ 김학현
전화사기

근데 이 친구는 능청을 떨기 시작했다. 금방 충청도 시골 노인 행세 발음으로 응대하는 게 아닌가. 저쪽에서도 신이 난 모양이다. 한 건 걸려들었다고 생각했나 보다. 카드를 발급받은 적이 있는가 묻더니, 그런 적 없다고 대답하니 그래도 은행에서 카드를 보냈는데 반송되었다는 것이다. 대부분 이런 식으로 사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워떻게 해야 헌 대유?"

 

이 친구 연기가 수준급이다. 저 쪽서는 은행과 연락을 취하여 경찰청에 신고를 할 테니 안심하라고 했다고 한다. 전화를 잠시 끊고 친구는 너스레를 떤다.

 

"끝까지 한 번 가보자구. 허허허. 경찰청에 연락을 취하면 경찰청에서 전화가 온다고 했으니까. 기다려 보자구."

 

우체국, 경찰청, 은행?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신고를 받고 전화를 한 거예유?"하고 친구가 능청을 떠는데, 저쪽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모양이다. 경사 000라고 자신의 신분까지 밝혔다고 한다. 물론 가짜인 걸 다 알지만.

 

경찰서나 지구대에 가면 그리 여자 경찰을 잘 만날 수 없는데, 이런 전화의 경찰은 하나같이 여자다. 내가 받았던 전화 주인공도 여자였는데, 친구가 받은 전화 목소리도 여자였다. 카랑카랑한, 하지만 연변 냄새가 나는 목소리가 간간이 친구의 대답 속에 묻혀 내 귀에까지 들린다.

 

  
"단말기 앞에 왔는데유, 이제 워떻게 해야 헌대유?" 나와 내 아내, 그리고 그 친구의 아내는 그러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가 입에 손을 갖다 대며 "쉿" 한다.
ⓒ 김학현
전화사기

다른 때 우체국, 은행, 경찰이 이렇게 신속하게 연락이 닿아 국민들의 아픔을 헤아려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은 한 사무실에서 하는 짓이니 너무나 신속하다. 전화를 건 경찰(?)은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을 수차례 하며, 곁에 누가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말은 사기꾼들이 항상 빼놓지 않는 주문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가 마침 휴게소에 도착했다. 친구는 현금인출기까지 간다. 이왕에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마음 먹은 모양이다.

 

"단말기 앞에 왔는데유, 이제 워떻게 해야 헌대유?"

 

나와 내 아내, 그리고 그 친구의 아내는 그러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가 입에 손을 갖다 대며 "쉿" 한다. 우리는 가까스로 웃음을 참았다. 어떻게 되는지 보려면 그래야 했다.

 

'키득키득', 이 참을 수 없는 웃음

 

카드를 넣으라고 한 모양이다. "넣었이유." 넣지도 않고 잘도 대답한다. 다음에는 무슨 글귀가 뜨냐고 묻는 모양이다. "잘 안 돼…는디…? 음…." 말을 더듬는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큰소리로 말한다.

 

"이것들아 그렇게 사기 치기가 쉬운 줄 알아. 못된 것들! 니들한테 당할 줄 알아? 당장 그 짓 그만두지 못해!"

 

  
"이것들아 그렇게 사기 치기가 쉬운 줄 알아? 못된 것들! 니들한테 당할 줄 알아? 당장 그 짓 그만두지 못해!"하고 사기꾼들에게 호통을 치는 친구
ⓒ 김학현
금융사기

그런데 저쪽서도 만만치 않은 응수가 있는 듯하다. 내 생각으로는 그쯤 되었으면 얼른 전화기를 놓을 뻔도 한데 친구의 호령에도 불구하고 계속 통화가 이어지는 걸 보니 그쪽도 무슨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친구는 이후에도 여러 번 발음 센 소리를 하더니 전화를 끊는다. 넷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사기 전화임이 발각되고도 그쪽에서 전화를 끊지 않은 이유가 하도 궁금해서 친구에게 물었다.

 

"사기꾼인 것이 들통이 났는데도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아, 당장 끊지 않고. 무슨 말을 해?"

"알면서도 자신을 골탕 먹인 게 분해서 그러지 뭐. 막 욕을 하네, 내 참."

 

사기꾼도 할 말이 있는 세상인 거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얼마나 일상이 되었으면 이리 친구가 사기꾼을 골탕 먹일 수가 있을까. 얼마나 만연했으면 이 같은 전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즐기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사기꾼에게 눈 하나 깜짝 않고 사기를 친 내 친구, 그걸 배꼽을 잡고 감상한 우리 부부와 그 친구의 아내, 모두가 일상이 아닌 것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사기꾼들처럼, 우체국과 경찰, 그리고 은행이 그렇게 신속하게 공조해 이런 시답잖은 사기전화쯤 발도 못 붙이게 하는 날이 언제나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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