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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행정수도 건설'을 추진하던 시절, 이명박 대통령은 그에 맞선 '전위투사'였다. 한나라당도 반대했지만,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그도 물불 안 가리고 나섰다.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된 그가 대선 직전인 그해 12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행정수도 이전이 안보 불안을 부를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후 반대 활동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시의회 시정연설, 강연 등을 통해 "정치권이 지역간 갈등을 부추기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고 비판했고, 2004년 신년사에서는 '통일시대 행정수도 건설을 위해 남북한 공동위원회 구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국민투표 실시 주장, 노무현 대통령과의 토론 제안, 헌법소원 검토에 이어, 수도이전 반대 운동단체들에 대한 서울시 예산 지원 의사까지 밝혔다.

 

이런 활동은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을 내세워 위헌 결정을 내릴 때까지 계속됐고, 이 대통령은 수도 이전을 막아낸 1등 공신으로서 그의 정치적 위상을 높였다.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수도 분할은 국가 정체성과 통치의 근본을 쪼개는 것으로, 수도 이전보다 더 나쁘다"는 것이었다. 또 나중에 농담이라고 해명했지만, "행정수도 이전을 못하게 하려면 군대라도 동원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노 대통령에게 반박 글... "내 꿈은 통일 수도"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이 국회를 통과(2005년 3월 2일)한 뒤에도 반대 뜻을 굽히지 않았고, 3월 24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글을 띄우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홈페이지에'행정수도 건설을 결심하게 된 사연'이라는 글을 올리자, 서울시 홈페이지에 "행정수도에 관해 저 이명박이 말씀드립니다"라고 반박 글을 발표한 것이다.

 

그는 "저의 꿈은 통일수도"라며 "대통령께서는 '분할된 수도'를 꿈꾸고 계시지만, 저는 '통합된 수도'를 꿈꾸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행정중심복합도시에 찬성한 한나라당까지 겨냥해 "수도 이전과 수도 분할에 정략적으로 담합한 정치권은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은 지방이 아니라 세계와 경쟁하고 있다", "수도 이전은 '평화통일'이라는 민족의 염원과 통일한국의 장래를 염두에 두고 구상돼야 한다", "행정중심도시는 어차피 성공하지 못할 일"이라고 했다. 그해 7월에는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법에 대한 헌법소원과 관련해 위헌이라는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내기도 했다.

 

그의 행정중심도시 반대운동은 '청계천의 성공'과 함께 한나라당 내에서 그가 박근혜 전 대표와 구별되는 정치인으로서, 수도권 의원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큰 자산이 된다.

 

그가 이때 노 대통령을 상대로 쓴 글은 이 대통령이 지난 4일 정운찬 총리에게 세종시 원안수정과 관련해 제시한 3가지 기준 즉, 국가경쟁력, 통일 이후의 국가미래, 해당지역의 발전과 그대로 연결된다.

 

대선 나서며 입장 바꿔 "공직자들 모두 이사, 자녀들도 고교까지 행복도시에서"

 

이처럼 나름의 논리를 내세웠지만, 그는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뒤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2006년 9월 22일 대전지역 정책전문가들과의 포럼에서 "행정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기왕에 옮기기로 한 만큼 잘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행정도시 건설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이어 대선의 해인 2007년 초, "행정수도+α"라는 입장을 정리했다. 8월 한나라당 대전시당 기자간담회에서는 "현 정부가 수도권에서 행정수도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 특별수당과 기차표 할인 혜택 등을 주겠다고 했다는데 과연 중부권을 발전시키려는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1만4천여 명의 공직자들이 모두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이사하고 자녀들도 고등학교까지는 여기서 다닐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런 식이라면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과천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 이 정권이 진정한 의미에서 행정수도를 옮긴다고 할 수 있느냐"고도 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경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의 경쟁이 가열되면서 '명품도시'라는 말도 했다. 대전 합동연설회에서 "기왕 시작된 것은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저는 반대할 땐 반대하지만 하기로 맘먹으면 누구보다 잘한다. 진정한 명품도시를 더 빨리, 더 크게 제대로 해 놓겠다"고 약속했다.

 

대선 후보로서 나선 11월 말 충남지역 유세에서 "'이명박표 세종시', 명품 첨단도시가 되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 그러나 지금의 계획은 답습하지는 않겠다"면서 "과학, 산업, 행정 기능을 접목하고 주변 도시들과의 연계를 강화해 도시의 자족기능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저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이미 결정된 것이니 내가 더 확실하게 하겠다"고 했을 뿐 별다른 설명 없이, 서울시장 시절의 극력반대론을 뒤집은 것이다. 속내는 '세종시 반대'였다는 점에서 이를 공약으로 내걸고 대선에 임하는 것이 정도였지만, 대권을 눈앞에 두고 있던 그는 그럴 생각은 없었고, 결국 또 한 번의 '180도 회전'으로 나타나게 된다.

 

결국 대통령 2년째에 원래 입장으로 회귀

 

이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된 뒤에도 세종시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유지했다. 이완구 충남지사는 2008년 1월 21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게 행정도시 건설 방향에 대해 물었더니 '행정도시는 차질 없이 갈 것이다. 행정도시에 내가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능이 추가될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대통령 취임 직후인 3월 20일 충남도청 업무보고에서도 "행정도시를 누가 축소할 것이라고 하던가. 행정도시는 계획대로 추진한다"고 확약했고, 이런 태도는 공식적으로는 올해 6월 20일 당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의 청와대 회동에서 "당초 계획대로 현재 진행 중이며, 정부 마음대로 세종시 계획을 취소하고 변경할 수는 없다"고 할 때까지 계속됐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7월 중순 한나라당의 핵심 당직자에게 "대통령의 양심상 세종시는 그대로 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10월에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는 적당한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뒤, 결국 정운찬 총리를 앞세워서 세종시 백지화를 공식화했다.

 

대선공약 번복에 대한 사과 한 마디 없이, '자족도시가 될 수 없다'는 주장 하나로 2002년 대선 이후의 모든 논의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두 번의 '180도 회전'을 통해 이 대통령은 자신의 '소신'으로 돌아왔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일관성'을 잃었다. 이 대통령의 거듭된 말바꾸기는 세종시를 둘러싼 박근혜 전 대표 그리고 야당들과의 격돌에서 그의 최대 약점이 되고 있다.


태그:#이명박, #세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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