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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대납 프로젝트'의 도움을 받은 심아무개씨. 그는 언론에 자신의 실명과 얼굴이 공개되지 않기를 원했다.
 '벌금대납 프로젝트'의 도움을 받은 심아무개씨. 그는 언론에 자신의 실명과 얼굴이 공개되지 않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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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고맙고, 로또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심아무개(24)씨는 지난 5월 2일 있었던 '하이(Hi)서울 페스티벌' 개막식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서울시로부터 2억3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9명의 시민 중 한 명이다. "현장에는 있었지만 개막식 단상에 올라가지도, 행사를 방해하지도 않았다"는 심씨. 지난 6월말, 별다른 직업이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레 거액의 민사소송을 당한 그는 일당 7만원의 막노동 현장을 전전하며 소송비용을 모아야만 했다.

심씨의 오랜 고민이었던 변호사 선임 비용이 해결된 것은 지난 10월 9일. 갑자기 그를 찾아온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수가 변호사 선임 비용 200만원을 대신 부담하겠다고 말했다. "그전까지는 <딴지일보>가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다"는 그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티셔츠 구매로 연대하는 촛불 시민들

딴지일보 바탕화면의 '벌금대납 프로젝트'
 딴지일보 바탕화면의 '벌금대납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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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대납 프로젝트'.


<딴지일보>에서 지난 8월 26일부터 진행 중인 기획이다. 이 기획은 지난해와 올해 촛불시위 참가자 중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등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았거나 그 때문에 생활이 어려워진 시민들을 찾아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방법은 이렇다. 자체 디자인한 티셔츠와 컴퓨터용 마우스 패드를 팔아서 남은 수익으로 지원금을 마련하고, 매달 시민 2명을 선정해 각각 200만 원씩을 지원한 후, 모든 과정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 심씨는 이 '벌금대납 프로젝트'의 첫 번째 수상자로 선정되어 변호사 선임 비용을 지원받은 것이다. 지난 3일까지 '벌금대납 프로젝트'로 판매된 물품수입은 약 5500만 원, 순 이익은 2800만 원 정도다. 제작 및 유통비를 제외하면 판매 금액의 절반 정도가 벌금 지원금으로 남는 셈이다.

<딴지일보> 시각에서 보면 금전적인 지원이 필요한 사람은 이미 '차고 넘치는' 수준이다. 지난 10월 20일 민주당 우윤근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08년 1월 1일부터 올해 7월까지 검찰이 집회 및 시위법 위반으로 기소한 건수는 모두 811건. 이 중 21건만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 중 상당수가 낮은 액수의 벌금형으로도 큰 부담을 느끼는 학생과 무직자다. 서울 북부지방법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5월 1일부터 올해 9월 30일 사이에 벌금형 이상을 선고받은 사람은 모두 30명. 이들 중 대학생이 20명, 직업이 없는 사람은 4명이었다. 이들은 집회 및 시위법과 관련법 위반으로 적게는 2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누리꾼 2300여 명에게 5500여만 원어치 팔려

김우현씨 가족(좌)과 이해준 감독(우)
 김우현씨 가족(좌)과 이해준 감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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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구매한 2300여 명의 누리꾼들은 행사 취지에 크게 동감하는 분위기다. 티셔츠에 인쇄된 문구가 '행동하는 양심', '이의 있습니다' 등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라서, 국외에 있어 두 대통령 서거 당시 조문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해외 배송문의도 잦은 편이다.

김우현(47)씨는 평소 <딴지일보>를 애독하던 중 '벌금대납 프로젝트'의 취지에 공감해 티셔츠를 구매했다. 김씨는 해당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을 올리는 <딴지일보> 내 '인증샷 게시판'에 다섯 가족 모두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려 가장 많은 추천을 받기도 했다.

"요즘 답답한 일이 많은데 무슨 말을 하거나 직접적으로 행동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런데 이런 기획은 부담도 적고 해서 동참하게 됐죠. 아이들도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다들 좋다고 하더군요."

김용석 <딴지일보> 편집장은 "직접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티셔츠를 사는 것으로, 시위에서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요구를 한 사람들과 연대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천하장사 마돈나> <김씨 표류기>등의 영화를 연출한 이해준 감독은 지난 10월 9일 열렸던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시상식에서 '이의 있습니다' 티셔츠를 입고 각본상을 수상해 화제가 됐다. 이해준 감독은 "프로젝트의 취지에 동감해서 구매했고, 기획력에 반했다, 의미있고 예쁜 티셔츠라고 생각돼 입고 갔다"며 "앞으로도 시상식에 나갈 기회가 있을 경우 이 옷을 입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집시법' 위반으로 처벌당했거나 재판중인 이들은 이 기획에 한층 더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변희연(31)씨는 지난 2008년 8월 15일 일반도로교통방해죄로 150만 원, 올해 초 집시법위반으로 5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변씨는 "직장인인 내게도 200만 원은 굉장히 큰 부담이었다"며 "촛불이 잠잠해지고 나서 '내가 헛된 일을 한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들었었는데 이 프로젝트 덕분에 확신과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민주 시민들 위축되는 것 조금이나마 해결하고 싶다"
[인터뷰] 김용석 <딴지일보> 편집장

바른 말을 했다는 이유로 한 시민단체 상임이사가 '대한민국'에게 거액의 민사소송을 당하는 요즘, 현행법 위반자의 벌금을 대납해주는 프로젝트는 상당한 부담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기획이다. 이들은 왜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한 걸까. '벌금대납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김용석 <딴지일보> 편집장을 만났다.

김용석 <딴지일보> 편집장
 김용석 <딴지일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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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금대납 프로젝트'의 취지를 간단히 설명해 달라.
"보통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및 관련법 위반으로 인한 벌금은 적게는 수십 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에 달한다. 평범한 시민에게는 금전적으로 적지 않은 부담이고 그렇게 벌금을 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때문에 정당한 집회나 시위라도 다시 참여하기 어려워진다. 시위 한 번 잘못했다가 민주시민은커녕 빚쟁이,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는 세상인 거다. 넓은 의미의 연대로 그걸 해결해보자는 생각이다."

- 지급 기준이 뭔가.
"첫 번째 수상자는 관련 단체의 추천을 거쳐 선정했다. 두 번째 수상자는 아직 정하지 못했는데, 벌금이 선고된 약식 명령서와 지원금을 받아야 하는 사연이 있으면 누구나 <딴지일보>에 신청할 수 있다."

- 첫 번째 수여식에서 촛불 시민 한 명과 대운하 양심선언으로 유명해진 김이태 박사가 각각 200만원을 받았다. 김이태 박사는 왜 줬나.
"매달 촛불 시민 한 명과 누가 봐도 '바보'인 사람에게 주는 '바보상'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200만원씩 지급하고 있다. 김이태 박사는 후자다. 그는 2008년 5월 24일, 다음 아고라에 '4대강 정비 계획의 실체는 대운하'라는 양심선언 글을 올렸다. 현 정권에 의해 지난 2년간 대운하 추진에 직·간접으로 동원되었던 사람들 중, 자신의 양심에 따라 내부고발을 한 이는 대한민국 전체에서 그가 유일했다. 그는 바보다.(웃음) 그래서 '바보상'을 수여했다."

- 기획을 진행하면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나.
"김이태 박사가 '(바보상을 받으면) 또 주변 사람들이 고생하게 된다'고 처음에 수상을 고사했다. 그래서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와 내가 직접 집을 방문해 반 강제로 상을 수여했던 일이 기억이 난다. 또 어느 촛불 시민은 '벌금대납 프로젝트'로 200만원을 지원해주겠다고 하자 '부당하게 부과된 벌금이므로 도움을 받지 않고 끝까지 항소할 생각'이라면서 거절하더라."

- 현행법을 위반한 사람들 벌금을 대신 내주는 것에 반발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이게 '옳은 일이라서 한다'는 생각은 없다. 그저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다. 그리고 그 절차가 문제가 없으니 상관없지 않나 싶다. 관련 세금도 다 낸다. 다만 이러다가 <딴지일보> 망하는 거 아닌가 겁은 난다.(웃음) 그러나 만약 괘씸죄 같은 걸로 어떤 위협을 당한다면 우리는 영광이다. 괘씸죄는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뒤집어쓰는 것 아닌가."  

- 이후 계획이 있다면.
"우선 연말까지 매출액과 이익금이 얼마나 쌓이고 어떻게 사용되는지 투명하게 볼 수 있는 시스템을 홈페이지에 구축할 예정이다. 수상자에 대한 지원도 단순히 벌금을 대납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송비용의 범위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판매 물품은 지금의 티셔츠와 마우스패드 이외에 USB메모리 정도를 추가할 계획이다. 시민단체들과 연대하는 것도 고려중인데 그쪽은 너무 비장한 분위기고 우리는 발랄하고 즐거운 연대를 원해서 잘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김동환 기자는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재학생입니다.



태그:#딴지일보, #벌금대납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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