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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결과정에 흠결은 있으나 미디어법이 통과된 이상 법안은 유효하다"는 해괴한 논리로 헌재 스스로 한국 법률시스템의 붕괴를 예고하자 이에 화답하듯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김상곤 경기교육감에게 납득이 가지 않는 "직무이행 명령"을 내렸다. 참 가관이다. 교과부가 논리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사안을 가지고 억지를 부려가며 소모적인 감정싸움에 좁은 속을 다 내보이고 만 것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법은 대체로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은 있지만 언제나 강자의 편이었고 그들의 지배구조를 공고히 해 주는 방패가 되기도 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이 맨 먼저 하는 일은 법의 이름으로 정적을 처단하는 것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헌재 놀이' 역시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고 나온 죽을 꾀가 아닌가 한다.

 

참여정부 시절 대담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거침없이 대들던 검사들과 조중동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라. 지금은 사법부·검찰·메이저 신문 모두 알아서 정권에 용비어천가를 지어 올린다. 역시 한국 사람들은 좋은 말로 해서는 안 듣는 모양이다. 무조건 세게 나가야 하는 모양이다.

 

지난 1일 김상곤 경기교육감은 특별 기자회견을 열고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을 징계하지 않기로 했다. 비정상과 불합리로 점철된 세상에서 아주 용기 있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 김 교육감은 담화문에서 "시국선언은 원칙적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로서 존중되어야 한다. 시국선언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교사들을 징계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사법부 최종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징계위에 회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필자가 전교조 소속이라고 오해할까 봐 교총 회원임을 참고삼아 밝힌다.

 

음주운전·성범죄보다 전교조의 시국선언이 더 무서운가?

 

김 교육감의 이런 소신 있는 기자회견이 미디어법과 관련한 헌재의 논리보다 훨씬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는가? 교과부 말대로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으니 징계해야 한다면, 그 봄에 그렇게 많았던 시국선언 교수들은 다 어찌하고 교사만 문제 삼는 것인가? 특히 국립대 교수들은 국가직 공무원 신분이므로 교과부는 이들에게도 같은 잣대를 적용했어야 한다. 

 

김 교육감의 선언은 징계를 거부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임기 끝까지 끌고 가겠다는 의미이며 여기에는 정치적 계산도 있어 보인다. 만일 대상 교사들이 징계를 받게 되었을 때 징계받은 교사들이 이에 불복해 항소·상고를 하게 되면 대법원 단계까지 사건이 이어질 것이고 그 사이 시간이 훌쩍 흘러 김 교육감은 임기를 마치게 된다. 만일 재임하게 된다면 그 때 가서 매듭을 지으면 될 일이다.

 

발단이 된 전교조의 시국선언은 어떤 내용이었는가? 시국선언에서 주장한 문제는 현 정권의 소통능력 부재에 대한 것이었다. 일방통행식 커뮤니케이션이 민의를 무시하여 발생하는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용산사태·쌍용차사태·미디어법·교육권의 과도한 시장경쟁원리 도입 등에 대한 우려 표명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 내용을 가지고 정치활동을 운운하는 것은 침소봉대하는 것이다.

 

교과부는 전교조의 행동이 교원노조법·공무원법이 금지하고 있는 공무원의 정치활동 금지·집단행동 금지 등에 위배된다고 했으나 가증스럽기 그지없는 판단이다. 과거 교총은 5차례의 시국선언을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징계가 내려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교총의 시국선언은 합법, 전교조의 시국선언은 불법, 교수의 시국선언은 합법인 것이다. 음주운전·성범죄보다 전교조의 시국선언이 더 무서운가?

 

김 교육감의 사실상 징계거부에 대해 교과부는 참으로 치졸하게도 직무이행 명령을 내렸다. 교육공무원 징계령 제6조는 "징계 사유를 통보받은 교육기관의 장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1개월 이내에 관할 징계위원회에 징계의결을 요구해야 한다"는 조문을 근거로 명령을 내리고 불응 시 교부금 축소 등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김상곤 교육감은 징계 사유가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징계의결을 요구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교과부의 몸부림이 정치행위에 더 가까워 보인다.

 

교과부에 바란다. 시국선언 교사들을 중징계하는 무리수를 두지 말고 경고 정도로 마무리 하는 아량을 베풀기를 바란다. 사회문제에 우려를 가지고 의사표시 한 것을 정치행위라고 주장하는 것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가 발전 지향적으로 건전하게 성장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보수단체나 진보단체나 다 똑같다고 본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결과라고 이해하고 극한 방법 선택을 자제해 주기 바란다.


태그:#김상곤, #시국선언,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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