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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을까. 무엇이 그를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했을까.

4일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72·현 성지건설 회장)이 서울 성복동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망 동기나 배경을 둘러싸고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재계 주변에선 박 전 회장이 자신의 가족 문제와 기업의 경영난 등에 따른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두산그룹 총수였던 그는 지난 2005년 이른바 두산 '형제의 난(亂)'으로 법원에서 최종 유죄판결을 받았고, 이후 박씨 형제 가족들로부터 제명을 당해 사실상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다. 게다가 자신의 아들까지 주가조작 혐의 등으로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하면서 심적으로 힘든 생활을 해왔다는 것이다.

작년엔 국내 중견 건설사인 '성지건설'을 인수해, 기업가로서 재기를 노렸다. 하지만, 이번엔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부동산시장 뿐 아니라 건설경기가 침체에 빠지면서 경영에 어려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삿돈 326억원 횡령과 수백억 원대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용성(가운데) 두산그룹 전 회장과 박용오(왼쪽), 박용만 총수일가가 지난 2005년 11월 3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출두하고 있는 모습.
 회삿돈 326억원 횡령과 수백억 원대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용성(가운데) 두산그룹 전 회장과 박용오(왼쪽), 박용만 총수일가가 지난 2005년 11월 3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출두하고 있는 모습.

'형제의 난(亂)'이 불러온 가족과 가문으로부터 '왕따' 그리고...

박용오 전 회장은 말그대로 전형적인 재벌의 로열 패밀리로 막힘없이 살아왔다.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둘째였던 박 전 회장은 경기고를 거쳐, 뉴욕대 등을 졸업했다. 이후 동양맥주를 비롯해 두산상사 등을 거치면서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쌓아왔고, 지난 96년 12월께 마침내 두산그룹 회장까지 올랐다.

이후 2004년까지 8년 8개월 동안 두산 회장을 지내다, 2005년에 그룹 명예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두산 회장에 오르기 직전에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 후, 2000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인수하면서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왔다. 이들 두 회사는 현재 두산그룹의 주력 계열사가 됐다.

2005년 7월께 자신의 큰 형이던 박용곤 명예회장이 오너 간 가족회의에서 동생인 박용성 회장(3남)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길 것을 요구하자, 크게 반발했다.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당시 그룹 부회장(5남)이 큰형인 박용곤 회장과 서로 짜고 자신을 그룹에서 밀어내려고 한다는 것.

박 전 회장은 이 과정에서 두산산업개발을 계열에서 분리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 당했다. 박용성 회장 등 오너일가들은 창업자가 남긴 두산그룹의 '공동소유와 공동경영'이라는 그룹 경영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를 들었다.

결국 박 전 회장은 두산 이사회가 열리기 전날인 그해 7월 22일 두산의 비자금 조성과 사용 내역 등이 담긴 '두산그룹의 경영상 편법활동'이라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내용은 박용성 회장 등이 1700억 원대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내용만으로 두산 재벌 오너 일가의 도덕성 뿐 아니라 기업 자체도 분식회계 등 치명타를 입었다. 이른바 '두산 형제의 난(亂)'이 시작된 것이다.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 과정에서 이들 박씨 일가는 수년동안 297억3000여만 원의 비자금과 29억 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이들 오너들은 이 돈을 가지고 생활비와 대출금 이자, 세금까지 대납 하는 등 개인용도로 사용했다. 회사 공금을 개인 쌈짓돈인 양 생각한 것이다. 또 이같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회사 장부에 2838억6000만 원의 분식회계를 지시했다.

박용오 전 회장과 박용성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 원을, 박용만 당시 부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 원을 법원으로부터 최종 선고받았다.

이후 박용곤 명예회장 등 두산 오너들은 형제 간에 분란을 일으킨 데 대해 박 전 회장을 가문에서 퇴출시켰다. 물론 박용성 회장도 책임을 지고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지난 2007년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후 다시 그룹 경영에 복귀했다.

결국 2005년 7월 그룹 비자금 폭로로 시작된 두산재벌의 형제의 난으로 박용오 전 회장은 그룹과 가문에서 동시에 퇴출당했다. 하지만 박용성 전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 등은 특별사면 후 그룹 경영복귀라는 엇갈린 운명으로 끝이 났다.

지난 2005년 당시 두산그룹 가계도
 지난 2005년 당시 두산그룹 가계도
ⓒ 오마이뉴스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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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로 재기 노리고 인수한 건설사도 금융위기에 발목잡혀

형제의 난으로 그룹 경영에서 물러난 박 전 회장은 작년에 사업을 재개한다. 이미 박용성 회장 등 자신의 동생들은 사면복권과 함께 그룹 경영에 복귀한 상태였다.

박 전 회장이 기업 경영에 복귀한 것은 작년 2월. 시공순위 50위권인 성지건설을 인수하면서부터다. 한동안 기업가로서 떨어져 있었던 그는 성지건설 회장 직함을 갖고 의욕적으로 사업을 펼쳤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극심한 경기침체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건설과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성지건설의 주택사업 등도 주춤했다.

'포린(For In)'이란 이름의 아파트 브랜드를 만들어, 주택시장에 진출하려 했지만, 아직 첫삽도 뜨지 못했다. 시공능력평가 순위도 지난 2007년 55위에서 작년엔 65위로 10단계나 하락했다. 기업 실적도 올 1분기 영업이익이 9억2000만 원, 2분기에는 18억5000만 원을 올린 수준에 그쳤다.

최근 일부 아파트를 중심으로 분양시장이 좋아지고 있긴 하지만, 성지건설엔 당장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작년에 함께 인수했던 서울 여의도의 파크센터 오피스텔은 분양이 제대로 되지않고, 미분양 물량이 쌓이자 결국 분양가를 40%씩이나 깎아야만 했다. 회사 자금 사정이 그만큼 좋지 못했던 것을 보여준 셈이 됐다.

이밖에 박 회장의 아들도 현재 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 역시 그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하는 이야기도 있다.

박 회장의 둘째아들인 박중원씨는 성지건설의 부사장을 맡고 있다가, 올해 초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박 부사장은 지난 7월 1심 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받고 현재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박씨는 1심 판결 이후 성지건설 부사장직에서 물러났다.

둘째인 박씨에게 남다른 애정을 가져왔던 박 회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구치소를 찾아 아들을 위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성지건설 '충격', 두산그룹 '당혹'속에 "정중하게 장례절차 밟을 것"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빌딩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빌딩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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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갑작스러운 타계로 회사 CEO를 잃어버린 성지건설은 이날 하루종일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회사 주가도 박 회장의 자살 소식이 알려진 후 폭락해, 한때 13% 이상 하락하기도 했다. 최종 주가는 전날 4780원보다 9% 떨어진 4350원에 마감했다.

성지건설 관계자는 "아침에 사장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믿기지 않았다"면서 "회사 실적도 1분기보다 2분기에 더 좋게 나오는 등 점차 나아지는 분위기였는데…"라며 안타까워 했다.

두산그룹은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과거 불미스러운 일로 그룹과의 관계가 끊어지긴 했지만, 현재의 두산그룹이 있기까지 박 전 회장의 공로도 컸기 때문이다.

그룹의 한 임원은 "현재 그룹의 주력 기업인 두산중공업과 인프라코어 등은 박 전 회장이 인수합병을 통해 만들어 놓은 회사들"이라며 "오너 일가 사이의 불미스러운 일이 겹치면서 그룹을 떠날 때도 내부에서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전에 박 전 회장의 타계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그룹 차원에서도 오전에 긴급비상회의를 열고, 장례절차를 논의하는 등 (그룹에서) 책임지고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두산재벌의 황태자로 기업 인수합병 등 공격 경영으로 재계를 놀라게 했던 박용오 전 회장. 하지만 재벌 오너 내부의 불투명한 의사 결정과 탈법적인 행동이 자신을 옭아맸고, 결국 그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비운의 삶을 마감했다.


태그:#두산, #박용오, #박용성, #비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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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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