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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에 붙은 의자를 깔고 앉아 고구마를 캐시는 할머니
▲ 고구마캐기 엉덩이에 붙은 의자를 깔고 앉아 고구마를 캐시는 할머니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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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갑자기 추워졌는데 집 옆 고구마 밭에 중장비가 들어왔다. 중장비라고 해야 흙을 갈아 뒤집는 장비다. 아침 일찍 몇 사람이 와서 고구마 밭에 씌웠던 비닐을 걷어낸다. 본격적인 고구마 수확을 하려나 보다. 버스가 한 대 들어오더니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차에서 내리신다. 바람이 찬데 하필 오늘 같은 날 고구마를 캐나. 날이 추워져서 신종플루가 더 기세를 떨친다는데, 속으로 은근히 걱정이 된다.

하루 종일 작업을 하시다가 보면 힘도 드실 텐데. 찬 밭고랑에 털썩 주저앉아 고구마를 캐신다. 그런데 작업을 하시는 할머니들 엉덩이에 무엇인가 혹이 하나씩 달려있다. 한편에서 고구마 캐시는 것을 보는 분에게 물어보았다.

할머니 엉덩이엔 연륜이라는 혹이 달려

엉덩이에 붙들어맨 간이 의자. 불편해보이지만 몸이라도 된듯 하다.
▲ 엉덩이에 붙은 의자 엉덩이에 붙들어맨 간이 의자. 불편해보이지만 몸이라도 된듯 하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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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저 엉덩이에 달린 게 무엇인가요?"
"그거 의자지."
"무슨 의자를 달고 다니신데요. 떨어지지는 않나요?" 
"그거 허리에 매달아서 안 떨어져. 그게 다 세월이 가면 저절로 달라붙게 되어 있어"

가만히 보니 앉았다가 일어나시는 분들마다 다 하나씩 엉덩이에 달려 있다. 걸을 때마다 덜렁거리는 것이 불편도 하시련만 그냥 작업에만 몰두하신다. 세월이 저런 것을 만들었는지, 이젠 몸의 일부쯤으로 생각을 하시는 것 같다.

"저렇게 하루 종일 달고 다니시면 불편하실 텐데요"
"그런 것 모르지. 불편해도 할 수 없어. 그냥 땅바닥에 앉으면 병나고, 그렇다고 쭈그리고 앉아서는 종일 일을 할 수가 없으니까"

딴은 그렇다. 결국 세월이라는 놈이 할머니들 엉덩이에 혹을 하나씩 만들어 드렸다. 그것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것도 귀찮으신가 보다. 심지어는 점심을 드시면서도 그 혹을 떼어놓지를 않는 것을 보면.

우리는 하나도 달라질 것이 없어. 다 저희들끼리 난리지

일당을 받고 하신다고는 하지만, 바람이 불고 날이 차서 걱정이다. 신종플루까지 기승을 부린다는데
▲ 고구마를 캐시는 분들 일당을 받고 하신다고는 하지만, 바람이 불고 날이 차서 걱정이다. 신종플루까지 기승을 부린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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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하루 종일 일하시면 얼마나 버세요. 힘이 많이 드실텐데"
"궁금하면 하루 종일 한번 해봐. 뼈 속이 다 쑤시지. 그래도 어쩌겠어. 살려면 무슨 일이라도 해야지. 하루에 5만 원 벌어."

적은 돈은 아니라고 하신다. 하지만 하루 종일 연세가 드신 분이 쪼그리고 앉아 땅을 파내는 대가치고는 많은 것은 아니란 생각이다. 하기야 그것도 없어서 못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하시니, 힘이 들어도 하실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할머니는 오래 쉬면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일을 하시겠단다. 요즈음에는 세상이 하도 시끄러워서 텔레비전도 안 보신단다.

"그런 것 봐도 우리 같은 늙은이야 모르지만 세상이 정말 어수선해. 그 감기인가 뭔가로 사람들이 날마다 죽는다는데, 어째 그거 하나 간수를 못해."
"우리야 마 언제 달라지는게 있었나. 맨날 저희들끼리 난리를 치는 것이지. 우리야 그저 올 겨울이나 따듯하게 병 걸리지 말고 나면 다행이지."

혀를 차시면서 고구마 밭으로 향하시는 할머니. 올해 연세가 70을 훌쩍 넘기셨단다. 그래도 여기서는 젊은이라고 웃으시는 할머니의 웃음소리에는 힘이 없다. 그 연세에 세상을 재미있게 살아야 할 텐데. 이 추운날 고구마를 캐신다고 밖으로 잔뜩 싸매고 나오신 할머니 모습에 코끝이 찡해진다. 도대체 이 정부는 무엇을 위한 정부인지,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복지후생비를 깎아 4대강 개발에 쳐바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보면 더 많아진 현수막들이 눈에 보인다. 한 마디로 국민을 위한 일을 하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할머니 엉덩이에 달린 혹이 가실 날이 언제인지. 연륜의 혹이 버거워 보인다.

날이 갑자기 추워지는 바람에 고구마캐기가 한창이다. 얼기 전에 캐야하기 때문에 추워진 날에도 작업을 한다.
▲ 고구마캐기가 한창이다 날이 갑자기 추워지는 바람에 고구마캐기가 한창이다. 얼기 전에 캐야하기 때문에 추워진 날에도 작업을 한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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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고구마캐기, #할머니, #연륜, #의자, #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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