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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1975년 <동아일보> 사원 113명이 길거리로 내몰렸던 이른바 '동아사태'는 '정권 차원의 언론 탄압'이었다고 발표한 가운데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열린 '국가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 기자회견에서 정동익 위원장을 비롯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회원들이 정부와 동아일보의 사과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화해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1975년 <동아일보> 사원 113명이 길거리로 내몰렸던 이른바 '동아사태'는 '정권 차원의 언론 탄압'이었다고 발표한 지난 3월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열린 '국가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 기자회견에서 정동익 위원장을 비롯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회원들이 정부와 동아일보의 사과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화해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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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0월 24일.

그때 제 나이 스물아홉. 희망보다는 절망을 더 많이 배웠던 때, 아니 그냥 삶이 절망과 좌절이었던 때였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을 선포한 지 2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노동 현장에서, 교회에서, 지식인 사회에서 유신에 대한 저항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언론은 이런 사건들을 일절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나는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였습니다. 어느 날 내 모교에서 시위가 있어, '취재'하러 갔습니다. 학생들은 도서관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농성 중이었습니다. '취재'하러 갔으니, 성명서도 얻고, 시위 규모 등도 알아보러 농성장에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입구에 이런 팻말이 있었습니다.

개와 기자는 출입 금지

부끄러웠습니다.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내가 혹시 기자란 걸 누가 알까봐 얼른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리고는 치밀어 오는 분노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부끄러움과 분노로 온 몸 떨었던 나의 20대 기자시절

어디 그 날 뿐이었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부끄러움과 분노로 온 몸을 떨었던 게 어디 저 뿐이었겠습니까.

대학생들이, 일반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사옥 앞으로 모여 구호를 외치며 언론의 각성을 촉구한 것도 그 즈음이었습니다. 그들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당시 한국 언론은 언론의 가장 1차적인 기능, 일어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그 기본적인 기능조차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암흑 속에서 우리는 절망과 좌절, 분노의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횃불을 들고 일어났습니다. 지금부터 꼭 35년 전인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한 것이었습니다. 동아일보사 3층에 있는 편집국에서 기자들이 모여 선언문을 낭독하고 3가지 결의를 했습니다.

 지난 1974년 10월 24일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대회를 여는 모습
 지난 1974년 10월 24일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대회를 여는 모습
ⓒ 동아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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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언론실천선언


우리는 오늘날 우리사회가 처한 미증유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에 있음을 선언한다.


민주사회를 유지하고 자유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사회기능인 자유언론은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교회와 대학 등 언론계 밖에서 언론의 자유 회복이 주장되고 언론인의 각성이 촉구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뼈아픈 부끄러움을 느낀다.

본질적으로 자유언론은 바로 우리 언론 종사자들 자신의 실천과제일 뿐 당국에서 허용하거나 국민대중이 찾아다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유언론에 역행하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 민주 사회 존립의 기본요건인 자유언론 실천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선언하며 우리의 뜨거운 심장을 모아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 신문, 방송, 잡지에 대한 어떠한 외부간섭도 우리의 일치된 단결로 강력히 배제한다.

1. 기관원의 출입을 엄격히 거부한다.

1. 언론인의 불법연행을 일절 거부한다. 만약 어떠한 명목으로라도 불법 연행이 자행되는 경우 그가 귀사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기로 한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사 기자 일동

찬란했던 자유언론의 횃불

나는 자유언론의 그 찬연한 횃불을 들어 올렸던 그 날의 뜨거웠던 환희와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기자'가 되기 위해, 그래서 조금은 떳떳해진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들의 뜨거운 심장'을 모아 행동에 나선 것이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 실천선언이 촉발제가 되어 전 언론계로 들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그만큼 모두가 처절한 좌절 속에 있었던 것이었지요.

이보다 4년쯤 앞선 1970년 12월, 나는 동아일보사 출판국 기자로 입사했습니다. 올챙이 기자가 된 것이지요. 구약 성서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 나오는 한 마리 작은 비둘기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기자가 되었습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 잘 아시지요? 40일 밤낮으로 비가 내리고, 온 세상은 짙은 암흑에 묻혀버렸습니다. 비가 그치자, 노아는 그 암흑의 세상이 끝났는지, 가까운 곳에 희망의 땅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비둘기 한 마리를 방주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바깥세상 취재하여, 돌아와서 보도하라는 것이었지요. 얼마 뒤 비둘기는 나뭇가지 하나를 물고 방주로 돌아왔습니다. 노아는 그 나뭇가지를 보고, 육지가 멀지 않음을, 새로운 희망을 가꿀 수 있는 새 땅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노아에게 나뭇가지를 물어다준 한 마리 비둘기는 언론이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암흑의 세상이 끝나고 나면, 그 다음 희망의 땅이 보인다는 것을 전하는 언론이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박정희 군사독재의 암흑시대, 그 암흑을 전하고, 그 암흑 너머에 있을 희망을 전하는 한 마리 작은 비둘기가 되자며 기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입사하고 나니, 선배들은 처음부터 절망과 좌절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무것도 전할 수 없는 이 암흑시대, 뭣 하러 기자가 되려고 들어왔느냐고, 이제 막 사회에 나와서 희망의 날갯짓을 하려 하는 햇병아리들에게 선배들은 잔인하게도 절망과 좌절, 체념, 그런 것부터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그게 참담하지만, 현실이었으니까요.

70년대의 처참한 모습

유신을 전후한 70년대가 어떤 시대였습니까. '개헌' 소리만 끄집어내도 감옥에 집어 넣었지요. 머리가 귀밑으로만 내려오면 장발 단속에 걸렸고, 미니스커트도 무릎 위 몇 센티 넘어서면 치도곤 당했습니다. 양희은의 '아침이슬', 송창식의 '고래 사냥',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등 지금은 고전이 된 노래들이 당시에는 금지곡이었습니다.

조승우, 신민아가 주연한 <고고 70> 보셨습니까. 한국 록큰롤의 1세대인 '데블스'의 이야기였습니다. 젊은 그대들은 그 영화를 보면서 어쩌면 그 시대의 절박함이 실감나지 않아 그냥 웃으며 보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불과 30여 년 전 우리의 역사라고 여기기에는 너무나 가당찮은, 허무개그 같은 것이었기에… 그러나 나는 그 영화 보면서 목이 메어왔습니다. 우리의 가슴을 터지게 한 역사인데, 그런 역사가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여겼는데….

1974년 10월 24일, 우리들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면서 세 가지 결의를 했습니다. ①어떠한 외부 압력도 배제한다 ②기관원의 출입을 거부한다 ③동료가 연행되면 그가 돌아올 때까지 귀가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 결의는 당시의 시대 상황, 언론 상황을 너무나 처절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전신) 등 정보기관 요원들이 언론사에 출입하거나 상주하다시피 했고, 그들은 기사 제목에서 내용까지 일일이 간섭했습니다. 그리고 걸핏하면 기자들을 잡아서 혼을 냈습니다.

그날 우리들은 이 세 가지 결의사항을 포함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한 '사건'을 동아일보 지면에 반영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저항수단인 제작 거부에 들어갔습니다. 마침내 그 날 밤 늦게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첫 승리였습니다.

그렇게 싸우기 시작하여, 그때까지 보도되지 않았던 시국관련 사건들이 1단씩이나마 동아일보 지면에 보도되기 시작했고, 그 다음 '자유언론'의 영역을 한 뼘, 한 뼘, 넓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매일 싸워야 했습니다. 그렇게 동아일보 지면이 달라지면서 유신정권은 정권적 위협을 느꼈으며, 74년 연말, 어느 날 갑자기 지면에서 광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광고탄압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지면에 국민들의 격려와 성금이 해일처럼 밀려들었습니다. 신문 내용보다 격려광고 읽는 재미로 동아일보를 본다는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민주주의의 거대한 축제장이 되었습니다. "동아야, 너마저 배신하면, 나 이민 갈꺼야"라는 그 유명한 격려광고도 당시에 나온 것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듬해 3월 17일, 결국 유신 정권과 결탁한 동아일보 사주는 자유언론 투쟁에 앞장선 동아일보 기자, 동아방송 피디, 아나운서 등 130여 명을 추방했습니다. 우리들은 '동아자유언론투쟁위원회'(동아투위.www.donga1024.or.kr)를 결성하여 광야에서 외치는 길거리 언론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이도 잡혀가고, 구속되고, 수배자가 되고 하는 험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 세월을 거치면서, 그 혹독한 세월에 견디지 못하고 먼저 떠난 동지들이 벌써 14명에 이릅니다.

안종필, 강정문, 김덕렴, 김성균, 김인한, 김진홍, 배동순, 심재택, 안병섭, 우승룡, 이의직, 조민기, 홍선주, 홍종민.

나는 이들의 이름만 보아도 가슴이 저미어 옵니다. 이들의 이름은 내 가슴에 늘 비수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들이 다 못한 일, 남아 있는 동지들이 대신 좀 해달라는 그들의 당부가 늘 귓전을 때립니다. 14명의 이름 중 강정문이 있습니다. 그는 나와 입사동기였으며, 각별하게 친했습니다. 그도 저 세상으로 가버렸습니다. 꿈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모진 세월이었습니다.

한국 현대언론사의 산증인,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가 17일로 결성 30주년을 맞았다. 한국 현대언론사의 산증인,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가 17일로 결성 30주년을 맞았다.
 지난 2005년 3월 17일 결성 30주년을 맞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 오마이뉴스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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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함 느껴진 올 10.24 행사

해마다 우리는 10월 24일에 다시 모여, 함께 쳐들었던 그 눈부신 자유언론의 횃불을 되새깁니다. 요즘은 외롭지도 않습니다. 언론노조, 피디 연합회, 기자협회의 후배들이 함께 해줍니다.

지난 주 금요일, 다시 모였습니다. 어느덧 서른다섯 해가 지났습니다. 그때 스무 아홉 살, 풋풋한 젊은이였던 나는 예순 넷의 중늙은이가 되었고, 동료 선배들 머리에는 눈처럼 하얀 세월이 얹혀 있습니다. 그러나 서른다섯 해 전의 그 뜨거웠던 가슴과 열정은 아직 식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정동익 동아투위 위원장은 후배들에게 그렇게 간곡한 마음으로 이야기했지요.

지금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기도를 분쇄하지 못하면 우리나라 언론은 회복 불가능한 암흑시대로 들어설지 모릅니다. 이제 우리 언론인들이 모두 함께 나서야 할 때입니다. 특히 가두 투쟁 못지 않게 신문과 방송이 제대로 보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보도투쟁이야말로 언론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입니다.

올 10.24 행사 때는 근년에 볼 수 없었던 비장함이 느껴졌습니다. 이명박 정권 이후 1년 8개월 사이 참으로 많은 반민주적 작태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와 관련하여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습니까. 이런 현상은 국제적으로 공인이 되어버렸지요. '국경 없는 기자회'가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 지수'에서 한국이 올해 175개국 가운데 69위를 했고, 지난해 비해 22단계나 곤두박질을 쳤다는 것이지요. 이러고도 '나라의 품격' 이야기하는 걸 보면 참 뻔뻔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 이슬' 등이 금지되던 시절 이야기가 까마득한 옛 이야기, 그냥 개콘 꺼리나 될 것 같았던 허망한 옛 이야기가, 세상이 다시 뒤집혀, 윤도현, 김제동이 잘려 나가고, 김구라 등 그들 입맛에 맞지 않는 출연진, 사회자를 쫓아내라는 '마녀사냥'이 기승을 부리는 모양으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마녀사냥'이 어디 거기 뿐입니까. 임기가 법으로 정해져 있는 공영방송 사장을 쫓아내기 위해 온갖 권력을 동원하여 별의 별 혐의를 다 뒤집어 씌워 해임한 것을 비롯하여, 생각이 다르다고 미운 털 박힌 사람들 일터에서 쫓아내고, 강의 빼앗고, 시민사회 활동의 돈줄 끊어버리고… 그런 '마녀사냥'들이 이제 일상사처럼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YTN에서는 기자들을 쫓아내고, KBS에서는 지방으로 유배시키고, 겁박을 하고...

미운 진보매체에도 온갖 교묘한 압박이 가해지고 있지요. 공기업 광고가 수구 기득권 매체에는 거의 곱배기로 늘어나는데, 진보매체에는 오히려 줄어들었지요. 대기업 광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녀사냥'의 극한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아니었던가요. 세상에 어찌 그렇게도 혹독한 수사가 있을 수 있는지… 검찰은 혐의 내용을 거의 매일 언론에다 브리핑을 했고, 언론은 중계방송을 했지요. 얼마나 심했으며 당시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까지 이러면 안 된다고 비판을 했겠습니까. 그 혹독했던 검찰이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에게는 어찌 그리 온순한지… 만약 효성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돈이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젊은 벗들.

세상이 이렇게 뒤집혀버려, 워낙 황당무계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 행여 당신들이 절망과 체념부터 배운 나의 20대처럼 되지 않을까 적이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이야기를 길게 해준 이유를 대략은 짐작하셨겠지요.

서른다섯 해 전, 자유언론의 횃불을 들면서 젊은 기자들이 조금은 부끄럽지 않은 기자, 조금은 떳떳한 사람이 될 수 있었듯이, 당신들도 이제 생활의 곳곳에서 횃불을 들면 되는 겁니다. 당신들의 시간, 재능, 물질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의 횃불을 드십시오. 당신들이 당신들의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날은 반드시 다시 옵니다.

그날이 오면/ 심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이녕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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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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