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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비를 줄이고자 하는 정두언 의원의 진정성은 믿는다. 하지만 그의 뜻대로 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아주 천천히, 이 논란을 최소한 내년 지방선거까지는 끌고 갈 것이다."

 

외국어고등학교 폐지 카드를 꺼낸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의 진정성을 믿는단다. 같은 집권 여당 쪽에서 흘러나온 말이 아니다. 그동안 상극이나 다름없었던 전교조의 엄민용 대변인의 말이다.

 

모양새가 흥미롭다. '외고 폐지'라는 목적만 놓고 본다면, 정두언-전교조-야당은 같은 편이다. 하지만 정두언 의원과 정부 측 교육과학기술부의 생각은 다르다. 한나라당 내에도 이견이 있다. 

 

정권 실세로 통하는 정두언 의원의 주장이라면, 정부·여당의 견해로 봐도 무관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이 말은 통하지 않는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3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의 국정감사만 봐도 복잡한 흐름을 알 수 있다.

 

정두언 의원은 "외고는 유치원부터 사교육을 해야 갈 수 있는 곳으로 공정성을 크게 잃었고, 입시전문고가 돼버린 사교육의 주범"이라며 "정부 대책이 사교육에 영향을 못 주면 교육부 장관은 그만둬야 한다"고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다그쳤다.

 

하지만 안 장관은 꿈쩍하지 않았다. 안 장관은 "학교 교육이라는 것은 공교육 자체를 살림으로써 사교육을 줄이는 것이 정당한 방법"이라며 "외고 문제도, 사교육 문제도 중요하지만 외고 자체가 갖는 좋은 특성도 있다"고 반박했다. 외고 폐지 반대를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다.

 

정두언 외고 폐지안은 '변신' 중...교과부는 반대, 한나라당은 이견

 

또 이철우 한나라당 의원은 "외고는 전입금도 안 내는데 선발권까지 주는 것은 특혜"라며 정 의원 편을 들었다. 하지만 교총 출신인 이군현 한나라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철학은 자율과 다양성, 경쟁인데 외고를 획일적으로 전환,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지방교육자치 정신도 훼손하는 것"이라며 안 장관을 옹호했다.

 

상황이 이 정도면, '외고 폐지'가 당장 한나라당 당론이 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정두언 의원은 실세답게 외고 폐지 문제에 강한 추진력을 보여주고 있기는 한 걸까? 이것도 확실하지 않다.

 

정 의원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초안을 22일 발표했다. 하지만 22일 당일에만 한 차례 수정안을 내는 미흡함을 보이더니, 23일 다시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정 의원의 개정안은 ▲외고를 특성화 학교로 전환하고 ▲학생 모집 단위를 전국으로 확대하며 ▲학생의 지원을 받아 추첨으로 선발한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런 초안이 다시 어떤 내용으로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교육계의 많은 인사들은 "도대체 외고를 폐지한다는 것인지, 학생 선발을 어떻게 바꾼다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도 없고, 실체도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23일 국감에서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잘 정리했다.

 

"우리가 외고폐지를 주장했을 때는 수월성 교육을 위해 존속시켜야 한다더니, 쟁점이 많아 상정되지도 못할 법안을 갖고 이 혼란을 일으키는 의도가 무엇이냐. 특히 정부 여당이 정리된 입장 없이 중구난방으로 얘기하면서 학생과 학부모가 피해를 보고 있다."

 

말 그대로 어리둥절한 사람이 많다.

 

사교육 업계에서도 "학교 자율과 수월성 교육, 그리고 특목고 확대를 주장하며 집권한 사람들이 갑자기 외고 폐지를 주장하니, 그 진심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고개를 흔들고 있다.

 

사실, 진짜 외고를 폐지하려고 하면 절차적으로 쉬운 방법이 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중 특목고를 규정하고 있는 90조 내용을 삭제하거나 바꾸면 된다.

 

이는 행정부인 교과부 소관의 일이다. 즉 교과부가 나서면 정치권에서 굳이 힘들게 법을 바꾸지 않아도 외고 폐지든 전환이든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교조와 야당은 "정권 차원에서 진정으로 사교육을 잡고 싶으면 교과부가 움직이면 될 일인데, 왜 엇박자를 일으키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상정 못할 법안으로 혼란 일으키는 의도가 무엇이냐"

 

정두언 의원실도 이걸 부정하지 않는다.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교과부만 움직여 주면 우리가 이런 '생고생'을 안 해도 되다"며 "교과부는 계속 '두고 보자', '용역을 주고 그 결과를 연말에 보자'는 말만 하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물론 외고를 폐지하거나 다른 학교로 전환하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여러 이해 집단을 비롯해 국민 여론을 청취해야 한다. 교과부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럼 여기서 다시 정리를 해보자.

 

'실세' 정두언 의원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지금도 '변신' 중이다. 한나라당 내에 이견이 많으며, 무엇보다 교과부는 공공연하게 외고 폐지에 반대한다는 방침을 내비치고 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단일안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폐지든 전환이든 외고 문제가 쉽게 결론 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게다가 교원단체총연합회와 조중동이 외고 폐지에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특히 <조선>의 반발이 거세다. 학교 자율성과 특목고 확대를 주장했던 이명박 정부가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외고 폐지를 밀어붙이는 건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문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외고 폐지 논란 속에서 여당과 정부는 이득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어쨌든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모양새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에 득이면 득이지 절대 손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무엇보다 야당 이슈를 여당의 실세 의원이 선점했다.

 

"어쟀든 정부와 여당은 이득... 내년 지방선거까지 논란 이어질 것"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외고 문제는 교육 문제를 넘어서 정치와 이념문제가 됐고, 쉽게 결정 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며 "결국 이번 사안은 한나라당이 최소한 내년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며 모든 재미를 끝까지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경원 진보신당 교육정책 위원도 "사교육비 경감 문제를 정권 실세 3인방인 정두언 의원(정치권), 이주호 교과부 차관(행정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청와대)이 이끌고 있는데도 외고 문제가 쉽게 결론 안 나는 걸 보면 '쇼'로 그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의 한 관계자 역시 "정 의원이 초중등교육법을 손대는 건 결국 교육체계 자체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이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며 "그럼에도 이렇게 판을 크게 흔드는 걸 보면 전형적인 '포퓰리즘'적인 움직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어쨌든 외고 폐지 논란은 시간이 갈수록 명확해지는 게 아니라,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교육 관계자들조차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토로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만 피해 본다"는 주장은 괜한 말이 아니다.


태그:#외고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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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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