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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국 문자의 창제를 기념하고 그 영광을 축하하기 위한 한글날이다.

이 주제가 나올 때마다, 특히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과 얘기하더라도, 많은 한국인들이 한글을 아주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한글날에 맞춰 신문과 온라인 뉴스에는 한글의 배우기 쉬움과 다른 장점들을 칭찬하는 기사들이 올라왔다. 한 외국인 교수의 한글에 대한 평가에 주목한 어떤 기사에서는 제목을 거창하게 달아놓았다.

"세계 최고의 문자, 한글"

한글뿐 아니라 여러가지 서양 언어에 쓰이는 영어 알파벳, 기본적인 간지(일본어의 한자 표기)를 포함한 일본어도 배워 사용해 본 경험자로서, 이에 대한 내 사견을 적어봐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이 글은 한글에 대한 학술 논문이 아니라 배우는 학생의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시해두고자 한다. 그러므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시면 좋겠다.

장황한 머릿말은 그만 두고, 요는 이것이다 : 한글은 정말 우월한 문자인가?

그것보다 우선 어떤 점에서 우월하다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 먼저 아닐까? 읽고 쓰기를 배우는 것이 쉬워서? 배우고 나면 읽고 쓰는 것이 더 빨리 돼서? 아니면 독자들의 눈에 잘 띈다든지 아주 작은 크기로 글을 써도 읽기가 쉽다든지?

이 글에서는 (한국인들이 한글의 장점에 대해 얘기할 때 생각할 언어인) 알파벳과 일본어, 중국어 세 개의 주요 언어를 기준으로 한글과 비교하여 표기법의 배우고 쓰기 용이함에 중점을 맞추고자 한다.

제일 아는 것이 없는 것부터 시작해서 익숙한 문자 쪽으로 얘기를 진행해 보겠다.

경기 시작!- 한글의 빅매치
 경기 시작!- 한글의 빅매치
ⓒ 마티아스 슈페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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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전] 한글 대 중국 문자

한자의 엄청나게 많은 글자수에 비교하면 한글이 배우기 훨씬 쉬운 것은 자명하다. 한자에는 약자가 있지만, 그래도 먼저 일단의 기호를 외우지 않는 이상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그리고 한자 체계에서는 단어를 읽을 때 5성조 중 어떤 것을 써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제대로 읽으려 할 때 필요한 정보를 단어 내에 충분히 담고 있지 않다. 또한 신조 단어나 외래 단어의 표기(인터넷 세대의 수많은 용어들 같이)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러나 한자는 상형 문자이기 때문에, 많은 원어민들은 글자를 보면 보통 단어의 뜻이 추상적으로 생긴 표음 문자보다 훨씬 뚜렷해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현재 득점은 한글  1 - 0  다른 문자들.

[2회전] 한글 대 일본어 체계

여기 "일본어 체계"라는 성가신 표현을 쓴 이유는 일본 문자엔 각각의 용도가 다른 3가지의 표기 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 문제가 이것인데, 이 때문에 읽기와 쓰기를 배우는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에서 쓰는 한자가 좀 더 복잡하게 생긴 '개정 전 한자'고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서 '독음'이 아주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그럼 한글과 비교해서 일본어는 쉬울까? 히라가나와 카타카나는 한글보다 배우기 어렵지 않으며 나도 하루인지 이틀만에 기초를 다 배웠던 게 생각난다. 둘 다 비교적 글자수가 적고, 규칙이 간단하며, 단어를 말하기도 쉽고 쓰여진 대로만 읽으면 된다. 여기서 1점! 두 개의 작은 감점이 있었지만, 위에 간지를 표기하면 난이도에서는 한글보다 쉬워진다.

그러나 여기에서 유의할 점은 일본어 쓰기가 복잡한 것은 어휘 자체 때문이라는 것이다. 같은 소리가 나면서 여러가지 뜻을 지닌 단어들이 많고, 간지는 이를 확실히 구분시켜 주기 위해 쓰인다. 모든 단어를 히라가나로 표기한다면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이것은 표기 체계의 약점이라기보다는 일본 어휘의 문제라고 봐야 하겠다.

그래서 또, 내 판정은 한글 2 - 0  다른 문자들

[3회전] 한글 대 알파벳

다음은 알파벳, 정확히 말하자면 라틴이나 로마 알파벳이 되겠다. 당연히 내가 제일 먼저 배운 표기 체계다.

알파벳과 한글은 그 성질에 비슷한 점과 차이점이 다수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둘 다 표음 문자로 단어는 몇 가지 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한글은 글자마다 끊어 읽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각각의 소리만 어떻게 나는지 알면 어떤 뜻인지 몰라도 단어를 읽을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두 가지 언어의 역사에는 차이가 있다. 라틴 알파벳은 기원전 700년 이래로 2500년을 넘도록 진화하여 유럽 국가에서 아메리카 대륙, 아시아 일부(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와 아프리카에 이르도록 많은 언어의 음성을 표기하는 체계가 되기에 이르렀다. 여러가지 소리에 편하도록, 때로는 글자와 첨가되기도 하고 표준 발음이 바뀌기도 했다.

그러나 한글은 비교적 현대적인 시스템으로, 한국말을 모든 이들이 배우기 쉽게 표기하자는 명확한 목표로 15세기 중순에 창제되었다. 말하자면 한자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과학 사업이었던 것이다. (대중에게도 읽고 쓰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자 세종대왕이 이끌었던 이 숭고한 작업에 보너스 포인트 부가)

그래서 한글의 기본을 배우는 것은 정말로 수월하다. 내가 16살인가 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처음 한국어를 어떻게 배웠는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기숙사의 한국 친구들이 가져온 한글 책과 잡지들과, 수업할 때 노트 구석에 메모해둔 작은 글자들이 너무 멋있게 보여 한글에 푹 빠졌다. 그래서 당연히 한글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에게 글자와 단어들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친구가 제일 처음 써 준 단어는 이것이었다.

'마티아스'

너무 멋지게 보여 흥분해서는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친구가 말하길, 이거 네 이름이야. 그 순간 나는 넘어가 버렸다. 내 이름이 그렇게 멋지게 보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가 종이 쪽지에 그려준 자음과 모음이 쓰인 작은 표를 놓고는 공부를 했고(한국어 공부를 위한 책은 찾을 수가 없었다) 2, 3일만에 모두 외웠다. 그 땐 한국어 단어라곤 대여섯 개밖에 몰랐기 때문에 영어 단어, 프랑스어 단어, 독일어 단어, 그냥 닥치는 대로 한글로 적어나갔다. 아주 재밌었다. 비밀 언어가 생긴 기분이랄까?

약간 얘기가 벗어났지만 이제 하던 얘기로 돌아가보자.

한글과 알파벳 모두 글자 수가 적기 때문에 둘 다 단기간에 외울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은 어떤 표기 체계가 낫느냐기보다는, 한국어와 영어 중 어떤 언어가 더 배우기 쉽느냐에 대한 비교가 되겠다. 영어는 철자 표기가 모호하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라틴 알파벳을 대변할 최적의 언어는 아닐 것이다(미국 학교에서 철자 교육을 중요시하며 철자 말하기 대회까지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어 원어민이 아닌 사람으로서 여러가지 한국 단어의 철자를 대기 역시 생각보다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예를 한 번 들어보자.

밥을 많이 먹었어요.

이 말은 이렇게 들린다 : 바블 마니 머거써요. (사실 배운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에겐 바블 마니 머거서요라고 들린다. ^^;;)

글자와 구조를 외우고 나면, 단어의 뜻을 알지 못해도 읽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발음이 어려운 이유는 글자보다는 언어 자체에 있다. 예를 들어, 독일어는 보통 "쓴 대로 읽는다"는 느낌이 강한 반면, 영어에는 "dough 대 tough" 등 당황할 만한 단어들이 많다.

마지막으로 한글의 약점이라고 느껴진 세 가지 사항을 예를 들어 말해보려 한다.

- 몇 가지 소리를 구별해서 표기할 수 없다.
예: year 와 ear

- 장모음의 문제.
예를 들어, 모든 영어 선생님들이 사랑하는, sheet 대 shit. 흥미롭게도 한글엔 장모음을 표기하기 위한 점이 있었지만 현재는 쓰이지 않는다. 참고로 히라가나/카타카나에서 장모음은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 자음으로 끝나는 단어는 불확실하다.
예를 들면, 또 영어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 English(y)

당연히 이 단어들 모두 한국 학생들이 제대로 발음하거나 들었을 때 구별해내기 어려운 것들이다. 쓰는 방법을 어떻게 배웠느냐에 따라 우리 뇌에서는 소리를 받아들일 때 일종의 네트워크나 패턴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한글, 다른 표기법보다 배우기 쉬워

알파벳도 물론 몇몇 한국 단어를 쓰려고 하면 그 한계가 보인다(아직도 Ssang Yong이라고 영어로 쓴 걸 보면 움찔하게 된다. 입력한 사람이 오타낸 것처럼 보여서).

그래서 이번 라운드는 동점으로 양쪽에 한 포인트씩을 주겠다. 그래서 결과는 '한글 3 - 1 다른 문자들'

이만큼 했으면 한글이 우수한 표기법이라는 건 증명이 된 것 같다! 아니면? 혹은 몇 가지 다른 표기법보다 배우기 쉽다는 말일 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배우는 이에는 라틴 알파벳이나, 비교 대상에서는 빠진 그리스어, 혹은 키릴 문자 등에 비해 크게 쉬운 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 문자들은 모두 일주일 내에 외울 수 있을 만큼 글자수가 적고, 그 다음부터는 음성의 표기에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더 쉬워질 수도,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한 과감한 제안 하나. 한글 단어들을 이제부터는 라틴 알파벳으로 표기한다고 생각해보자. 물론 일본인들이 입력할 때 알파벳을 쓰는 것처럼 이것도 가능한 일이긴 하다(로만지라고 하여 日本 혹은 にほん으로 쓰지 않고 nihon이라 쓰는 것). 그러면 정말 배우기가 더 어려워질까? 혹은 쉬워질까, 적어도 그렇게 배우고 자라는 한국인 세대에게는 비슷할 수도? 김치는 Gimchi로, 많이는 manhi라고 하면 되고 쌍용은…쌍용은…아, 그만 두자!

한국말엔 한글이 제일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마티아스 슈페히트 기자는 독일에서 태어나 10여 년 전 첫 방한한 후 거의 매년 한국에 오다가 2006년 서울로 이주했다. 독일 유러피안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영학 학위를 2008년엔 연세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그 후 서울에서 '스텔렌스 인터내셔널(www.stelence.co.kr)'을 설립하여 유럽 라이프스타일 제품 등을 수입판매 중이다. 최근 한국에서의 경험을 쓰기 시작한 개인 블로그는 http://underneaththewater.tistory.com/이다.



태그:#한글날, #한글, #한국어, #일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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