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가기록원 관계자들이 지난 2008년 7월 13일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에 들어서고 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들이 지난 2008년 7월 13일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에 들어서고 있다.
ⓒ 노무현 공식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전·현직 대통령 사이에서 벌어진 '대통령 기록물 유출 의혹' 사건과 관련, 법제처의 법령해석심의 결과 애초에 '합법'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법제처가 이춘석(전북 익산갑) 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법령해석심의위'(위원장 윤장근 법제처 차장) 회의록에 따르면, 1차 회의 당시 다수의 심의위원들이 "사본제작도 열람에 포함된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e지원 시스템 복제를 통해 대통령 기록물을 봉하마을로 가져간 것은 합법적 행위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법제처는 2차 회의에서 '관행'에 따라 심의위원들을 전원 교체한 뒤, 1차 회의 결과와 전혀 다르게 "사본제작은 열람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결론내렸다. 이에 따라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법제처는 국가기록원의 요청에 따라 '전직 대통령의 열람 편의 제공방법에 전직 대통령 사저에 온라인 열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포함되는지 여부'를 심의했다.  

심의위원 8명 중 5명 "사본제작도 열람"... 국가기록원도 '합법' 의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8년 7월 지난 13일 봉하마을 사저를 방문한 국가기록원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8년 7월 지난 13일 봉하마을 사저를 방문한 국가기록원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 노무현 공식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오마이뉴스>가 이춘석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 제28차 회의록에 따르면, 참석한 심의위원 8명 중 5명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시행령에 규정된 열람에 사본제작을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A위원은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시행령 제10조 제1항을 보면 대통령 지정 기록물의 열람 등의 방법에 있어서 열람, 사본제작 및 자료제출 중에서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며 "그렇다면 제18조에서의 열람은 그 세 가지 방법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G위원도 "합목적적으로 해석하여 열람에 사본제작을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E의원도 "열림의 방법으로 사본제작을 포함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F의원도 "열람을 (사본제작까지) 넓게 해석하는 것이 맞다" 등 대체로 '합법 의견'을 내놓았다.

다만 J의원은 다소 애매한 의견을 내놓았다. 즉 "제정과정이나 관계인의 진술에 따르면 사본제작을 포함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편 문헌상으로는 열람에 한정된다고 할 것"이라는 말한 것. 하지만 이 의견조차도 '합법'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춘석 의원의 주장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국가기록원의 한 관계자는 "규정상 (열람과 사본제작이) 구분되어 있는데 사실상 전직 대통령이 요청하는 경우, 비밀이나 지정기록물이 아닌 한 가본제작 요청을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세부절차를 만들면서는 사본제작까지 가능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사실상 '합법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윤장근 법령해석심의위원장이 "국가기록원에서는 제18조에서 열람만 규정되어 있다고 해서 사본제작이 빠지는 것으로 해석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인 거죠?"라고 묻자, 이 관계자는 "그런 방향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H위원은 "문리해석에 따라 열람과 열람 등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다고 판단된다"며 "입법자의 실수라고 보이지 않고 문언해석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K위원도 "문리해석에 따라 열람에는 사본제작이 빠지는 것이 맞다"는 의견을 냈다.

갑자기 바뀐 결론 "열람에 포함 안돼"... 이춘석 "정부 법령해석에 치명타"

지난 2008년 7월 13일 정진철 국가기록원장(왼쪽 두번째)이 임상경 대통령기록관장, 국가기록원 관계자 2명 등과 함께 김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 방문 조사 후 기자들 앞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지난 2008년 7월 13일 정진철 국가기록원장(왼쪽 두번째)이 임상경 대통령기록관장, 국가기록원 관계자 2명 등과 함께 김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 방문 조사 후 기자들 앞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 황방열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을 복사본의 형태로 봉하마을로 가져간 것은 합법'이라고 보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제처는 제30차 법령해석심의위에서 "대통령의 열람권 범위에 사본제작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최종 결론내렸다. 이는 당시 청와대의 "불법 유출"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해석이다.

제30차 회의에서 주심위원인 A위원은 "이 사안은 매우 정치적인 사안으로 생각되나 최대한 정치적인 논점을 배제한 채 조문의 해석에 중점을 두고 검토를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제18조의 열람은 사본제작 등과 구분되는 개념의 열람을 의미한다. 전직 대통령의 열람 범위에 사본제작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고 해서 입법적인 불균형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통령의 열람권 범위에 사본제작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면 온라인의 열람은 사본제작보다 더 나아간 정보제공의 방법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현행 법령상 전직 대통령의 열람 편의 제공의 방법에 사저에서의 온라인 열람이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인다."

A의원의 의견에 따르자면, 노 전 대통령이 법을 어겨가며 대통령기록물을 유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윤장근 위원장은 "다른 의견이 없으므로 주심위원의 의견대로 결론을 내도록 하겠다"고 선언하며 회의를 마쳤다.  

이와 관련 이춘석 의원은 "제28차 회의에서 합법 5, 불법 3 정도의 비율로 의견이 갈렸으나 제30차 회의에서는 심의위원 전원을 교체한 뒤 이견 없이 끝냈다"며 "위원들이 한마디 의견 표명도 없이 회의를 끝낸 것으로 보아 사전 조율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첫 회의 때 국가기록원 직원들이 열람에 사본제작까지 들어간다는 의견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회의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며 "법령 유권해석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사례로 '정부의 법령 해석' 나아가 '법치'에 대한 국민적 신뢰에 치명적"이라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 참모 10명 검찰 고발... 지난 5월 서거로 사실상 '사건종결'

한편 지난해 6월 '참여정부 청와대 직원들 200만건 이상 내부자료 불법 유출'이란 보도가 나간 뒤 정진철 국가지록원장이 봉하마을을 직접 방문해 자료 반환을 요청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를 통해 "기록사본은 돌려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쪽과 국가기록원이 반환방법 등을 놓고 협상을 벌였으나 결렬됐다. 이후 노 전 대통령쪽은 하드디스크와 백업 디스켓을 국가기록원에 되돌려줬다. 하지만 국가기록원은 노 전 대통령 참모 등 10명을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봉하마을에 설치된 e지원 서버를 압수수색했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서거함에 따라 사실상 이 사건은 종결됐다. 


태그:#대통령기록물 유출사건,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회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