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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박은옥 30주년 공연을 맞아 그의 공연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릴레이 에세이 연재입니다.<편집자 주>

 오지혜 박은옥 권해효.
 오지혜 박은옥 권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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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의 인연을 말하기 전에 일방적인 인연을 먼저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연예인 이야길 할 때 식당 갔다가 옆 옆 테이블에서 밥 먹는 거 봤다, 실물이 어떻더라 하는 수준의, 그야말로 당사자들은 꿈에도 생각지 않고 관심도 없는 일방적 인연 말이다.^^;;

먼저, 박은옥 선생. 68년생인 내가 열 살을 조금 윗도는 나이였을 때다. 이제 막 연예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이고 '쑈쑈쇼'쯤 되는 티비프로를 보고 있을 때였다. 흑백시절이었지만 여가수들의 화려한 드레스(그 당시엔 딱히 시상식이 아니어도 무대에서 노랠 부르는 여가수들은 그렇게 '드레스'들을 입었던 걸로 기억한다)는 꼬마숙녀의 눈을 충분히 달뜨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화려한 연예인들 사이로 웬 옆집 대학생 언니같이, 뿔테 안경에 소박하다 못해 촌스런 바지차림으로 통기타 하날 들고 나와 노래를 부르는 여자가 있었다. 그때 부른 노래 또한 온통 떠나간 님을 향해 울어대는 다른 가요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그야말로 동요같은 노래 '윙 윙 윙'이었다.

충격, 그 자체였다. 뭐지 저 여자? 그리고 저 노래는 또 뭐지? 하지만 그때 이미 나는 가수 양희은을 언니라고 불렀다가 아줌마로 불렀(요즘은 '언니'는 너무 건방진 호칭이라 하셔서 '아줌마'로 굳혔다)다가 할 정도로 그녀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참! 희은 언니도 가수지' 하고 놀란 가슴을 바로 쓸어내릴 순 있었다.

그래도 그 비주얼과 그 목소리와 그 노랫말과 멜로디는 내 감성의 연대표에 확실히 각인됐다.(그 후 그녀와 '희은 아줌마'가 친하단 소릴 듣고 드레스는 드레스끼리, 바지는 바지끼리 친하다는 사실이 재밌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정태춘 선생. 대학로 연극배우로 살던 이십대 시절. 내 십대 때의 우상 김민기 선생 밑에서 뮤지컬 <지하철 일호선>을 공연할 때였다. 사십이 넘어가면서 조기치매증상을 보이는 나로서는 단체사진까지 남아 있는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한 가지 정확히 기억나는 건 우리 팀이 어딘가엘 함께 갔는데 그 자리에 우연히 지나가던 정태춘 선생을 김민기 선생이 "태춘아!" 하고 불렀다는 사실이었다.

"태춘아!"라니!! 나의 사춘기 때는 <시인의 마을>이나 <촛불>로 감성을 자극한 음유시인이었고 이십대 때엔 <아!대한민국>과 <일어나라 열사여> 같은 노래로 내 양심을 불편하게 했던 내 의식의 영웅이 아니던가. 하긴 김민기 또한 그러한 사람이니 한낱 무명의 어린 배우들이었던 우리들은 영웅이 영웅을 영웅이 아닌 것 같은 말투로 불러 세우는 광경이 너무 신기해서 입을 헤 벌린 채 그 상황을 '구경'했더랬다.^^;;;

세월이 흘러 나는 출연섭외보다는 원고청탁을 더 많이 받는 이상한(?) 딴따라가 되었고 시사주간지에 연재하는 인터뷰꼭지를 빌미로 박은옥 선생을 찾아가 그녀를 인터뷰했다. 그들을 인터뷰 자리에 불러내는데 성공한 매체가 그리 많지 않지만 그 와중에도 일부러 '정태춘을 뺀 박은옥'을 만난 건 내가 전무후무하지 않나 하는 자평을 하고 있다.^^;;

암튼 그 지면을 통해 투사이미지 이전에 가정 안에서의 남녀평등실천은 썩 잘해내지 못하고 있는 정태춘의 실체를 폭로(!)하고 항상 남편의 반 보 뒤에 서 있으면서 끝내 자기들은 듀엣이 아니고 독립된 가수인데 그저 공연을 같이 했을 뿐이라고 우기는 박은옥 선생의 귀여우신 모습에 정이 확 들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그들과 나는 정식 공연장보다는 문화행사를 가장한 거리 집회무대에서 자주 마주쳤는데 저 양반들이 없었다면 어쩔뻔 했나 하는 생각을 마주칠 때마다 하곤 했다.

그리고 2009년 5월. 지금도 생각만 하면 소름이 돋는 노짱의 죽음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해 있던 나는 정태춘 선생으로부터 반갑고 고맙고 영광스러운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봉하마을에서 노짱의 49재 때 올릴 공연을 준비 중인데 사회를 봐달라는 거였다. 아! 집회와 각종 행사사회 십년 세월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다들 같은 심정이었겠지만 나 역시 노짱에게 뭔가 너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던 차였기에 고맙기 이를 데 없는 자리였다. 출연료가 없다고 미안해 하시는 정선생께 '출연료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한 건 당연한 것이었고.

나의 사회적 오라비인 권해효 형과 함께 보는 사회인데 진행방식은 출연자를 소개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자도 막간마다 공연을 하듯 하는, 말하자면 추모공연 자체가 하나의 시극처럼 한다는 거였다. 대본을 받아 본 나는 그의 희곡마저 잘 써내는 재능에 새삼 감탄한다. 그 짧은 시간에 노짱의 삶과 철학을 슬프디 슬픈 시극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노짱의 입장이 되어 독백을 하는 권해효 형을 판소리 고수처럼 받쳐주는 역할이었는데 내 분량은 전체가 짧은 민요식 노래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이틀만에 노래를 익혀야 했기에 그가 보내준 악보를 받고 나서 딸아이의 리코더로 음을 찾아가며 정신없이 연습을 했다.

그런데 한참 노래 연습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만 있어보자. 이게 아무리 전래민요처럼 단순하고 짧은 곡조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정태춘 작사 작곡의 노래가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그 어떤 가수들도 평생 한 번 받을까 말까한 그의 곡을 받은 딴따라가 된 셈이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살아서는 권위주의를 온몸으로 깨부수는 걸 보여준 고마운 대통령이었던 노짱이 죽어서까지 내게 선물을 주는 것 같아 이래저래 울컥 했더랬다.

어쨌든 김혜수는 극 중에서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고 해서 목에 힘을 줬다면 난 "나, 정태춘한테 곡 받은 여자야"라고 잘난척 할 셈이다.

이번 달 말이면 그들이 오랜만에 무대에 선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그들의 위로가 필요한 지금 나 역시 위로받고자 객석에 앉아 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양평은 진즉부터 밤바람이 차가워졌다. 이 깊어가는 가을, 난 다시, 첫 차를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 정태춘 박은옥 공연은 10월 27일-11월 1일 정동이화여고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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