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도담삼봉의 세 봉우리가 남편봉, 처봉, 첩봉이 된 이유

도담삼봉 가는 길
 도담삼봉 가는 길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5번 국도는 자강도 중강진에서 경남 거제도를 잇는 국도로 죽령을 지난다. 그러므로 남한에서는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를 지난다. 이 길을 따라 북쪽 제천에서 남쪽 단양으로 가다 보면 중간에 단양읍 별곡리로 빠지는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가다 남한강과 만나는 지점에 도담삼봉이 있다. 도담삼봉은 단양읍 도담리에 있는 세 개의 봉우리를 말한다.

그러나 도담삼봉은 단양읍 하괴리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 도담삼봉 관광지가 하괴리 84-1번지에 있기 때문이다. 도담삼봉 관광지에는 주차장과 공예전시관, 광공업전시관, 음악분수 등이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먼저 우리는 도담삼봉을 살펴본다. 도담삼봉은 남편봉, 처봉, 첩봉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도담삼봉: 가운데가 남편봉, 왼쪽이 처봉, 오른쪽이 첩봉이다.
 도담삼봉: 가운데가 남편봉, 왼쪽이 처봉, 오른쪽이 첩봉이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가운데 봉우리는 늠름한 장군처럼 위엄 있는 자태를 하고 있는데 남편봉이라고 부른다. 그보다 작은 봉우리는 처봉, 남쪽 봉우리는 첩봉이라 부른다. 이 삼봉 가운데 처봉은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여 돌아앉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첩봉은 아가를 밴 모습으로 남편봉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도담삼봉을 이처럼 갈등 관계의 세 봉우리로 설정해야 할까? 왜 처봉은 남편을 미워하며 돌아앉아 있는 걸까? 우리 이야기에 보면 어째서 본부인과 남편은 항상 갈등 관계인가? 처와 첩은 사이좋게 지낼 수 없는 걸까? 이처럼 처·첩 사이가 껄끄러운 이유는 무엇일까?

가운데 남편봉
 가운데 남편봉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조선시대 사대부라는 사람 치고 첩을 거느리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들이 정치와 학문에서는 일가를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처첩을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도 결코 대가일 수는 없었다. 보편적으로 이들 고관대작도 아내들의 갈등관계 때문에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처·첩의 갈등은 항상 보통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을 것이다. 도담삼봉 이야기도 그런 연유에서 생겨났을 것으로 여겨진다.  

웬 공예전시관?

도담삼봉을 보고 우리는 주차장에 있는 공예전시관으로 향한다. 공예전시관에는 단양지역에서 만들어진 각종 공예품이 전시되고 있다. 크게 구석기 생활용품, 도자기와 금동제품, 석공예와 목공예 제품이다. 구석기 유물은 이곳에 아주 일부만 있다. 도자기로는 방곡도예촌에서 만든 도자기와 전통적인 청자 등이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별다른 특징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볼만한 것은 이곳 단양에서 생산되는 돌의 가공과정을 보여주는 조형물이다.

① 돌을 깬다.
 ① 돌을 깬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② 돌을 운반한다.
 ② 돌을 운반한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6개 과정으로 나눠 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광산에서 석재가 채취된다. 두 번째,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거나 마차를 사용해 커다란 석재를 가공물을 만드는 장소로 이동한다. 세 번째, 석재를 필요한 크기로 자른다. 네 번째, 석수들이 정을 이용해 석재를 다듬는다. 다섯째 과정부터는 아주 정교하게 작업이 진행된다.

③ 석재를 자른다.
 ③ 석재를 자른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④ 석재를 다듬는다.
 ④ 석재를 다듬는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탑을 예로 든다면, 기단부와 탑신부, 상륜부로 나눠 각각 일을 진행한다. 기단부는 우주와 탱주 안상 등을 조각한다. 탑신부는 문비, 덮개돌, 기와골 등을 조각한다. 상륜부에 대한 조각은 기단부와 탑신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고 간단하다. 이들 조각과정을 거치고 나서 마지막으로 이들 석재를 맞춰 탑을 완성한다. 공예전시관에서 우리는 하나의 탑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⑤ 탑재를 조각한다.
 ⑤ 탑재를 조각한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⑥ 탑재를 맞춰 탑을 완성한다.
 ⑥ 탑재를 맞춰 탑을 완성한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이들 공예전시관의 전시물을 보고 나서 전시관 밖에 있는 테라스로 나갔다. 그곳에서는 도담삼봉을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 주차장과 선착장에서 보는 도담삼봉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 테라스 벽면에 정말 의미 있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단양팔경 그림이다. 단양팔경하면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옥순봉, 사인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이다. 이들 중 중선암과 하선암 그림만 없다.

단양팔경 그림 이야기

단양팔경 그림은 조선후기 진경산수화가들에 의해 많이 그려졌다. 최북, 관호 엄치욱, 능호관 이인상,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이방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실제로 단양팔경을 유람하고 그렸기 때문인지 그림이 현재의 모습과 거의 다르지 않다. 이처럼 진짜 경치를 보고 그린 그림을 진경산수화라고 부른다.

최북의 상선암
 최북의 상선암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엄치욱 또는 김홍도의 옥순봉
 엄치욱 또는 김홍도의 옥순봉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상선암 그림은 최북의 것이다. 상선암 계곡물이 바위와 부딪쳐 3단을 이루며 굽이쳐 흐른다. 옥순봉은 관호 엄치욱의 그림이다. 가까운 곳은 수직준으로 웅장한 바위를, 먼 곳은 산의 윤곽 위에 소나무를 단순화해 표현했다. 엄치욱은 김홍도와 동시대에 활동하던 화가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2009년 한국민족미술연구소에서 간행된 <간송문화(澗松文華)>에는 단원 김홍도의 작품으로 되어 있다.

겸재 정선의 구담봉
 겸재 정선의 구담봉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구담봉은 겸재 정선의 그림이 좋다. 힘찬 수직준과 활달하게 찍은 미점준으로 바위의 웅장함과 소나무의 부드러움을 공존시키고 있다. 구담봉을 휘감아 도는 강과 뒤로 보이는 산은 담묵으로 처리 배경을 형성한다. 그리고 구담봉 오른쪽 솔밭을 짙게 처리하여 음영의 이치를 잘 표현했다. 그림 하단부 강에는 선비를 실은 나룻배를 그려 시선을 자연스럽게 아래로 끌어들이고 있다.

사인암은 이방운의 그림과 단원 김홍도의 그림이 있다. 이방운의 그림은 정면도와 평면도의 기법을 혼합하고 있다. 높은 산 위에 올라 사인암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사인암과 집들이 근경으로 보이고 그 뒤로 강물이 흘러가며 원경으로 산과 마을이 보인다. 근경 사인암 오른쪽으로는 가마와 나귀를 타고 유람하는 선비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방운의 사인암
 이방운의 사인암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김홍도의 사인암
 김홍도의 사인암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이에 비해 김홍도의 그림은 사인암을 화폭 가득히 그리고 있다. 선의 농담을 이용, 바위결을 다르게 표현했다. 암벽 아랫부분은 과감히 생략하였는데 그것이 오히려 바위의 웅장함을 더해준다. 사인암 앞에는 집과 돌을 진하게 표현하여 산수와 대비되는 인간세계를 그려 넣었다. 전체적으로 그림의 단순함을 보완하기 위해 소나무 줄기와 잎을 비교적 완전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실물을 보고 있는 도담삼봉은 단원 김홍도와 이방운이 그렸다. 이 두 그림 역시 진경산수 또는 실경산수이다. 그런데 이방운의 그림에 나오는 도담삼봉과 석문은 실제 모습과 조금 다르다. 이에 비해 김홍도가 그린 도담삼봉은 주차장에서 보는 모습과 거의 같다. 세 개의 봉우리가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으며, 세봉 중 가운데 남편봉이 가장 크고 우뚝하다.

김홍도의 도담삼봉
 김홍도의 도담삼봉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현재의 도담삼봉
 현재의 도담삼봉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이 그림에 보니 남편봉에 정자가 없다. 그렇다면 정자는 1800년대나 1900년대에 세워졌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이때도 역시 사람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주차장이 있는 하괴리 쪽에서 괴나리 봇짐을 진 두 선비와 한 여인이 배를 기다리고 있고 그 옆에는 나귀가 끄는 마차가 나루터로 간다. 더욱이 이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배가 삼봉을 지나 이쪽으로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아주 단순하면서 던져주는 메시지가 풍부하다.     

석문 그림도 있어

이방운의 석문과 도담삼봉
 이방운의 석문과 도담삼봉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이방운의 석문은 산 위에 인공물처럼 우뚝하다. 그런데 실제 석문은 산의 능선 아래 자연스럽게 생긴 일종의 굴이다. 그래서 석문동천이라고도 부른다. 그림에 보면 가까운 석문에서 출발한 시선이 유람선을 통해 오른쪽 삼봉으로 향한다. 이들 삼봉에서 시선은 다시 왼쪽 멀리 마을과 산으로 향한다. 이들 산과 바위가 미점준과 부드러운 부벽준으로 처리되어 전체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도담삼봉에서 전망대를 지나 석문에 이르면서 도담삼봉과 석문을 조망해도 이런 경치를 볼 수는 없다. 산의 정점에서 보면 도담삼봉은 세 개의 바위가 약간은 겹쳐 보이고, 석문은 나무와 숲에 가려 분명한 모습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구비 내려가 굴 앞에 이르러야 윗부분의 둥근 홍예를 볼 수 있고 그 아래로 강과 그 건너 도담리 마을을 볼 수 있다. 이곳 석문에는 다음과 같은 마고할미 전설이 서려 있다.

현재의 석문
 현재의 석문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옛날 마고할미가 하늘나라에서 물을 길러 내려왔다가 비녀를 잃어버려서 비녀를 찾으려고 흙을 손으로 판 것이 99마지기의 논이 되었으니 그 논을 옥전(玉田)이라 부른다. 비녀를 찾지 못한 마고할미는 논다랭이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비녀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며 농사를 지었는데 끝내 찾지 못했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던 마고할미는 일생을 이곳에서 보내다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어서 바위가 되었는데 지금도 긴 담뱃대를 물고 술병을 들고 있는 마고할미의 형상이 바위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후대에 만들어진 스토리텔링이다. 석문에서 99마지기의 논도 찾을 수 없고, 바위에서 마고할미의 형상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문에 오르면 휘감아 도는 남한강의 물줄기와 저 멀리 소백의 연봉을 볼 수 있어 오를만한 가치가 있다.


태그:#도담삼봉, #상선암, #옥순봉과 구담봉, #사인암, #석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