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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27일에 열린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제주를 방문했다.

 

올해로 2회를 맞는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대회는 서남아시아 수해재민 지원프로젝트인 '나마스떼, 겐지스(Namaste, Ganges 안녕, 겐지스)'를 후원하기 위해 열리는 국내 유일의 기부마라톤대회다. 대회는 인터넷신문 <제주의소리>, 탐라대학교, '아름다운가게' 등의 공동 주관으로 열리고, 참가 선수들은 구좌생활체육공원운동장을 시작으로 구좌읍 일대 해안을 지나 운동장으로 되돌아 오는 코스를 달린다. 

 

박원순 이사는 희망제작소 이외에도 '아름다운가게'와 '아름다운재단'의 상임이사직을 겸하고 있다. 그 때문에 작년 초대 대회가 열릴 때도 손수 행사장을 찾아 선수들과 함께 5킬로 코스에 참가하기도 했다.

 

최근 국정원 및 정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국가로부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한 터라 박 이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의 언행은 세간의 우려를 말끔히 날려버릴 만큼 밝고 발랄했다. 거기에서 80~90년대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으로 다져진 내공을 엿볼 수 있었다.

 

필자가 박원순 이사를 취재한 것은 작년 대회에 이어 두 번째다. "이사님, 작년에 비해 체중이 좀 줄으셨나요"라고 묻자, "아뇨, 나이 들어서 체중이 줄어드는 것은 좋은 일인데, 전 전혀 그렇지 않아요"라며, 신변에 아무 이상이 없음을 과시했다.

 

대회에 앞서서 운동장에서 함께 준비율동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들이 경쾌한 음악에 맞춰 전문 강사들의 율동을 따라하는 동안 박 이사는 눈에 돋보일 정도의 가볍고 경쾌한 몸놀림을 선보였다. 주면에 있던 참가자들이 신기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개회식이 시작되자, 내빈이 소개되고 그들로부터 격려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올해 대회를 통해 마련된 기부금이 박 이사에게 전달되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선수들이 낸 참가비 중 절반을 기부금으로 적립했다. 참가자들을 대표해서 용재식, 강희숙 선수가 모금액 20,066,195원(2006만 6195원) 을 박 이사에게 전달했다.

 

대회 팸플릿에는 "1천원이면 어린이 5명에게 저녁식사를, 5천원이면 농부 1명을 위한 곡식과 야채 종묘를 선물할 수 있습니다. 1만원이면 어린이 1명에게 더 나은 미래를 시작할 교육자료 세트를, 5만원이면 생활위생 개선과 콜레라 예방을 위한 화장실 1곳이나 신선한 물이 나오는 물 펌프 1개를 선물할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2천여 만 원의 기부금이 서남아시아 지역에서 얼마나 긴요하게 쓰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박 이사는 "여러분 모두가 기부천사입니다"라는 인사와 더불어 "오늘 즐겁고 아름답게 완주하십시오"라며 참가자들에게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의 레이스가 힘차게 시작되었다.

 

필자는 박 이사와 함께 5킬로 코스를 걸으며 최근 그의 신변에 닥친 문제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 국정원이 박 이사의 뒤를 조사하고 다니거나 기업에 압력을 넣어 활동을 방해하였고, 급기야 정부가 나서서 명예회손 소송을 제기하는 등 권력의 외압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박 이사님께서는 '아름다운가게'와 '아름다운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계시기 때문에 이들 단체들의 활동이 위축되지는 않습니까?

"국정원이 저에게 소송을 걸어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시민들이 '아름다운가게'를 후원하겠다고 연락이 오고 있어서 사업이 이전보다 더 잘되고 있어요. 정부가 오히려 우리를 도와준 셈이에요. 국가기관의 압력으로 일부 기업이나 은행이 '아름다운재단'을 후원하는 것을 중단하는 일이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와 관계를 맺은 대부분의 파트너 기업들과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게 걱정 없이 잘 유지되고 있어요."

 

- 박 이사님은 참여연대에서 활동하실 때부터 정치 영역에서는 나름대로 경계를 걸어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부터 최근까지도 이 대통령과 상호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부와의 관계가 금이 가게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 건가요?

"어느 날 갑자기 저들이 그러는 이유를 전 잘 모르겠어요. 거꾸로 정부기관들을 상대로 취재를 해보세요. 어느 기관에서 누구 아이디어로 저를 탄압하기로 결정했는지. 그럼 재미있는 기사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런데 웃기잖아요. 국민들은 정부가 아무 이유 없이 우리의 활동을 탄압하려는 것을 보면서 '개그콘서트'라고 부른다고 해요. 그만큼 국민들이 다 안다는 거예요. 국민들은 저를 잘 알고, 정부를 잘 아는 거죠."

 

- 케이비에스(KBS) 정연주 전 사장은 정부, 특히 검찰이 유죄를 확신하지도 않은 상태로 자신을 기소한 것을 두고 '모욕주기'가 저들의 목표였다고 말씀했습니다. 박 이사님 경우에서도 '모욕주기'의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를 형사고소 하지 않고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보면 일종의 '저강도 전술'이에요. 사회 활동가들을 서서히 그리고 끈질기게 옥죄서 활동을 위축시키겠다는 의도죠. 큰 혐의 없이 한꺼번에 탄압하면 사회적 반발이 생길 수 있잖아요? 그런데 누구 머리에서 나온 구상인지 모르지만 정권 내부에서도 비판이 많을 거예요. 우리의 기부와 나눔 운동은 서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이에요.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그런 활동을 탄압한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 스스로 홍보해온 '중도', '친서민' 행보가 허구라는 사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어요."

 

-그런데 정부가 대책 없이 '아름다운재단'이나 '아름다운가게'의 활동을 억압하려 하지는 않았을 건데요. 

"정부가 그래서 최근에 '미소금융중앙재단'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잖아요. 앞으로 2조원의 기금을 육성해서 서민들을 지원하겠다는 건데요. 이런 나눔 운동은 정부보다는 민간에서 시민들의 후원을 얻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적당한 일이에요. 정부가 민간 활동의 영역에서 아이디어를 도용한 후 관주도로 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일이거든요."

 

인터뷰를 마칠 즈음 전교조 교사로 보이는 참가자가 등에 '전교조 교사 시국선언 합법'이라고 쓴 문구를 달고 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박 이사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즉석에서 아이디어를 짜냈다.

 

"내년부터는 참가자 전원에게 등에 자신의 소망을 적은 문구를 달고 뛰라고 하면 좋겠네요. 나눔이란 게 물질을 나누는 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서로 소망을 나눌 수 있다면 대회가 더욱 뜻있지 않을까요?"

 

코스를 다 돌고 오는 동안 박 이사는 수많은 참가자들과 얘기를 나눴고, 그들의 생각을 귀담아 들으려 애썼다. 특히, 시각장애인의 조건으로 세계 4대 오지마라톤 대회를 석권하기도 했던 송경태 전주시의원과의 대화 끝에는 대회 관계자들에게 내년 대회서부터 장애인들을 더 잘 배려할 수 있는 방안을 손수 내놓기도 했다.

 

"장애인과 기업 간에 매칭 형식으로 지원하면 좋겠네요. 예를 들어 장애인 한 명이 1Km를 달릴 때마다 기업에서 정해진 액수를 후원하는 제도를 만드는 거예요. 재미있는 실험들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단순하면서도 다양한 제안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등을 연속으로 히트시킬 수 있었던 그의 숨은 저력을 조금이나마 감지할 수 있었다. 마라톤 참가자들이 코스를 완주하고 모두 운동장에 돌아오고 나서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태그:#박원순,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대회, #아름다운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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