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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법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법원은 본래 보수적이다. 그럼에도 법원은 법을 다루기에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있는데, 이 원칙이 '막나가는' 시절에는 진보적 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요즘이 딱 그렇다. 검찰은 법원이 권고한 조정을 받아들인 당시 정연주 KBS 사장을 배임죄로 기소했다. 아무리 대놓고 '충견'이라지만 이건 너무했다. 법원 결정 받아들인 것이 죄라니 법원도 얼마나 황당했을까? 결과는 무죄. 미네르바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봐도 "공익을 해할 목적"이 없었다. 역시 무죄.

 

헌법재판소는 24일 야간 집회를 사실상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10조에 대해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역시 지극히 원칙적인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위헌'이 아니라 '헌법불합치'로 결정 난 것에서 법원의 보수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같은 시대에는 이 결정의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래도 헌법재판소"라고 말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과 함께 태어난 야간집회 금지

 

이번 결정은 안진걸 광우병국민대책위 조직팀장이 촛불집회 재판과정에서 "집시법 10조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했고, 당시 박재영 서울중앙지법판사가 이를 받아들여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면서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언론들이 이 결정을 작년 촛불집회와 관련해서 보도하고 있지만, 이 문제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으며 의의 역시 더욱 크다.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에 있어서 쟁점은 집시법 제10조가 집회에 대한 사전허가제를 금지한 헌법 21조 2항을 위반하였는지였다. 백문이 불여일견. 일단 해당 법조항을 한 번 보자. 먼저 헌법 제21조이다.

 

제21조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자유를 가진다"에서 '자유'의 의미를 뒷받침하기 위해 허가나 검열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항이 이어진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는 민주주의에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이기에 그러하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시국선언이 이어졌을 때, 정권의 언론장악과 집회불허 등이 핵심 근거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그래서 곧 없어질 집시법 제10조를 보자.

 

제10조(옥외집회 시위의 금지 시간)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하여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한 경우에는 관할 경찰관서장은 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도 옥외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

 

일몰이후에는 집회가 안 된다고 못을 박고 시작한다. 게다가 헌법에서 집회에 대한 허가제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하위법인 집시법에서는 떡하니 관할 경찰관서장이 '허용'여부를 사전에 결정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한 눈에도 말이 안 되는 법률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군부독재라는 시대적 맥락에 있다.

 

5·16 군부쿠데타 직후인 1962년에 개정된 헌법에서는 지금은 없어진 집회관련 조항이 하나 달려있었다. 제5차 개정헌법 제18조 4항은 "옥외집회에 대하여는 그 시간과 장소에 관한 규제를 법률로 정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헌법 개정 이후 5일 만에 제정된 집시법은 일출 전과 일몰 후의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을 가지게 된다.

 

이 집시법은 대사관 등 2백 미터 이내 집회금지, 주요도시 및 주요도로 집회금지 등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사실상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이 아니라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법률"이었던 것이다. 박정희 군부정권은 정국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집시법을 적극 활용했다.

 

1962년도 이야기다. 탱크 밀고 들어와 대통령 하던 때 이야기다. 이때 만들어진 헌법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공중도덕과 사회윤리를 위하여는 영화나 연예에 대한 검열을 할 수 있다." 가위질이 헌법에 명시되던 시대였다.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헌법의 옥외집회 관련 내용도 삭제되고, 집시법의 다른 조항들 역시 조정되었다. 집시법의 야간집회 금지 조항도 삭제되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끙끙거리며 가져왔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군부독재의 통제수단으로 만든 일몰 후 집회금지 조항을 이제서야 없앨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한다. 보수신문조차도 "외국 입법례에서도 집시법 해당 조항과 같이 전면 금지 조항은 찾기 힘들다"로 말할 정도로 명백한 기본권 침해였다. 이를 결국 민주적으로 선출된 국회가 아닌, 재판관들의 손을 통해서 해결한 것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게다가 '헌법불합치'라는 뜨끈 미지근한 결정으로 내년 6월 30일까지 유예기간을 줄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검찰과 경찰은 현행 법규가 당분간은 유효하기에 이 법규대로 집행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당분간은 계속 민주주의의 핵심원칙을 '침해'하겠단 이야기다.

 

'집회 시위 금지'의 정치적 의미, 한 몸 불살라 보여주신 분

 

한국 근대사의 그늘이 짙게 배인 법률이었고, 작년 촛불집회가 가졌던 영향력이 상당했기에 이 사안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정작 이 문제가 가진 정치적 의미를 한 몸 불살라 보여주신 분은 따로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불똥이 다시 튀지는 않을까 걱정하시며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으실 신영철 대법관. 밥은 넘어가실까?

 

지난해 10월 야간집회 금지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되자 상당수 판사들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며 재판을 중단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해당 법률의 위헌여부에 따라 판결 자체가 달라지는 상황에서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때 당시 신영철 서울중앙지법원장이 재판을 그대로 진행하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 제목도 깔끔하게 "야간집회 관련" 이었다.

 

'정상적'인 사법행정 작업이라 강변했지만, 이미 촛불관련 재판들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형사단독판사 16명 가운데 13명이 법원장에게 사건 배당의 편향성에 대해 항의했으며, 신영철 당시 법원장은 수차례 공식·비공식 라인을 통해서 촛불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될 것을 사실상 '요구'했다. 위헌 결정이 날 경우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날 수 있기에 재판을 연기했던 일선 재판부가 보기에는 명백한 '압력'이었다. 이 사실이 드러나자 일선 판사들의 긴급 회의가 이어졌고, 대법원은 자체 진상조사단을 꾸렸다. 불과 며칠 만에 사법부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이런 소나기를 꿋꿋하게 버틴 신영철 대법관은 여전히 대법관이시다. 누가봐도 자진사퇴가 불가피했지만, 저러고도 어떻게 대법관으로서 판결을 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대법관이시다. 반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해서 헌법불합치를 이끌어낸 박재영 당시 서울중앙지원 판사는 당시 여러 압력에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법률의 위헌성을 제기한 당사자인 안진걸씨는 자신 때문에 박재영 판사가 신영철 대법관으로부터 핍박받고 법복을 벗게 된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결국 해당 법률은 헌법불합치로 결정됐다. 9명의 재판관 중 6명이 위헌이면 그 법률은 바로 무효가 되지만 한 명이 모자라 헌법불합치인, '사실상'의 위헌결정이다. 현재 재판중인 촛불사건에 대해 전면 재검토는 불가피하게 되었다. 신영철 대법관은 왜 신속한 재판을 주문했을까? 이 상황을 예상했던 것이 아닐까?

 

집시법 위반자는 그 정치적 의미로 인해 더욱 신중한 재판이 요구된다. '선수'인 그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결국,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박정희 시대의 법률로 빨리 '유죄'를 선고하기 위한 압력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양반이 아직도 대법관이라니. 자다가도 기억해야 할 이름, 신영철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후 야권과 시민사회에서 신영철 대법관의 사퇴요구가 다시 빗발치는 것은 당연하다.

 

집시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이유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이다. 권력은 통치를 위해 이 본질적 가치를 늘 위협했다. 직장다니고 학교다니는 사람들에게 해 떨어지면 집회 못 한다고 하는 것은 집회하지 말라는 것이다. 군사정권이 노린 것은 이것이었다. 이명박 정권 역시 비판적인 목소리를 틀어막기 위해 이 법률을 이용했다. 거기에 검찰과 사법부까지 가세해 촛불을 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겠다고 으르렁거렸다.

 

보수단체들은 이번 헌재의 결정을 놓고 "헌재가 이번 결정이 사회적으로 어떤 혼란이 일어날지 면밀히 고민해 보지 않고 결정한 것 같아 상당히 유감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걱정도 팔자다. 이미 2006년에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은 주야간 구별에 따른 법정형 구분을 폐지했다. 전기문명의 발달로 야간에 이루어진 폭력범죄가 가중처벌될 이유가 줄어들었다는 이유였다.

 

경찰청이 2005년에 발간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운용 매뉴얼'에서는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이유를 "심리학적으로 군중이 주간보다 자극에 민감하고 흥분하기 쉬워서 집회가 본래의 목적과 궤도를 이탈하여 난폭화할 우려가 있고, 불순세력의 개입이 용이하"다고 밝히고 있다. 추상적인 가정에 불과한 근거로 집회의 자유 자체를 박탈하겠다는 이야기다. '기본권'은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기본권'인 것이다.

 

지금까지 집시법은 집회와 시위를 막기 위한 법률이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계기로 집시법에 대한 전면적인 사회 논의는 불가피해졌다. 그러나 논의의 과정은 험난해 보인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에 가까운 결정을 내렸기에 야간집회 금지 조항이야 수정이 되겠지만, 신지호 의원 등이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마스크 착용금지와 각목 등 소지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한 법안을 발의해놓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때 만장으로 쓰일 대나무를 시위용품으로 쓰일 수 있다며 PVC로 바꾸게 한 정권의 압력은 이러한 법안이 가져올 효과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촛불집회는 불법천지의 폭력집회였나? 명확하게 해둔다. 그 정도 인원이 그만큼 평화롭게 집회한 것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만약 그들이 조직된 폭력을 사용했다면 이명박 정권은 군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고, 정권 유지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느라고 '집회'를 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 원칙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가로막는다면 그것은 무덤을 파는 꼴이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서 부디 집회·시위에 대한 근본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태그:#야간집회, #신영철, #안진걸, #집시법, #헌법불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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