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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과 미국의 '포괄적 패키지'는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그랜드 바겐'을 놓고 한미간에 이견이 나타난 근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랜드 바겐에 대해 '한미 엇박자'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를 수습하기 위한 발걸음이 바쁘다. 하지만 빈틈을 다 메우기는 어렵다.

 

정부 당국자들은 한 목소리로 "'그랜드 바겐'이라는 일괄타결 방안은 그동안 한미간에 협의해 온 내용이며, 양국 사이에 아무런 의견 차이가 없다"며 "양국은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공동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진화에 나섰다. 같은 생각인데, 단순히 의사소통에서 문제가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 외교부 인사는 '그랜드 바겐'에 대해 "사실 (미국의) 포괄적 패키지의 포장지만 바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 고위관계자'도 '연합뉴스 기자 등'과 만나 "양국 간에 6자회담의 목표와 관련해 어떤 간격(daylight)도 실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미 양국은 매우 긴밀한 조율을 해 왔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엇박자' 지적 이후에 한미간에 긴밀한 움직임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엇박자수습' 중 달라지지 않은 미국무부 대변인... '그랜드 바겐' 성격 규정 유보

 

하지만 "그랜드 바겐은 이 대통령의 정책이고 그의 연설이기 때문에 내가 코멘트할 게 아니"라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던 이언 켈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24일 브리핑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미국의 접근 방식과 그랜드 바겐이 '같은 생각'(same idea)이냐는 질문에 "북한이 불가역적인 조치를 취하면 미국과 동맹국들이 포괄적인 방식으로 상응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 미국의 일관된 입장이며 5개국도 이를 공유하고 있다"고 일반적인 답을 했다. 그러면서 "자세한 사항(details of his proposal)은 한국 정부에 물어봐야 할 것"이라고 넘겨버렸다. '그랜드바겐'에 대한 성격 규정을 유보한 것이다.

 

그의 말대로 "북한이 불가역적인 조치를 취하면 미국과 동맹국들이 포괄적 패키지를 제공한다"는 것에 한미간에 이견은 없다. 그런데 이 같은 '포괄적패키지'는 1994년 제네바합의와 2005년 9.19공동공동성명에서도 표현이 완화되는 형태로, 그 기조는 그대로 관철돼 왔다. 이미 '일괄타결'은 북핵문제 해결의 기본전략으로 굳어진 것이다.

 

지금 핵심은 '단계적 접근'이냐, 아니냐는 점이다.

 

'그랜드 바겐'의 성격을 청와대는 '원 샷 딜'(one shot deal, 한 방 협상)이라고 정의했다. "(이제까지) 단계별 처방과 보상이 되풀이되는 방식이 아닌 근본적 해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대가제공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 폐기'의 구체적 의미에 대해서는 '사용 후 핵 연료봉의 국외 반출, 플루토늄의 폐기'라고 말했다. 이제 겨우 협상을 재개하는 상황에서 비핵화의 최종단계에서나 가능한 수준의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이에 대한 오바마 정부에서는 처음으로 대북 '포괄적 패키지'를 꺼낸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의 생각은 무엇일까.

 

"'그랜드 바겐'에 대해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킨 21일 그는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말들을 했다. 그는 "북한이 강조했던 2005년과 2007년의 모든 합의들에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헌신한다면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등 국제사회가 함께 (대북) 패키지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을 이 대통령이 강조한 것으로 추측한다"고 밝혔다.

 

캠벨, '단계론'인 2005년과 2007년 합의 이행 강조

 

'2005년과 2007년의 모든 합의들'은 9.19공동성명(2005년)과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1단계 조치인 2.13합의, 그리고 2단계 조치인 10.3합의를 말하는 것으로, 북한에 기존합의의 선이행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원 샷 딜'과는 다르다.

 

그는 이어 "이는 진전을 위해 지금까지 수개월간 이어져 온 일반적 원칙이며, 문제는 우리가 이것의 초기 단계에 있다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최소한의 일부 조기 조치를 취하기 위해 북한으로부터 '작지만 근본적인 조치'를 이끌어내려고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에 대한 질문에 '작지만 근본적인 조치'(small but fundmental step)를 끌어내고 있다고 답한 것이다.

 

문태영 외교부 대변인이 24일 정례브리핑에서 "그랜드 바겐을 얘기한 우리 정부는 앞으로 단계적 접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일괄적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조금 전에도 지적했듯이 단계별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들이 있는데, 그것은 앞으로 검토를 해봐야 될 것 같다"고 답한 것도, 이런 고민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9.19공동성명당시 한국 수석대표였던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2005년과 2007년에 북한과 합의를 이뤄낸 다른 나라들은 그대로 있는데 이명박 정부만 다르게 가고 있다"면서 "포괄적패키지와 그랜드바겐의 내용도 다르고, 절차적으로도 합의가 안 됐기 때문에 미국에서 다른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책연구소의 한 인사도 "미국이 생각하는 포괄적 패키지는 9.19공동성명을 기초로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던 미사일 이슈 등 새로 발생한 문제들을 포괄해서 타결하겠다는 것으로 이번에는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이라면서 "미국이 단계적 접근 방식을 접었다면 커트캠벨과 이언켈리가 왜 저런 반응을 보이겠느냐"고 말했다.

 

"내용도 다르고 절차합의도 안 됐기 때문에, 미국에서 다른 말이 나오는 것"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왜 미국과는 다른, 그것도 현실가능성이 없는 구상을 내놨을까.

 

북미대화가 목전에 와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미국과 북한이 속도를 낼수록 가장 강경하게 제재를 외친 이명박 정부만 뒤쳐지게 된다. 더욱이 보조를 맞춰주던 일본도 민주당 집권 뒤 행보가 달라질 조짐이다.

 

한 외교안보전문가는 "이 대통령은 북미대화를 서두르고 있는 미국에 속도 조절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북한과 미국이 저만치 앞서가고 한국이 허겁지겁 이를 따라가는 모양새는 이명박 정부에게 대단한 부담일 수밖에 없고, 대북정책을 바꾸기도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국내정치적인 요인도 있다. "북한에 대한 제재가 성공적이기 때문에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되는데, 미국이 또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보수세력을 감안해 미국 현지에서 세게 '질렀다'는 것이다.

 

문제는 먹힐 수 있는 카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어떻게'가 없는 실행불가능한 구상이라는 점에서 미국과 중국의 신뢰만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은데다, 부실한 사전협의로 미국과의 이견만 드러냈기 때문이다.


태그:#그랜드바겐, #포괄적패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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