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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님을 생각하면 우선 그 선한 웃음과 수수한 옷매무새가 생각납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하면, 웃음 속에 자리한 유연하나 결코 굽히지 않는 의지와 수수함 속에 자리한 시대를 꿰뚫는 탁월함이 떠오릅니다. 그는 우리 시대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의 지향은 때론 급격하게, 때론 잔잔하게 우리 사회를 바꾸어온 동력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를 생각할 때 또 하나 떠오르는 영상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헌신하다 권력의 무자비함에 핍박받고 탄압받는 처절한 시민운동가의 모습입니다.

 

지난 6월 박원순 상임이사는 한 언론인터뷰를 통해 지금 시민단체들이 민간사찰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총체적으로 지휘하는 곳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고 국정원 개입설을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9월 15일 국가정보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대한민국'(법률상 대표자 법무부장관 김경한) 이름으로 2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대한민국만을 원고로 해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지금까지 전례가 없었던 최초의 일이라고 합니다.

 

9월 17일 실천의 현장이나, 새로운 사업을 알리기 위한 기회가 아니면 좀처럼 보기 힘든 박원순 상임이사는 기자들 앞에 섰고, 조목조목 사례를 들며 국정원의 사찰과 탄압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석연 법제처장조차도 '상당히 회의적'이며, '많은 법적 논란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권력은 두 가지 방향으로 시민을 통제하고 관리합니다. 하나는 말하지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게 철저히 단절시켜버리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나서 제한된 정보만을 유통시켜 생각을 원하는 방향으로 지배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방식은 말하고, 듣고, 보는 모든 것과 그를 둘러싼 모든 사회적 관계마저도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근거로 그가 모르는 사이에 그의 생활을 규제하고 방해하고 겁줌으로써 원하는 방향으로 지배하는 것입니다.

 

전자의 방식에 대해 우리는 언론악법 강행처리의 과정에서 절절히 느끼고 있습니다. 권력은 그토록 노골적으로 우리의 정보를 통제하려 합니다. 이제 후자의 방식이 전면화되고 있음을 박원순 상임이사의 경우를 통해 우리는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자 사찰'의 부활입니다. 2009년 대한민국의 권력은 이처럼 완벽하게 20-30년 전으로 퇴행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며 10년 동안 국가정보원은 통치권력의 수단, 공안정치 본산의 모습을 씻어내고 있었습니다. 국민 모두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제 제대로 뿌리내리려는 순간 또다시 그 뿌리가 송두리째 뽑히고 있습니다. 또다시 '그림자 사찰'의 행동대장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 국정원 홈페이지의 첫 화면에는 '자유와 진리를 향한 한걸음 한걸음'이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지금 저에게 그 문구는 '탄압의 자유와 사찰을 통한 조작된 진리를 향한 한걸음 한걸음'으로 보입니다. 남는 것은 두려움과 분노 뿐입니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은 소설 <1984년>에서 '빅 브라더'의 출현을 예견합니다. 빅브라더는 텔레스크린을 통해 소설 속의 사회를 끊임없이 감시합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한 감시,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무자비한 통제를 통해 권력의 기득권을 유지한다는 암울한 예견이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을 그려놓은 소설 같지 않으십니까? 실시간으로 이메일 내용과 열어본 홈페이지 이력까지 알 수 있는 초고속 인터넷 패킷 감청 기술까지 자랑하고 있으니 조지 오웰 조차도 그 놀라움에 무릎을 칠 판입니다. 우리에게 세계적 인터넷 강국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준 IT기술은 이처럼 누가,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가에 의해 화장실 속까지 꿰뚫어버리는 흉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보다 지속가능한 세상, 보다 사람향기 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대한민국을 새롭게 디자인하려는 우리 시대의 리더들이 권력의 희생양이 되고 있습니다. 황지우 시인과 진중권 교수, 그리고 박원순 상임이사 등이 그들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들을 믿고, 그들의 지향을 믿으며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재산을 기꺼이 내어놓은 더 많은 이 시대의 주인공들이 그 마음을 거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분들이 갖게 될 권력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 가치에 대한 회의, 참여와 배려에 대한 환멸을 누가 복원할 수 있단 말입니까!

 

풍선을 누르면 어느 시간동안은 버틸 수 있지만, 결국은 터져버립니다. 이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진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이 땅의 권력자들은 여전히 지금의 국민을 겁주고 두드리고 누르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건강한 시민들은 역사 속에서 순리가 무엇인지 몸으로 체득하고 있습니다. 강압적 권력은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늘 그랬듯이 시련과 수난은 늘 우리의 즐거운 동반자였습니다. 10년 전, 20년 전에 그랬듯이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다시 압제와 싸울 것이며, 역사와 미래는 우리 편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열정을 다 바쳐 일할 것입니다."

 

17일 기자회견장에서 박원순 상임이사의 차분하고 강인한 마무리였습니다. 우리는 이에 화답해야 합니다. 언제나 이 땅의 건강한 시민들은 박원순 상임이사의 즐거운 동반자이며, 그러하기에 함께 싸울 것이라고. 저 또한 역할을 찾아 함께 하겠습니다.


태그:#정동영, #박원순, #사찰, #고소,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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