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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모 국내 단체에 매달 소액 기부한 것이 삼 년째에 접어들었다. 말하기도 민망한 액수지만 꾸준히 끊지 않고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충분히 먹고 살고 있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것과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정말로 하고 싶어도 몸이 불편하거나 주변 환경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매일을 고통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내가 도와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믿음'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 곳에서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어디에다 어떻게 내가 가진 돈을 주어야 할지는 항상 의문스럽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병든 아이를 배경으로 전화 한 통으로 1000원씩 기부되는 현황이 중계되는 장면은 뭔가 인간적이지 못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의 제작비와 촬영비, 기타경비 등을 제외하면 어느 정도나 그 아이에게 제대로 전달될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면 비판의 여지는 없다.

의심은 핑계일 뿐이다

98년 국가 환란의 돌파구로 홍보된 금모으기 행사 때 '가진자'들의 책임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대신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털렸다'는 느낌을 가진 이후로 정부에서 하는 모금행사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한비야씨의 책을 읽고 그녀가 소속되어 있던 월드비전에 기부하고 싶다는 마음은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도 차일피일 일 핑계로 미루어온 것이 오래되었다. 남들의 위기에 처한 삶보다 나와 내 안위가 더 우선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돈을 많이 벌면 기부할 거야. 불쌍한 사람들 도우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처와 가끔 불쌍한 이들의 이야기를 보거나 듣고는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돈을 그리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이 없거니와 정말 남을 돕기 위해 돈을 벌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현실에 뛰어들 자세가 되어 있을까?

역시나 나의 삶은 올바르지 않았다. 세끼를 꼬박 챙겨먹고 가끔 외식을 하며 좋아하는 책과 영화를 사서 보고 여름휴가를 가서 즐길 수 있는 처지에 당장 옆에서 돈이 없어서 굶거나, 아픔을 견디지 못해 죽어가거나, 주사를 맞지 못해서 병에 걸리는 예쁜 아이들을 제대로 도와오지 못했다.

당신은? 당신은 기부하는가

돼지저금통으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원어제목: The Life You Can Save.
▲ 책표지 돼지저금통으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원어제목: The Life You Can Save.
ⓒ 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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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로 대표되는 헐벗은 사람들. 우리는 주기적으로 미디어를 통해 가난 때문에 죽어가는 아이들을 접하고 있다. 그들은 태어난 환경부터 고통의 시작이다. 그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서, 예방주사를 맞지 못해서, 모기장을 살 돈이 없어서 그들은 그렇게 힘없이 생을 마감한다.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하는 것이라고는 순간의 동정심을 발휘해서 마음으로만 멀리서 위로하는 것뿐이다.

기부해야 한다.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그들이 지속적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왜? 왜 우리는 우리가 술을 마시거나, 차를 바꾸거나, 해외여행을 가거나, 과자를 사먹거나, 핸드폰을 바꾸거나 하는데 들이는 돈의 일부라도 그들의 삶을 찾아주는데 쓰기를 주저하는 것인가.

당신 앞에 물에 빠진 아이가 있다. 중대한 계약을 위해서 또는 가족과의 일 년만의 약속을 위해 시간을 다투며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곧 빠져 죽을 것 같은 아이가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옷이 젖을까봐, 양말과 새로 산 구두가 머릿속에 떠오르고 차를 그냥 두고 달려가면 누군가 훔쳐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하지만, 아마 그냥 못 본 체 하고 지나치는 인간은 거의 없다. 누구든지 주저하지 않고 구하러 뛰어 들 것이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물에 빠진 아이들'을 접하고 있다. 돈이 없어서 매일 한 끼밖에 먹지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태어나서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 천원의 주사를 맞지 못해서 병에 걸리는 아이들. 그들은 하루 천원이면 적어도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그들을 위해서 선진국의 국민들이 각자 1달러씩 기부만 해도 지금 죽어가는 아이들의 대부분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당장 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급진적인 논리로 기부하지 않는 사람들을 압박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으며 각자의 신념대로 행동할 수 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일했고, 그 돈을 마음대로 쓸 권리가 있다. 우리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보편적인 의무를 갖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세금에서 일부의 돈이 대외 원조로 나가고 있다. 또한, 일방적 원조는 의존하는 습관을 들이게 한다."

이러한 생각들이 우리를 기부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리고 꽤 설득력이 있다고 믿고 있어서 마음속에서 거의 흔들리지 않을 정도다.

설득력이 있어야 운동이 된다

그러나 이는 핑계일 뿐이다. 그들의 처지는 우리가 이런 의논하는 것조차 사치일 정도로 훨씬 절박한 상태다. 그저 그들에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인데 그런 기회를 내가 벌어들이는 돈의 일부로 주자는 것은 선한 일이며 오히려 알면서도 주지 않는 것이 '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과거의 대부호들보다 많은 기부를 하고 있는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같은 '의식 있는' 부자들은, 수입의 1% 기부로 온갖 생색을 내고 다니는 일부 부자들에 비한다면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돈을 기부하고도 여전히 여유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으며 당장 자동차 할부금과 집 대출 이자를 갚는데 급급한 서민들하고 비교할 수 없다.

서민은 기부할 수 없다. 자동차 할부금에 집 대출 이자를 갚아야 하고 아이들 학원비를 대기에도 빡빡해서 마이너스 통장의 지출이 늘어간다. 휴가비와 주변의 관혼상제가 차지하는 비용 등도 벅차다.

하지만, 나는 먹고 산다. 굶지 않고 있고 예방주사도 꼬박꼬박 맞으며 무엇보다도 물을 길으러 십리길을 걸어 다니는 일은 해본 적도, 그런 일을 하는 주변사람을 본 적도 없다. 그러니 색이 바랜 티셔츠를 몇 달 더 입고 그 돈을 학교도 못 다니는 아이를 위해 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기부는 당연한 일이다

그럼 어떻게 기부할 것인가. 저자는 본인의 수익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유흥과 오락을 위해 쓰는 돈, 더 써도 되는 물건을 바꾸는 일에 쓰는 돈 등을 무조건 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업체나 국가차원에서 개인 소득의 일부를 기부액으로 미리 설정해 놓는 것도 한 방법이라 한다(오스트리아는 기부를 '디폴트'로 한다). 개인이 그 기부설정을 거부 신청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기부액으로 나간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그 기부의 비율은 구성원들의 동의를 통해 정해져야 한다.

옆집아이가 물에 빠졌는데 나 몰라라 할 인간은 없다. 먹고사는 데에 더 이상 급급하지 않은 '선진국'의 개인으로서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산책자/ 12,000원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가난으로부터 구할 것인가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산책자(2009)


태그:#물에빠진아이, #아프리카, #말라리아,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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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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