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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살다보면 별일 다 본다. 최근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실감하는 말이다. 하나같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일어난 일들이다. 어쩌다가 '우리들의 대한민국'이 박노자의 표현대로 이렇게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되었는가.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부터 광우병 보도에 대한 문화방송 'PD수첩' 기소,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의혹, 나아가 최열 환경재단 대표에 대한 수사와 정연주 전 한국방송공사(KBS) 사장 기소,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구속, 비평가 진중권씨에 대한 중앙대 및 홍익대의 강의박탈 등….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당혹스럽기만 하다. 정상적인 사람의 눈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비정상의 연속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이런 모든 일을 뛰어넘는 비정상의 압권은 다름 아닌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소송이다. 박 변호사는 시민단체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다.

 

박 변호사가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민간단체 사찰의혹을 폭로한 데 대해 국정원은 '대한민국'을 원고로 한 법률상 대리인인 법무부장관 이름으로 고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국정원이 '대한민국'을 내세워 국가의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박 변호사를 상대로 2억 원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낸 것이다.

 

원고가 국가인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명박 대통령의 승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소송은 이명박 대통령(MB)이 박 변호사를 상대로 한 법적 소송이라고 본다. 실질적인 원고는 '대통령 이명박'이고, 피고는 '시민운동가 박원순'이다.

 

이번 소송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1970년대 "유신헌법은 나쁘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국민을 처벌하던 국가모독죄다. 오래전에 죽었던 박정희의 국가모독죄가 벌떡 일어나 살아있는 국민을 벌하겠다고 회초리를 든 우스꽝스런 모습이다. 한마디로 유신시대 발상의 소송이다. 정부에 비판적인 의견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치적 의도라는 본질이 같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부 들어서 그러잖아도 민주주의 위기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민주주의의 3대 핵심가치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크게 훼손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MB가 소송을 취하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한 명예소송의 주체가 될 수 있느냐 하는 심오한 법리논쟁 이전에, 우선 이 대통령은 박 변호사에 대한 소송을 하루라도 빨리 취하해야 한다. 국민통합의 최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이런 소송으로 오히려 국민을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 애초부터 민간인끼리라면 모르지만, 국가가 소송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소송을 취하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 사안은 국가가 소송으로 해결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현 정부의 법령의 타당성 여부 검토를 책임지고 있는 이석연 법체처장도 이번 소송에 대해 "적절치 않다"고 밝혔겠는가.

 

나는 박 변호사가 밝힌 희망제작소의 서민상대 소액대출사업과 지역홍보센터운영의 갑작스런 중단 등의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는 주장을 믿는다. 폭로내용의 구체성과, 박 변호사가 그동안 국민들에게 보여준 시민운동가로서 일관성과 신뢰성, 그리고 역대정권에서 국정원의 행태 등을 따져보았을 때, 정상적인 국민이라면 누구의 말을 믿겠는가.

 

물론, 국정원은 민간단체에 대한 정보수집 자체를 아예 하지 않았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고 있으나, 어떻든 박 변호사가 주장하는 '사찰과 압력'은 아니라고 부정한다. 그래서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민간인 사이에도 분쟁이나 갈등이 있다고 바로 법정으로 가지 않는다.

 

더구나 국가는 자신의 방침을 충분히 알릴 수 있는 언론과 홍보수단이 있지 않은가. 국가는 시민의 비판이나 의혹 제기에 대해 가능한 정책에 대해서는 정책으로 설명하고,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사실로서 반박하거나 대응하면 된다. 인신공격이 아닌 한 공인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먼저 국가를 상대로 법적으로 고발하지 않는 한, 국가가 정책이나 국정운영과 관련한 시민의 의혹제기에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시민의 건전한 비판을 허용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설령 명예훼손을 당했다 하더라도, 그 구제방법이 개인 간의 다툼과 같은 방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박 변호사가 법적으로 먼저 고발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이 대통령이나 국정원 특정 개인의 인격침해와 관련한 비방이나 의혹제기가 아니지 않은가.

 

'실용주의 친서민 생활정책'의 원조는 박 변호사

 

두 번째, 이명박 정부가 '중도실용 친서민정책'을 펼친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박 변호사의 희망제작소가 바로 '실용주의 친서민 생활정책'의 원조다. 박 변호사가 참여하는 희망제작소의 지향은 서민을 위한 실용주의 정책대안 마련이다. 정치적 파당성이나 이념적 편향을 뛰어넘는, 지역과 생활에 기반을 둔 순수한 시민단체가 희망제작소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저소득층에게 '미소금융재단'을 통해 소액금융 대출을 하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정책은 희망제작소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본뜬 것이다. 희망제작소가 하나은행과 함께 하려다 갑자기 중단된 '하나희망재단'을 통한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과 그 취지 및 내용이 똑같다. 이 정도면 학문적으로는 완전표절이요, 특허저작권으로 보면 명백한 지식재산권(지적재산권) 침해다.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 친서민정책'이 단순한 정치적 구호나 제스처가 아니라 실체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라면 박 변호사를 탄압할 이유가 없다. 이 대통령이 진정한 실용주의를 한다면, 가장 먼저 손을 내밀 상대는 '실용주의 시민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박 변호사다.

 

세 번째, 이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서도 순수한 시민단체의 활동을 탄압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의 영역과 시민운동의 영역이 조화를 이룰 때, 시민주권의 실현과 실질적 민주주의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국민을 위해 일하는 대통령을 원하지, 어설픈 정치공작이나 정치적 탄압을 하는 정파적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취임 초 이미 호되게 경험하지 않았는가. 지난해 국민과 소통을 거부하고 일방적 국정운영으로 초래한 촛불시위와,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인간적 예우를 무시하며 인권침해와 정치보복 논란을 가져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일어난 엄청난 국민의 분노를 목격하지 않았는가.

 

최근 이 대통령의 지지도가 조금 올랐다고, 벌써 이런 교훈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최근 이 대통령의 지지도 상승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국장허용과 친서민 행보를 통한 초당적 행보 때문이다. 국민은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충실할 때 지지를 보내지만,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정략적 보복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외면한다. 이번 소송은 대통령의 지지도 상승이나 국정운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박 변호사를 시민운동에서 쫓아내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네 번째, 박 변호사를 순수한 시민운동가로 남겨두는 것이 국가적으로 바람직하다. 박 변호사는 인권변호사로서 그동안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에서 순수한 시민운동을 길어온 대표적 시민운동가다.

 

수많은 시민운동가들이 그동안 정치권에 진입하거나 정치적 행보를 보였으나, 박 변호사는 거의 유일하게 순수한 시민운동의 외길을 걸어왔다. 그동안 민주당 등 야당뿐만 아니라 심지어 여당인 한나라당도 그를 정치적으로 영입하거나 이용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박 변호사를 탄압해 시민운동의 길마저 봉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명박 정부를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나 무슨 이익이 된다는 것인가. 혹시 잠재적인 정치적 경쟁자라고 보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미리 흠집을 내겠다는 정치적 의도라면, 정말 유치한 발상이다.

 

박 변호사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는가. 박 변호사는 우리 사회를 바꾸어 희망을 심어주는 '소셜 디자이너'로 남겠다고 하지 않는가. 이명박 정부는 지금 박 변호사를 시민운동의 영역에서 내쫓음으로써,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궁극적으로 정치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결과가 이명박 정부에게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갈까.

 

이 대통령은 퇴임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대통령은 퇴임 이후의 평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어차피 2013년이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어 있다. 대통령 자신도 재임 기간 중의 평가는 정책과 국정운영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고, 퇴임 이후에는 새로운 전직 대통령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지 않은가.

 

이 대통령이 만약 사소한 문제들로 현직에 있을 때 민사소송을 당하거나, 퇴임 이후 면책특권이 사라졌을 때 대통령 재임 중의 부차적인 문제들로 민형사상 소송을 당한다고 생각해 봐라. 얼마나 억울한 것인가.

 

이번 소송은 그동안 박 변호사가 이끌던 시민단체에 선의로 후원해 오던 양심적인 기업가들에게도 못할 짓이다. 기업가들은 당장의 사업에 영향을 주는 정부의 현실 권력과 순수한 시민단체의 명분 사이에서 마음고생을 해야 한다. 박 변호사로서도 정부에 불리한 법정증언을 기업가들에게 요청하는 것은, 자신을 도와줬던 후원자들에게 인간적 도리로 하기 어려운 부탁이다.

 

국정원은 기업가들이 박 변호사를 위해 법정에서 진실을 증언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적 상황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 박 변호사와 양심적 기업가들 사이의 인간적 관계마저 파탄내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소송은 중단되어야 한다. 이것은 결코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면, 나 자신은 피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있다.

 

민주주의에 재갈 물리려는 국가에 의한 신종 '스토킹소송'

 

정권이 바뀌면, 언젠가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다. 유서대필사건도 18년이 지났지만, 결국 검찰의 조작사건으로 진상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불행히도, 박 변호사에 대한 국가의 민사소송은 아마도 이 대통령이 퇴임한 뒤에나 결론이 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민운동가인 박 변호사와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의 입을 막고, 기업의 후원을 중단시킴으로써 시민단체의 손발을 자르겠다는 의도라면 모르지만.

 

그런 의도라면 이 대통령은 이미 소송제기 그 자체로 충분한 효과를 보았다. 기업들은 시민단체에 대한 지원을 끊은 지 오래고, 앞으로도 이 정권 아래서는 어떤 기업도 시민단체에 대한 후원을 감히 꿈꾸지 못할 테니까.

 

더 이상 소송을 끌고 가는 것은 상대를 괴롭히겠다는 것, 그 이상의 아무런 의미도 없는 소송이다. 민주주의와 시민단체에 재갈을 물리려는 국가에 의한 신종 '스토킹소송'일 뿐이다.

 

이런 소송은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할 일이 아니다. 이 대통령에게도, 박 변호사에게도, 국민들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이 대통령은 하루빨리 박 변호사에 대한 소송을 취하해야 한다. 국민들은 이 대통령은 국정운영으로, 박 변호사는 시민운동으로 평가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태그:#박원순, #스토킹소송, #희망제작소, #국정원 민간단체사찰, #국가모독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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