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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가까운 용마산(348m)에서 면목동으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긴 소매를 입어야 할 정도로 제법 서늘하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사람들은 '독서의 계절'이라며,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맞춰 책읽기를 즐기곤 했다. 나 또한 어릴 때부터 땀 삐질삐질 나는 무더운 여름보다는 선선한 가을 밤하늘에 휘영청 걸린 달을 바라보며 책읽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온라인 오프라인이 함께 하는 요즈음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전 사람들보다 책읽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만 같다. 여러 언론과 출판단체에서 '독서의 계절을 맞아 책을 읽자'라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여도 정치, 경제, 사회가 어지러운 데다 오랜 불황 탓인지 책읽기보다 식의주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듯하다.

 

'지식의 꽃'이라는 책이 이처럼 독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있자 출판사들과 서점들은 울상이다. 책을 할인해서 택배로 보내주는 온라인 서점 또한 얼굴빛이 그리 밝은 것은 아닌 듯하다. 어떡해야 할까. 무엇이 우리 국민들을 책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는가. 예로부터 책을 읽는 국민이 많아야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다 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을 새삼 꺼낼 필요도 없이, 올 가을에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책을 몇 권이라도 읽어보자. 책 속에는 인터넷에서 나돌아 다니는 값 싼 정보가 아닌 새롭고도 깊이 있는 정보가 많이 담겨 있다. 책 속에는 인터넷에서 느껴보지 못하는 살아 펄떡거리는 사상과 감정 따위가 새록새록 숨 쉬고 있다.

 

21세기 노동시... '괜찮은' 시인... 영원한 화두 '평화'

 

글쓴이가 올 가을을 맞아 지난봄부터 여름까지 미처 다 읽지 못하고 잠시 내버려 두었다가  다시 꺼내 끝까지 다 읽은 책이 있다. 전태일 열사 탄생 60주년 기념시집인 <완전에 가까운 결단>과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맹문재 대담집 <행복한 시인 읽기>, 그리고 한국문학평화포럼에서 펴낸 무크지 <한국평화문학 5>가 그 책들이다.  

 

지난 4월 초, 전태일 열사 탄생 60주년을 맞아 백무산, 조정환, 맹문재가 엮은 <완전에 가까운 결단>(갈무리)에는 이 땅 문단 일선에서 창작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시인 58명의 신작시가 전태일 열사를 사르던 그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이 시집 제목 <완전한 결단>은 전태일 열사가 1970년 8월 9일에 남긴 일기 속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김규동, 신달자 등 시인 19명을 만나 인터뷰 형식으로 꾸린 맹문재 대담집 <행복한 시인 읽기>(서정시학).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행복한 시인'을 '읽는다'라는 뜻도 있지만 찬찬히 되짚어보면 우리시대 '괜찮은 시인 읽기'가 '행복'하다는 뜻도 숨겨져 있다. 여기서 '괜찮은 시인'이란 우리시대 화두를 '남의 집 불구경' 하듯 하지 않는 시인이라는 뜻이다.     

 

해마다 10차례씩 한반도 곳곳에 있는 소외된 현장을 찾아다니며 상생과 평화의 씨알을 뿌리고 있는 <한국문학평화포럼>(회장 김영현)에서 펴낸 무크지 <한국평화문학>(화남)은 지난 2008년도에 이루어진 여러 가지 문학적 실천과 문학예술인들의 단결된 힘을 한데 모은 책이다. 우리 민족이 서로 사는 길은 오직 '평화'라는 두 글자뿐이라는 듯이.   

 

2MB 땜질 민생정책에 밥 걱정해야 하는 이상한 시대

 

 

"실업, 해고, 구조조정, 비정규직, 도산, 폐업, 물가폭등...... 하루도 예외 없이 몰아치는 겨울바람 같은 뉴스들 앞에서 밥의 문제를 떠올린다. 제2의 IMF가 닥친 현실이기에 생존 자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부는 어려움에 처한 민생들의 삶을 너무 안일하게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서문 '다시 우리의 목소리여' 몇 토막

 

58명 공동시집 <완전한 결단>은 지난 1970년 11월 13일 분신한 전태일 열사 회갑을 맞아 이 땅의 노동시인들이 '노동해방'을 그리며 쓴 신작시집이다. 백무산, 조정환, 맹문재가 엮은 이 시집에는 노동을 애인처럼 사랑하고, 노동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며, 노동으로 전 계급과 계층의 해방을 꿈꾸는 우리 시대 참여시인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들어있다.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는 시들에서부터 이른 바 '비정규직'이라는 21세기 새로운 노동 현실, 그 현실을 뛰어넘기 위해 힘차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촛불집회 현장, 국민보다 경찰을 더 믿는 2MB 정권에 대한 저항과 분노 등이 지난 해 광화문과 시청 앞을 밝히던 촛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다.

 

박운식 '논둑에 서서', 이소리 '그 예쁜 여자', 홍일선 '잊고 산 시간들이 많다', 김기홍 '바위 위에 씨앗을 심다', 김명환 '오십', 박영희 '울어라, 보일러', 정원도 '무장', 정인화 '많이 보고 싶다', 정우영 '갈담장', 표광소 '별', 성희직 '전태일을 말한다', 서정홍 '술자리에서', 김해자 '경배', 김사이 '하루', 이수호 '이 위원장' 등 58명의 시가 그것.

 

전태일 열사는 1948년 8월 26일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전국 곳곳에서 촛불집회가 타올랐던 지난 2008년은 고인이 태어난 지 6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 시집 끝에는 지난 2006년 이 세상을 떠난 고 박영근 시인이 쓰다 만 동화 '전태일'도 실려 있어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툭 친다.

 

시인 백무산은 "전태일은 누구인가? 투사인가? 열사인가? 그 어떤 수식도 그를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어쩌면 그를 '전(前) 단계 혁명시인'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라며 "온몸으로 시대를 예감하고 몸을 태워 시를 쓴 '원초적 혁명시인'이 아닐까? 그를 아직도 현재형으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몸의 시로 예감한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인을 통해 시를 읽다

 

 

"다양한 시인들을 만난 즐거움을 고스란히 품기 위해 '행복'이란 이름표를 달았다. (나는) 작품읽기를 통해 시인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시인 읽기를 통해 작품세계의 전반을 이해한 이 경험은 새롭고도 즐거웠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작품들의 행간을 시인들로부터 직접 들어 알게 되는 순간은 마치 두레박으로 깊은 우물을 길어 올렸을 때처럼 뿌듯했다."-'머리말' 몇 토막

 

올 3월 끝자락 나온,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맹문재 대담집 <행복한 시인 읽기>는 시를 읽고 시인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시인이 쓴 시를 깊이 있게 읽게 만드는 책이다. 그가 이 좌충우돌하는 2MB시대에 '행복한 시인 읽기'라며 '행복'이란 두 글자를 쓴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이번에 만나 대담을 나눈 시인들은 김규동 선생을 비롯해 신달자, 노향림, 이기철, 성선경, 한혜영, 김길나, 김 참, 표성배, 김종미, 심재휘, 조은길, 조혜영, 송경동, 휘 민, 노춘기, 박미산, 박철, 정석원 등 19명이다. 원로시인에서부터 중견, 신인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만나 시에 대한 이야기를 폭넓고도 깊이 있게 들은 셈이다.

 

원로시인 김규동 선생은 이번 대담에서 박인환과 이상, 김수영에 대해 독특한 입장을 밝힌다. 박인환은 이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김수영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 따라서 박인환은 "사회주의적인 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상이 주의나 이념을 포기한 성격이라면 박인환은 어떻게 해보자는 쪽"이었다며, 박인환에 대해 새로운 평가를 내렸다.

 

시인 송경동의 노동시에 쓰이는 시어에 대한 이야기도 눈에 띤다. 그는 "현장에서 쓰이는 말들은 대부분 일본어가 많다. 이는 근대 건축문화가 일본 식민지 치하에서 발달되었기 때문"이라며 "우리말 표기를 고집하지만 적당한 시어가 없는 경우에는 현장감을 살리려는 취지에서 (일본어를) 그대로 쓴다"고 말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맹문재는 1963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가 있으며, 시론집으로는 <한국 민중시 문학사> <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 <지식인 시의 대상애> <현대시의 성숙과 지향> <시학의 변>을 펴냈다.

 

김대중, 노무현 남북업적 '물로 보는' 2MB 정권

 

 

"새 정부 출범 이후 이 땅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우편향적 정책은 연일 언론보도를 장식하였음은 물론이거니와 무엇보다도 분단 상태에 놓인 한반도의 평화체제가 심각하게 우려해야 할 정도로 위기적 국면이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게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 행했던 업적과 노력을 대승적 차원으로 계승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이 책을 펴내면서' 몇 토막

 

한국문학평화포럼 기관지 <한국평화문학 5>는 이 단체 소속 문학예술인들이 국내외에서 여러 문학축전을 열면서 한반도 평화와 우리 민족의 상생문제를 시 혹은 노래, 춤으로 승화시킨 문학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이 책 한 권 속에는 문학예술인들 입땀과 솜땀, 발땀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이번 무크 5집에는 '평화 에세이 6인선'으로 '갈라짐과 소멸의 슬픔'이라는 시인 리명한의 분단과 통일에 대한 글과 시인 김남주 시와 통일을 이야기한 김준태의 글, 시인 임효림, 소설가 이상락, 유영갑, 시인 정용국의 글이 실려 있다. '특별기고'에는 강상기, 양관수, 이소리, 김제완, 정상철이 글을 보냈다.

 

신작시 특집 14인선에는 윤재걸의 소금밭 단상 외 2편을 비롯해 박희호, 임종철, 박선욱, 이승철, 고규태, 김영환, 김이하, 손태연, 고희림, 김규성, 이성룡, 정재분, 정종연의 시가 실려 있다. 신인작품에는 박정모의 시 '선운사 동백꽃' 외 6편, 권영임의 소설 '침묵'이 심사평과 함께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그밖에 여순사건 60주기 문학예술제 심포지엄과 일본의 평화문학, 김재성의 평화소설, 함영연, 최경숙의 평화동화, 시인 이기형, 작가 유재영, 시인 홍일선, 공광규 등이 쓴 '나의 삶, 내 문학의 현주소' 등도 눈에 띤다. 평화 신작시 67인선에는 시인 고은, 민영, 장석주, 하종오, 나종영, 박두규, 이재무, 김기홍, 김해화, 윤일균 등의 시가 실려 있다.

 

<한국평화문학> 편집위원장 홍일선 시인은 "<한국문학평화포럼>의 이름으로 우리가 행한 여러 가지 노력과 실천이 문단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운동으로 오도시키려한 문단 일부의 몰이해에 마음고생을 하며 시달려야 했다"며 "우리는 21세기 세계사적 화두인 평화와 상생, 공존이라는 문제에 천착한 작품과 글을 게재하면서 새로운 문학적 힘으로 태동한 평화문학의 당위성을 주창했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완전에 가까운 결단 - 전태일열사 탄생 60주년 기념시집

백무산.조정환.맹문재 엮음, 갈무리(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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