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56년 경남 창녕 출생.

1974년 경기고 졸업 - 서울대 법학과 입학.

1982년 대구지검 검사.

 

최근 국가정보원으로부터 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박원순 변호사의 초창기 이력을 살펴보면 이렇다.

 

영남 출신에 명문학교를 나온 20대 검사가 민주화와 인권이라는 거룩한 이상에 자신을 내던지지 않고 '법질서 확립'의 외길을 묵묵히 갔다면 그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상상을 잠시 해보았다.

 

이귀남 법무장관 후보자와 천성관 전 서울중앙지검장,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허만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이 그의 사법연수원 동기였는데, 공교롭게도 검찰에 남았던 이귀남·천성관은 뒤늦게 위장전입 전력이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판·검사 동기들이 승승장구하던 1980~90년대에 그는 인권을 유린당한 학생·재야인사들의 편에 섰다. 권인숙 부천성고문사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부산미문화원점거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다루는 법정에는 어김없이 그가 변호인으로 나왔다.

 

1980년대 변론하는 틈틈이 연구·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내놓은 총 1124쪽의 <국가보안법 연구> 3부작은 권력이 '국가안보'라는 명분 아래 개개인의 인권을 얼마나 손쉽게 짓밟았는지를 보여주는, 절절한 기록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강남의 대형서점에서 그의 저서를 우연히 발견하고 30대의 젊은 변호사가 이리 두꺼운 책을, 그것도 정부의 법질서를 나무라는 책을 쓴 것에 대해 크게 놀랐었다.)

 

한국사회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안착된 이후에도 그는 참여연대(1994년)와 아름다운재단(2000년), 아름다운가게(2002년), 희망제작소(2006년) 등을 히트시키며 시민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일반인에게 비교적 생소한 그를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잠재적인 대통령 후보로 치켜세우는 것도 자신을 요란하게 포장하지 않으면서도 시민단체의 말석을 묵묵히 지키는 그의 인품을 높이 산 측면이 있다. 틈만 나면 야당과 진보진영을 물어뜯는 보수신문에서 박원순 변호사의 흠결을 잡아내려는 기사를 찾아보기 힘든 것도 그의 '자기관리'를 보여주는 역설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2004년 총선에서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모두 그를 입당시키거나 공천심사위원장 자리에 앉히려고 했지만, "정치에 관심없다"는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무슨 선거든지 후보 공천이라는 게 후유증이 없을 수 없는데 "박원순 정도의 도덕성과 권위를 가진 인물이 참여한 결정이라면 낙천자들을 달랠 수 있다"는 정치적인 계산이 깔렸던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그런 계획은 무위로 그쳤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다보니 그를 아끼는 사람들사이에 "박 변호사가 정치권력의 온당한 행사라는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에 맞서려 하지 않고 '생활'의 영역으로 자신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게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새어나온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전후 사정을 아는 사람들에게 박원순 변호사가 이명박 정부로부터 받았다는 '대접'은 당혹스러움으로 다가온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박 변호사의 권유로 아름다운재단이 만든 기금에 자신의 월급을 4년 임기 내내 기부했고, '아름다운가게' 행사도 여러 차례 후원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실용적 정책과 의견 수렴을 긍정적으로 생각한 박 변호사는 17일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이) 진정으로 성공하기를 바랐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정보기관 압력설'을 제기한 박 변호사에게 거액 소송을 건 이후 두 사람의 관계도 파국으로 치닫는 듯하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이 지난 4월 '아름다운가게'에 카페를 차려준 모 대학 총무과를 찾아와 "좌파단체들의 자금줄이며 운동권 출신 직원들이 대다수인 '아름다운가게'를 후원한 사유가 뭐냐"고 문의했다고 한다.

 

좀 더 진위를 가려볼 필요가 있겠지만, 박 변호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표변하는 비밀경찰'의 오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명박 시장의 아름다운가게 후원은 아무 문제도 삼지 않다가 지금에 와서 가게를 후원하는 학교와 기업체들을 압박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

 

국정원은 "그런 일이 없다"고 펄쩍 뛰지만, 박 변호사가 '국정원의 부적절한 개입'으로 폭로한 사례가 무려 15건에 이른다. 백번 양보해서 15건 중 한두 건을 박 변호사의 오해 또는 억측으로 돌린다고 해도 국정원이 15건의 혐의를 모두 벗을 수 있을 만큼 그 동안 떳떳한 활동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올해 들어 국정원이 국내 정세에 '다시' 관심을 보이는 신호가 잇달아 들리는 것도 국정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게 한다.

 

 

진위 여부를 떠나서 "국정원이 검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구속 수사 의견을 전달했다", "국정원이 이명박 정부의 인사실태 내사에 착수했다"는 식의 언론보도가 잇따랐고, 국정원이 개인의 인터넷 사용 내역까지 알 수 있는 첨단 기술을 고안했다는 시민단체의 주장까지 나왔는데 국정원의 환골탈태를 믿어도 될까?

 

이 뿐만이 아니다. 정연주 전 KBS 사장과 진중권 전 중앙대 겸임교수가 외부 강연할 때도 정보과 형사들이 행사장에 나타났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형사들의 출몰을 '일상적인 정보 수집'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이명박 정부로부터 부당한 탄압을 당한 이들인데, 이런 식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권력기관이 '너무 치사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또한 박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하나은행과 마이크로크레딧 후원사업을 같이 하기로 합의하고 기자회견까지 했는데, 갑자기 무산됐다"며 "이 사건에 국정원이 개입한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부는 같은 날 "기존의 소액서민금융재단을 '미소금융중앙재단'으로 확대 개편해 앞으로 10년 간 총 2조 원의 기금으로 서민과 중소상인에 대한 소액 대출(마이크로크레딧)사업을 벌인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가 민간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기왕에 잘 되고 있는 사업을 훼방놓은 뒤 해당 사업을 관 주도로 재포장해서 정권의 실적으로 만들려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나는 이명박 정부를 믿고 싶다. 아니, 믿어야 한다. 국민에게 정부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다.

 

그러나 그러한 신념을 지키기에는 이 정부는 너무나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박원순 변호사는 "대선이 끝나고 촛불시위가 일어나고 그리고 언젠가부터 세상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일어나 보니 완전히 20~30년 전 세상으로 돌아와 있었다"고 개탄했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면 당장의 피해는 위험을 경고한 몇몇 사람에게 집중되겠지만, 궁극적인 피해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것이 될 것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새로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몸을 내던져온 박원순 변호사가 다시 '거리의 변호사'로 돌아가는 것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태그:#박원순, #국정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