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솔직히 말해서 겁이야 나긴 나지요. 그런데 어떻게 해요. 그렇다고 집에만 콕 처박혀 있을 수도 없고, 사실은 요즘 많이 답답해요, 무시할 수도 없고, 마땅한 대처 방법도 없고, 난감혀."
"나잇살이나 먹어 살만큼 살았는데 까짓것 신종플루인지 뭔지 때문에 벌벌 떨며 숨어 살 순 없잖아요, 걸리면 죽는 거고, 다행히 안 걸리면 사는 거지."

신종 플루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미 8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중 대부분은 일명 '고위험군'이라고 불리는 노인들이었다.

지난 16일,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 시내 두 군데 노인복지관을 찾아가봤다. 그곳에서 만난 노인들은 대부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듯했지만 적잖이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하긴 타미플루도 수급이 부족하다고 하고, 예방백신도 없는 상태에서 과연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고위험군'이라지만 손씻는 것외에 방법 없어

 청계천 하구 쉼터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노인들
 청계천 하구 쉼터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노인들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복지관 입구에서는 안으로 들어가는 노인들 한분 한분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었다. 노인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복지관 안에도 방마다 손 소독약품이 비치돼 있다.

서울 시내 노인복지관은 직장생활에서 은퇴한 노년층의 배움의 장소이자, 레크리에이션 공간이기도 하다. 노인들은 이곳에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거나 컴퓨터 배우기, 국악교실, 붓글씨와 사군자 그리기, 택견배우기 등 다양한 강좌를 찾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강좌를 끝내고 나오는 노인에게 물었다.

"요즘 신종플루가 극성인데 좀 어떠십니까."
"신경쓰지 않아요...어쩔 수 없잖아요?"

복지관에는 하루에도 수백 명씩의 노인들이 드나들기 때문에 감염위험에 쉽게 노출되지만 그렇다고 집안에만 있을 수는 없지 않냐는 것. 손을 자주 씻는 것 외에 감염에 대비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것도 노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사실은 어제 동네 노인들과 함께 버스를 대절해서 지방나들이를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노인들 대부분이 가지 않겠다는 통에 취소됐어요. 신종플루인지 뭔지 그것 때문이라고들 하대요."

복지관에서 만난 올해 73세인 김아무개씨의 말이다. 김씨는 기대했던 지방나들이가 취소된 것을 몹시 섭섭해 하는 표정이었다. 김씨의 말에 의하면 요즘 관광버스 사업도 매우 부진하단다. 평일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노인들인데 신종플루 때문에 별로 이용을 안 하기 때문이란다.

다음날, 필자 역시 같은 경험을 했다. 17일, 지방에 있는 산을 등산하기 위해 예약했던 산악회가 예약을 취소한 사람이 많아 떠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등산예약을 취소한 사람들 상당수가 신종플루에 대한 걱정  때문에 못 가겠다고 했다는 게 산악회 총무의 말이었다.

"사람 많은 곳은 일단 안 가, 위험해"

 청계천에 산책나온 할머니
 청계천에 산책나온 할머니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강북 지역 복지관 두 곳을 들러본 후 청계천을 찾아보았다. 청계천 하류지역에서 억새밭 사이로 난 산책로를 걷는 노인들 몇 분을 만날 수 있었다. 노인들과 함께 걷다가 쉼터 의자에 잠깐 앉아 쉬며 말을 걸었다.

"전에는 종묘공원에 자주 갔었는데 요즘은 거기도 안 나가. 신종독감인지 뭔지, 그것 때문이야. 지하철 타는 것도 그렇고, 사람들 많이 모여 있는 곳은 위험하다니까."

성동구 사근동에 사신다는 올해 76세 박기석(가명) 노인의 말이다. 가족들이 조심하라고 당부하여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 대신 날마다 혼자 청계천을 산책하다는 것이었다.

"조심하는 수밖에 없어요. 만약에 신종플루에 걸려도 돈 없고 가난한 노인들은 그냥 죽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병원 진료비와 약을 사 먹으려면 10만원이 훨씬 넘는 돈이 있어야 한다는데 갑자기 그런 돈이 어디 있나요?"

부실한 의료체계가 노인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인근 용답동에서 왔다는 최할머니(75)는 요즘은 노인정에도 안 간다고 했다. 전에는 날마다 할머니들이 함께 모여 지내곤 했는데 요즘은 별로 모여들지 않는다고 했다. 할머니는 둘째 아들이 직장생활 하느라 대구에서 살고 있는데 추석 명절에도 올라오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노인들은 나이가 들어 기력도 떨어지고 당뇨나 고혈압 같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신종플루에 취약한 고위험군에 속하는 노인들의 삶은 겉으로 드러난 평온과는 달리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다.

이런 가운데 강남구 의원들이 해외출장을 가면서 무단으로 타미플루를 처방받았다는 뉴스를 보니 화가 난다. 질병치료 마저도 돈과 권력에 우선권을 줘야 하는 건지.

서늘해지는 날씨와 함께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요즘, 가장 불안한 건 우리 노인들이 아닐까.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 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