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아이돌 그룹 2PM의 리더 '재범(박재범)'이 그룹을 탈퇴하고 출국한 지 일주일이 되었다. 그 사이에 여론의 동향은 크게 바뀐 것 같다. 비등했던 비난 여론이 동정론으로 가라앉으면서 재범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누리꾼들과 이에 편승하여 사태를 증폭시킨 언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 이런 사태를 조장 또는 방관한 우리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여론이 빨리 반전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고 본다. 먼저 사태가 불거지자마자 재범이 잘못을 바로 시인하면서 솔직하게 사과한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그는 사과 후 지체 없이 그룹을 탈퇴하고 출국함으로써 사과의 진정성과 행동으로 책임을 진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다음으로, 그가 작성한 한국 관련 비하 글의 진상이 알려진 것도 여론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글을 작성한 시점이 입국 초기 미성년의 연습생 시절이었다는 사실, 그가 한국 또는 한국인을 비하하는 데 선택한 'hate'(싫다)나 'stupid'(어리석다) 등이 그리 몹쓸 악의의 뉘앙스를 가진 어휘가 아니라는 사실, 이와 달리 한국에 대한 애정을 피력한 발언도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발언이 '광장'이 아닌 '밀실', 즉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은 신속히 수그러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재범 비난 여론이 변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상황적인 이유 말고도 여론이 신속히 제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비교적 신속히 도출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필자는 재범이 출국한 다음 날(9일) 아침, <오마이뉴스>에 이 문제의 본질은 '우리 안의 파시즘'에 있다는 주장 글을 게재했다.('우리 안의 파시즘이 22세 청년을 쫓아냈다') 일면 도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필자의 주장에 누리꾼들의 초기 반응은 거칠게 반발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65만 명이 클릭하면서 2천 개 가까운 댓글이 달리는 추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루 이틀 지나자 댓글은 찬반이 비슷해졌다. 그리고 3, 4일 후에는 필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댓글이 단연 많아지는 것을 보고 확연한 여론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이제 재범군 사태는 '빗나간 애국주의' 또는 '지나친 국가주의' 때문에 발생된 것이라는 데에 대부분의 언론이 동의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보수언론이나 진보언론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필자는 이런 변화를 매우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대립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한국의 보수와 진보 진영 간에도 일말의 합의가 도출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문제의 본질을 정확이 읽어야 잘못의 반복을 예방할 수 있는 법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재범군 사태는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과도한 애국주의 또는 국가주의 즉'우리 안의 파시즘'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본다.

 

혹자는 재범군 소속사인 JYP의 기회주의 또는 대중추수주의를 지적하거나 인터넷 상의 풍문을 공론의 장으로 노출시킨 언론의 무책임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이 사태를 연예 소비자들의 상품거부운동으로 진단하는 견해도 적지 않다.

 

물론 소속사 대표 박진영의 '재범 발언'은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도 지탄 받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연예소비자운동'이라는 진단도 일면 타당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일을 만들어낸 본질에는 우리 안에 파시즘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철회할 용의가 전혀 없다.

 

필자가 말하는 파시즘이란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저개발된 권력으로서의 군부 파시즘'이 아니다. 사학자 임지현 교수는 이런 파시즘은, "다시 한국에 재발할 가능성이 없으며 재발한다고 하더라도 가시적이므로 타격 지점도 명백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굴종하게 만들어 일상생활에까지 미세하게 지배권을 행사하는 보이지 않는 규율, 즉 숨겨진 권력 장치로서의 파시즘'에 있다.(임지현 저 '우리 안의 파시즘' 인용·참조)

 

임지현 교수는 이를 가리켜 '일상적 파시즘'이라고 명명하는데, 이 일상적 파시즘이라는 것은 체제의 배후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으로서 본능과 충돌들 속에 천연덕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일상적 파시즘은 '잡식성'이다. 황우석 같은 과학기술 영역과 <디워> 같은 영화 분야 그리고 월드컵이나 세계야구는 물론 심지어는 피겨 스케이팅 같은 데에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다.

 

전여옥과 변희재, 한국 사회의 저개발된 권력들

 

"사이버 공간이 놀이나 축제의 공간이 아닌, 잔인한 놀이의 공간이 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피해가) 현실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많이 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 반복되어야 하나? 반복되지 않게 치유되어야 한다.(사이버 공간은) 괜찮다고 하기에는 최진실의 죽음이나 이번 박재범 사태처럼 사회적 피해 사건이 너무 많았다. 유명인뿐만 아니라 개개인도 사이버 공간에서 엄청난 피해를 받았다."(전여옥 SBS 시사토론 발언 발췌)

 

이런 발언은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사이버모욕죄의 도입을 염두에 두고 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타인의 불행을 자기 목적을 이루는 데에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발언이다. 또한 상대가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자기 의견을 개진하면 되는 것이다. 의견이 다른 상대에게 물리적인 위해(규제)를 가해도 된다는 식의 발상은 일상적 파시즘의 소산이라고 본다.

 

다음에는 변희재의 글을 읽어 보자

 

"진보좌파 언론 측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애국주의를 비판하고 나섰다. 오마이뉴스는 '우리 안의 파시즘이 22세 청년을 쫓아냈다'라는 문화평론가 김갑수씨의 글을 통해 네티즌들을 광기의 집단으로 몰았다. 그러나 이들의 논리 역시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오마이뉴스와 미디어스 등 진보좌파 언론에서는 광우병 당시의 네티즌들의 광기에 대해 집단지성이라며 예찬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네티즌들은 분노를 표출하기 전에 신좌파 언론과 지식인들에게 "우리 지금 분노해도 되나요?"라 물어보고 분노를 표출해야할 것. 신좌파 집단의 입맛에 맞으면 집단지성이고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집단광기인 셈이다.

 

이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을 한국 대중은 사실상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만의 특수한 민족주의니 국가주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인으로서 영국에 사는 배우 기네스 펠트로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국 날씨는 우울하고, 영국 거리는 더럽고 영국 서비스 인들은 무례하다"고 발언했다가, 영국 언론인들로부터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집중 공격당했던 것이 좋은 사례이다. 이 사건에 대해 영국에서 극우 파시즘이 대두되었다는 미친 소리를 해대는 영국 언론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 변희재, <빅뉴스>, '네티즌의 집단지성 혹은 집단광기, 입맛 따라 달라져' 발췌

 

먼저 변희재는 촛불집회의 누리꾼들과 영화 '디워'의 누리꾼들과 이번 '재범 비판' 누리꾼들을 단순히 '네티즌'이라는 이유 하나로 동일한 집단으로 간주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제 한국의 인터넷은 좌파와 우파, 부자와 가난한 자, 전라도와 경상도 가릴 것 없이 다 보급되어 있다.  

 

이토록 놀랍도록 단순한 분류법은 어떻게 해야 나오는 것인지? 필자는 변희재의 발언에서 파시즘의 맹아를 본다. 왜냐하면 파시즘이란 지극히 단순하고 획일적인 사고에서 비롯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과 사람이 다 제 나름의 귀중한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파시스트가 될 수가 없다.

 

다음으로 변희재는 영국과 기네스 펠트로를 거론하고 있다. 일단 이런 발상에는 '영국과 우리가 다르니 우리가 잘못'이라는 식의 서구사대주의가 잠재되어 있다. 또한 기네스 펠트로가 재범처럼 소속사에서 탈퇴하고 곧장 미국으로 쫓겨 갔는지를 묻고 싶다. 타인을 비판하거나 공격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에게 '그룹탈퇴'나 '출국' 심지어는 '자살'을 요구하는 수준의 난폭한 구체성을 띨 때 그것이 곧 파시즘인 것이다.

 

변희재는 필자의 글이 마치 <오마이뉴스>의 기획이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글은 필자가 자발적으로 쓴 것을 <오마이뉴스>에서 게재했을 따름이다. 또한 그는 필자의 파시즘 발언을 '미친 소리'라고 은밀히 재정의해 놓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필자를 동명이인인 '문화평론가'로 오인하고 있다. 상대에 대한 무지와 편견, 그리고 모든 것을 음모로 간주하는 세계관이야말로 파시즘의 전형적인 징후에 속한다.

 

재범을 한국 무대에서 춤추게 하자

 

이번 사태에 가장 성숙한 모습을 보인 것은 재범 팬들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들은 각종 근거를 발굴 제시하며 재범에 대한 오해가 풀리도록 노력했다. 서울 청담동 소속사 앞에서 벌인 침묵시위는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졌다. 연합팬클럽과 공동으로 발주한 신문광고도 상당한 정도의 격조를 갖춘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반대자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재범도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재기할 기회를 주자는 식으로 온정에 호소하는 현명한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다.

 

이제 대다수의 국민이 재범의 국내 활동 재개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로 하여금 떠나게 만든 것은 분명히 우리들의 착오였음을 선선히 시인할 때가 되었다. 공자도 잘못이 있을 경우 이것을 시인하지 않는 것이 진짜 잘못이라고 말했다.(過而不改 是謂過矣) 그러므로 잘못이 있을 경우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라고 가르친다.(過則勿憚改)

 

다수 또는 대중의 이름으로 우리 일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파시즘을 걷어내지 않고서는 진정한 변혁은 불가능하다. 파시즘은 인간이 지닌 능력 중 가장 귀중한 능력인 '연민'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수직적인 '지배의 아비투스'를 수평적인 '우애의 아비투스'로 대체하는 것, 그것이 곧 혁명인 것이다.(임지현) 윌리엄 모리스는, 혁명은 전제정과 민주주의간의 싸움이 아니라 '지배'와 '우애' 사이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재범에게 우리의 우애를 보여주자.           

덧붙이는 글 | 임지현 외 저 '우리 안의 파시즘' 삼인출판사, 일독을 권합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