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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상황이다. 지난해 촛불시위 이후 정부의 일방통행을 비판하고 대안세력의 출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별다른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정권에 결정적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았던 용산참사는 아직도 진상조차 규명되지 않고 있고, 노동자들이 가장 강력한 저항을 벌였던 쌍용차사태는 씁쓸한 결과만을 남겨 놓았다. 게다가 풀뿌리 저항의 사례로 기록될 것 같았던 제주지사 주민소환운동도 11%의 투표율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를 계기로 원외투쟁을 선언했던 민주당은 다시 국회로 돌아왔지만, 피켓 퇴장 퍼포먼스로 만족하기에는 너무나도 허무하다. 이제는 다시 헌법재판소 판관들의 입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주중에는 원내, 주말에는 원외 투쟁이라는 전술적 방침이나 4대강 사업에 대한 국정조사와 같이 나름대로 간고분투하고 있긴 하지만 이제까지의 모습을 반추해 보건대, 큰 희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반면, '절대 악'으로 까지 규정되는 듯 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론조사 기관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30%대에서 안착화 하고 있고, 조사기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40%까지 올라갔다는 결과도 있다.  물론 고작 30%가 넘는 지지율로 안정을 논한다는 것이 낯 뜨거운 일이기는 하지만, 한 때 역대 최저 지지율 기록을 갱신하기 바빴던 정부가 자신의 정책을 철저히 관철시키면서도 이 정도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 놀랄 만한 변화다.

 

노무현 정부보다는 확실히 실용적인 이명박 정부

 

정부에 대한 지지율 상승의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전략이 작동하고 있다.

  

우선, 이명박 정부는 지난 해 촛불시위를 계기로 '전체 국민의 대표'로서의 지위를 벗어 던지고 '지지 세력만의 대표'로서의 정체성만을 강화 했다. 어중간한 타협이나 양보로는 얻을 것이 없다는 판단 하에 노골적인 보수우익 껴안기를 시도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를 고정적으로 지지하는 20~30%의 여론층은 오히려 이명박 정부의 강경드라이브로 인해 형성된 기반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전략은 이렇게 형성된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중간층을 끌어안는 친서민 정책의 효과다. 채찍 뒤에 당근을 제시하는 형국이다. 등록금 후불제의 전격적 수용과 같은 그의 '친서민행보'는 자신의 적대세력이 아니면서도 자신을 지지하지는 않는, 소위 '중간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런 전략은 정운찬 총리의 지명의도에서 드러나듯, 선거가 다가올수록 더욱 강화될 것이다.

 

자신의 지지층에게 '확실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간층에 대한 이미지 정치를 강화하는 전략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치전략과 대조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4대 개혁입법의 실패를 기점으로 2005년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적대세력에게도, 중간층에게도, 지지층에게도 멀어졌다. 역점을 두고 추진한 한미FTA마저 적대세력에게는 선물이 되었을지언정 지지세력은 분열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적대세력이 노무현 정부에게 우호적으로 변한 것도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것'을 내어 주면서 정치학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타협과 양보'를 시도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타협과 양보를 통해 자신의 지지기반을 허물어뜨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명박 정부의 지지층이 충성도가 높은 이유다. 도덕적 측면을 떠나 실용정치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노련했다.

 

민주당, 반MB전술로 선거승리는 불가능?

 

곧 무너질 것 같은 정부가 안정화 되고 있는 현상에 대한 분석에는 그토록 많은 대중이 '반MB' 기치아래 결집되었음에도 뚜렷한 대안세력으로 등장하지 못한 진보개혁진영의 '대안부재'에 대한 비판이 존재하며, 그 중심에는 민주당이 있다.  진보개혁세력에게 자주 쓴소리를 던지고 있는 최장집 교수는 지난 1일 강연에서 "민주당이 앞 지도자를 승계하는 데 경쟁하고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향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겠느냐"며 "민주정치는 책임정치가 핵심이기 때문에 (지난 10년간의) 민주정부가 뭘 잘 했고, 뭘 잘못했는지 객관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선거승리 가능성만을 놓고 본다면 민주당으로서는 MB정부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과 두 전직 대통령의 계승만 이야기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한국 정치의 현실은 최장집 교수가 말한 것처럼 '대안'을 중심으로 정치세력 간 경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적대성에 근거한 퇴행적 경쟁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이후 열린우리당의 지지율 추락과 한나라당의 지지율 상승은 한나라당이 국민들이 공감할 만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기억하다시피 한나라당의 전략은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을 총동원해 정권을 비난하는 '반노무현 프레임'을 중심에 둔 것이었고, 현재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많은 정책들은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았거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맹목적 공격'을 통해 '심판세력'으로 등장함으로써 집권할 수 있었다.

 

사정은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1월 30일 13.2%에 불과하던 민주당의 지지율은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직후 20%를 돌파한 후 8월 25일 현재 23.2%로 꾸준히 20%대를 유지하고 있다. 민주당이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음에도 지지율 상승과 안정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부에 대한 공격과 전직대통령 계승 외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다.

 

민주당 스스로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을까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모든 것을 반대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상당부분 중첩된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쌍용차 사태에 대해 형식적인 타협 요구나 경찰폭력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넘어 노사관계에 대한 근본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할 수 없었던 것이나 검찰총장의 도덕성은 치열하게 공격하지만 공정거래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는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던 것은 스스로 '드러내지 않았던 정체성'의 일면을 드러내 준다.  

 

민주당의 정체성은 남북문제나 민주주의적 과제에 대해서는 진보성을 보이지만,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는 이명박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비정규직 문제나 재개발문제, 시장정책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에 비해 약자에 대한 온정의 시선만 존재할 뿐, 패러다임 자체가 다르다고 할 수 없다.

 

많은 진보학자들이 단순히 두 전직 대통령을 계승한다고 하지 말고 잘잘못을 가려 무엇을 극복해야 할지 제시하라고 주문하거나 좀 더 좌로 이동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두 민주정부의 사회경제적 측면의 패러다임을 바꾸라는 요구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 상황을 고려하면, 민주당 스스로 그런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민주당은 어차피 더 왼쪽에 있는 이들은 선거가 다가오면 결국 자신을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중간층을 설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전략은 1997년, 2002년,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선거전략을 관통하는 핵심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전략은 왼쪽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왼쪽으로 보이기를 거부하는 어정쩡한 '중도전략'이었고, '이념보다는 민생정책'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였다. 이 말은 곧 민주당이 현재의 이념적 포지션을 바꿀 의지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세력교체가 가능하더라도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변화라고는, 2004년의 민주주의 정도가 아닌가? 민주적 제도의 개선이 뒤따르고 남북관계는 좋아지겠지만 여전히 사회적 약자가 신자유주의 정부에 저항하는 그 민주주의 말이다. 물론 그 분위기를 은근슬쩍 등에 업은 신자유주의적 보수정당도 재기할 것이다.

 

바로 이점이 한국정치의 비극이다. 좋은 대안에 대한 선호를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싫은 현실을 반대하기 위해 차선책을 선택해야 하는 끝없는 상황. 이런 이유로 저항의 열정은 저항의 성공 뒤에 오는 허무함 앞에 냉소로 변질되는 악순환을 계속해 왔다.

 

시민사회와 함께 '이명박 이후' 프로그램을 내놔라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스스로 진보개혁진영이 원하는 변화를 이룰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는 민주당 스스로의 변화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하나의 가능한 방법은, 민주당의 정체성, 즉 그들이 집권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이끌어 갈지를 드러내놓고 대중에게 검증받도록 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얼마나 잘 이명박 정부에게 저항하느냐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와 다른 민주체계를 보여줄 수 있는 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추상적 담론 수준에서 존재하는 반MB연대를 구체적이고 조직적인 틀거리로 만들 것을 제안한다. 다시 말해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정당, 시민사회단체, 미조직 시민들이 모두 함께 모여, '이명박 이후'에 대한 집권 후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반MB연대 외부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 통치행태에 저항하는 운동을 계속 펼치더라도, 내부적으로는 서로의 입장 차이와 실체에 대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공동행동'만을 의도하는 현재의 반MB연대로는 이 과정을 보장하기 어렵다.

 

대안창출을 위한 정기적인 대중토론회를 기획해볼 수도 있다. 지난해 촛불시위에서 비록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대중들이 함께 하는 토론회가 진행되었듯이, 철저히 '대안창출'에 근거한 논쟁구도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정당 끼리만의 논의는 '공정한 심판자'나 '중재자'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서로 간의 입장차이만을 확인하는 논쟁적 수준에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보 개혁적 대중이 논쟁의 관람자이자 주체로 결합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이들이 심판자가 될 수 있다. 그 심판의 내용은 '지지 대상의 변경'이다.

 

저항과정에서는 세력의 규모, 즉 현재의 '힘'이 중시되지만, 대안의 구성 과정에서는 '좋은 정책 방향', 즉 주체로서의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쪽이 승리할 수 있다. 민주당이 자신의 숨겨진 정체성을 드러내면서도 대중의 지지를 유지할 수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이명박 정부와 사회경제정책과 무엇이 다른지 해답을 요구하는 대중을 설득할 수 없다면 지지율 추락을 감수하거나 자신의 정책방향 변화를 강제당할 것이다. 

 

이제 내부를 향한 촛불도 밝히자

 

물론 반MB담론을 공유하는 정치세력들이 스스로 이런 시도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 민주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거나 자신에게 비판적인 소수정당들과 논쟁할 동기가 없고, 진보정당은 민주당의 들러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로, 또는 과거 '비판적 지지'의 망령이 재림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두려움으로 인해 참여 자체가 주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나설 곳은 시민사회와 이른바 촛불 대중들이다. 민주당과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변경을 무기로 대안을 논쟁하는 공간에 참여할 것을 강제해야 한다. 이제까지 시민사회단체들은 마치 정당을 배제하는 것이 운동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인 양 사고해왔지만, 운동의 순수성이 정당의 포함과 배제에서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촛불 이후 대중의 민주의식과 주권의식을 신뢰한다면, 이들을 중심에 둔 대안 간의 경쟁을 강제해야 한다. 지난 해 촛불에서 징조가 보였듯, 이 공간에서 모든 대안들과 상상력, 창조력이 마음껏 분출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저항을 대안으로 전환시키는 공론장의 창출, 그리고 이 공론장에서 수행할 공동의 프로젝트야말로 개발이익과 개인적 이기심에 근거한 이명박 정부의 통치전략에 맞설 실질적인 힘이 될 수 있다.

 

새로운 민주체제에 대한 대안과 이 대안을 중심으로 한 지적, 도덕적 지도력은 반드시 집권 이후에만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지금이야 말로 새로운 대안과 리더십의 창출을 정당의 과제로만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그것을 강제하고 구현할 수 있는 '내부를 향한 촛불'이 필요한 때다.


태그:#반MB, #연대,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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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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