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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교사이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였던 소하고 서현수 선생님이 4일 위암으로 3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현수 선생님은 2000년 3월 교사생활을 시작해 10년 남짓 경기도 광명시 일대에서 참교육 실현을 위해 힘썼습니다. 동료교사였던 노용래 선생님의 추모글을 소개합니다. 고 서현수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편집자말>
▲ 고 서현수 선생님의 일기 신참교사 시절부터 고 서현수 선생님이 써왔던 일기글이 그의 죽음 후에 공개됐다.
ⓒ 전교조경기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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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저는 소중한 한 사람을 떠나보냈습니다. 아직 함께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데, 사람살이의 인정도 미처 다 나누지 못했는데 하루아침에 눈물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삶과 제자들에 대한 열정을 다 사르지 못하고 서른여섯 해 짧은 삶을 살다간 고 서현수 선생님. 제 교직 생활의 든든한 동지이자 벗이었던 그를 이렇게 빨리, 위암으로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미안하고 견디기 힘듭니다.

 

신참교사 시절, 저는 당신을 질투했고 부러워했습니다

 

서현수 선생님 생전 밝고 건강했던 고인의 모습

준비 없이 교단에 선 저는 원칙 없이 학생들을 대하다 보니 학급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겉으론 태연한 척 했지만 당황했고 갈수록 문제는 꼬여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신규교사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침착했지요. 제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으면 웃으며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사람을 저는 질투했고 때로는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체벌을 반대했습니다. 인격의 주체로서 학생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런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끝내 그렇게 하면서 아이들을 잡아주었습니다. 시간이 필요했지만 인내하고 결과를 확신하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때론 친구 같고 가족 같은 선생님의 모습을 아이들은 좋아했습니다. 그런 당신이 부러웠습니다.   

 

한번은 저에게 어려운 부탁이라며 갑자기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주유소에 가자고 했습니다. 웬일인가 싶은 마음을 안고 도착한 주유소에서 그가 오랜 시간 집을 나와 학교에 나오지 않던 녀석을 붙잡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다급한 저였다면 다짜고짜 녀석을 끌고 학교로 왔을 겁니다. 그런데 당신은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그냥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녀석에게도 판단하고 결정할 시간이 있어야 할 것 같다며 고맙다고 했지요. 결국 학교로 돌아온 녀석이 졸업하는 모습까지 지켜보며 흐뭇해하던 당신의 표정이 기억납니다.

 

늘 사색하고 책을 가까이한 당신은 그렇지 못한 저에게 좋은 자극제였습니다. 글을 쓰고 편집하고 소식지를 만들어 사람 사는 모습을 공유하고 나누는 것을 좋아했었지요. 소식지를 만들기 위해 기획을 하고 글을 부탁하는 모습도, 만들어진 분회소식지에 뿌듯해하며 교무실을 돌아다녔던 기억도, 모두 사람을 좋아하고 혼자가 아닌 더불어 하고자 했던 사람으로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참교육 고민하며 함께 기울였던 술잔이 당신에게 독이었다니

 

서현수 선생님 학급 아이들과 단합대회 중 삽겹살을 굽고 있는 모습

당신은 부족했던 저에게 늘 큰 힘이 되었습니다.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전교조 광명지회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당신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이 함께 하며 어려운 조건에서 정말 열심히 했었지요. 일주일에 한 번씩 저녁시간을 함께하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회의했습니다.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유머를 통해 즐거움을 선사한 것도 당신의 몫이었습니다. 유명인들의 성대모사를 권혁이 선생님과 주고받기도 하면서 힘들었지만 즐거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주저 없이 함께 했던 시간들이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한 동료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함께 하고자 했던 당신, 교육 관료들의 부정에는 추상 같이 질타하고,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지역의 고교평준화를 위해 노력했던 당신, 일제고사를 반대하며 학교 앞 1인 시위 등 궂은일을 마다않던 당신이 향한 곳은 언제나 학교와 아이들이었습니다. 10년을 그렇게 살며 함께 기울였던 술잔이 당신에게 독이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죄스러움이 사무쳐 못 견디겠습니다.

 

생태와 환경에 관심을 두고 처음으로 자연과 역사기행을 사업으로 구상하고 진행한 사람도 당신이었습니다. 광명지역의 알려져 있지 않은 자연의 곳곳을 선생님들과 다니며 이름 모를 나무와 풀을 통해 겸손함과 소중함을 사람들에게 알리려 노력했었지요. 수없이 많았던 행사장에 누구보다 일찍 나와 행사를 준비하면서 사람들을 다독거렸고 언제나 환한 미소로 사람을 대했던 당신에게서 어두운 암세포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살아서 못했던 말로 당신을 보냅니다

 

서현수 선생님 묘지 "선생님 사랑합니다. 가르침 잊지 않겠습니다." 고 서현수 선생님의 묘지에 놓인 제자들의 마음.

학교를 옮겼어도 당신의 성실함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교사들의 토론을 주도하고 이를 학교운영에 반영코자 노력했습니다. 남들이 마다하는 학교운영위원도 늘 당신의 몫이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렇게 안 해도, 그토록 마음 쓰지 않아도 누군가 대신했을 것을.

 

그렇게 마음을 쓰고 힘들어했다는 걸 영결식장에서 공개된 일기장을 보고야 알았습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왜 이야기 하지 않았나요. 처음으로 당신을 원망해 봅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소박했던 당신, 늘 부족함을 자신에게서 찾았던 당신. 조금 더 몸을 추스른 후 수술 받으면 괜찮다고 거짓말을 하고 죽기 전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있다가 '선생님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긴 당신. 이제 당신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프고 힘듭니다. 한없이 괴롭고 외롭습니다.

 

더 이상 눈물을 흘려봐야 소용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살아있는 사람의 몫임을 깨닫고 당신께서 몸소 실천하며 향했던 곳으로 의연하게 가겠습니다. 더 많은 이들이 당신의 뜻과 삶을 돌아보며 살아갈 수 있도록 작은 힘을 보태겠습니다.

 

살아서 못했던 말로 당신을 보냅니다.

 

서현수 선생님,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서현수 선생님 장례식 지난 5일 치러진 고 서현수 선생님 추모식. 많은 제자들과 동료 교사들이 고인의 생전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덧붙이는 글 | 서현수 선생님 추모카페 cafe.daum.net/hyunsus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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