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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차원에서는 최초의 여왕, 동아시아 차원(여기서는 한·중·일)에서는 두 번째의 여왕에 도전하는 덕만(이요원 분)의 정치행보가 가속화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라고 한 것은, 선덕여왕(재위 632~647년)이 등극하기 전에 일본의 스이코(推古, 재위 593~628년)가 최초의 여성 일왕(천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측천무후는 690년에 신생국 주나라의 황제가 되고도 후대 역사학자들의 해석에 의해 '황제가 아니었던 인물'로 격하되었다. 기원 7세기는 측천무후까지 포함하여 한·중·일 3국에서 도합 7명의 여왕이 나와 '여왕의 세기'라고 할 만하다. 기원 7세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록 픽션이 상당히 가미되어 있기는 하지만, 덕만은 미실(고현정 분)을 상대로 한 정치투쟁을 통해 신라 최초 혹은 동아시아 두 번째 여왕의 자리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고 있다.  

'천문지식' 대중화를 놓고 벌이는 논쟁

드라마 <선덕여왕>.
 드라마 <선덕여왕>.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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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과 9월 1일에 방영된 <선덕여왕> 제29부 및 제30부에서 덕만은 이른바 '천문지식의 대중화' 문제를 놓고 미실과 한바탕의 정치논쟁을 벌였다. 일식 등에 관한 천문지식의 독점을 무기로 그동안 정치권력을 유지해온 미실 시대를 청산하기 위해 드라마 속의 덕만이 "천문지식을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천명함에 따라, 두 여인 사이에서 불꽃 튀는 정치논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 논쟁에서 덕만은 "천문지식의 대중화는 권력의 독점을 막고 일반 백성의 복리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 데에 비해, 미실은 "나한테서 그걸 빼앗았으면 네가 가지면 될 일이지, 왜 그것을 백성들에게 주려 하느냐?"며 "그것은 동업자 간의 상도덕을 깨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실제의 역사에서는 덕만과 미실을 두 축으로 하는 정치구도가 형성된 적이 없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논쟁이 벌어졌을 리도 사실상 만무하다. 하지만, 덕만과 미실의 정치논쟁은 천문지식의 대중화와 정치권력의 관계에 관한 화두를 시청자들에게 던졌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비록 허구적 설정이기는 하지만 고대 동아시아 정치권력에 대한 일반 시청자들의 인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덕만과 미실이 논쟁한 천문지식의 대중화와 정치권력의 관계를 한번쯤 검증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 속의 논리대로 정치권력이 천문지식의 독점을 포기하고 그걸 과감히 '대중화'하는 것이 과연 백성들을 위한 일인가 하는 점을 말이다.

물론 정치권력은 자신의 행위를 모두 다 '백성을 위한 일'이라고 포장한다. 하지만, 정치권력의 행위가 본질적으로 그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점은, 출생일로부터 만 18년 정도만 정치권력의 지배 하에서 살아보면 누구나 다 자연스레 알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다못해, 국가의 보건정책 혹은 복지정책도, 엄밀히 말하면, 납세자들의 건강상태를 최적으로 유지하여 조세수입의 안정성을 기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드라마 속의 덕만이 단행한 천문지식의 대중화 역시 결코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것은 백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은 정치권력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인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월령' 공개에 숨은 뜻

정치권력이 단행하는 천문지식의 대중화가 결국에는 정치권력 자신을 위한 것임을 보여줄 만한 적절한 사례로서, 우리는 고대 중국왕조의 월령(月令) 공개를 들 수 있다. 고대 중국의 정치권력이 동아시아의 주요 고전 중 하나인 <예기>에 월령 편을 넣음으로써 천문지식을 대중과 공유한 이유를 살펴보면, 천문지식의 대중화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선덕여왕>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중국의 사례를 드는 것은, 잘 알다시피 신라에 관한 역사기록이 몇 권 되지 않아서 그런 기록만으로는 이 문제에 관한 신라 정치권력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한나라 때(BC 202~AD 8년)에 편찬된 <예기>의 앞부분에 보면 '월령'이란 항목이 나온다. 월령 편은 1년 12개월의 기후는 어떠하고 각각의 달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등을 적어놓은 기록이다. 어느 달에는 태양과 별들이 어느 위치에 있고, 그 달에 황제는 무슨 일을 하고 백성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등등을 적어놓은 것이다.

양력 9월경에 해당하는 음력 7월 즉 맹추지월(孟秋之月)에 관한 월령의 기록에서는, 맹추지월에는 태양이 어느 위치에 있고 어느 별은 어느 위치에 있다는 식으로 꽤 복잡한 천문지식을 나열한 뒤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하얀 이슬이 내리며 쓰르라미(저녁매미)가 운다"는 식으로 대체적인 기후를 소개했다.

그리고 몇 문장 넘어가면 "입추에 천자(황제)는 재계하고 삼공·구경·제후·대부들을 직접 거느리고 서쪽 들판에 나가 가을을 맞는다"라고 했고, 또 몇 문장 더 넘어가면 "이 달에 농부는 새 곡식을 천자에게 바친다"라고 했다.

위와 같이 고대 중국 왕조가 <예기> 월령 편을 통해 백성들에게 천문지식을 공개한 것은 이를 통해 백성들의 일상생활을 장악하고 나아가 황제의 통치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황제 중심으로 시간을 운행함으로써 시간의 주재자 즉 우주의 주재자로서의 황제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더 나아가 그것은 백성들로부터 비교적 수월한 방법으로 물질적 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어느 달에는 씨를 뿌리고 어느 달에는 황제에게 새 곡식을 바쳐야 한다는 등등의 내용은, 황제의 조세 징수를 우주의 당연한 이치인 듯이 주입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고대 중국 왕조가 천문지식을 공개한 동기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보여주고도 남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보면 "천문지식의 대중화는 백성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낯 뜨거운 일인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예기> 월령의 내용을 이처럼 구체적으로 검토하지 않더라도, 월령에 관한 내용이 <예기>라는 책 속에 편입된 사실만 갖고도 우리는 월령의 공개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예기>라는 책의 근본취지는 예법을 통해 정치질서를 구현하는 데에 있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차별을 전제로 한 예법을 통해 차별적인 정치질서를 정당화하는 데에 <예기>의 본질적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예법의 핵심은 인간됨됨이나 공손함 같은 게 아니라 바로 '차별'의 정당화였다. 

그런 <예기> 속에 월령이 들어갔다는 것은, 고대 중국의 정치권력이 천문지식의 공개를 통해 황제와 신하와 백성의 차별을 정당화하고 나아가 차별적 정치질서 속의 황제의 위상을 구축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예기>는 중국뿐만 아니라 역대 한국 왕조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일례로, 조선시대의 외교부서가 '예'조라고 불린 것도 바로 <예기>의 영향 때문이었다.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의 차별이 정당하듯이 상국과 속국의 차별도 정당하다는 <예기>의 논리에 기초하여 국가 간의 관계도 차별적인 '예'로써 규정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조니 예부니 하는 표현들이 외교부서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예기>의 예법이 역대 한국 왕조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역대 한국 왕조들이 행한 천문지식의 공개 역시 사실은 <예기> 월령 편의 기본취지에 입각한 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 왕조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왕조들 역시 백성들과 함께 권력을 분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은 백성들의 일상을 정치권력의 시간표에 묶어두고 왕과 신하와 백성의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천문지식을 대중화했던 것이다. 

선덕여왕도 '노련한 정치꾼'이 아니었을까?   

공주의 신분을 회복한 덕만(이요원 분).
 공주의 신분을 회복한 덕만(이요원 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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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한국과 중국 등의 고대 동아시아 정치권력이 천문지식의 대중화를 통해 백성에 대한 장악력을 제고하려 했다는 점을 볼 때에, '천문지식의 대중화는 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드라마 속 덕만의 논리가 고대 동아시아의 정치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를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의 행위는 본질적으로 소비자가 아닌 기업 자신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생각하면, 미실처럼 천문지식을 독점하든 아니면 덕만처럼 그것을 백성과 공유하든 간에 천문지식과 관련된 고대 정치권력의 행위는 본질적으로 그 자신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다시 한 번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신라 차원에서는 최초의 여왕이요 동아시아 차원에서는 두 번째의 여왕이었던 선덕여왕의 정치행위 역시 지고지순하고 고결한 어떤 천상(天上)의 이상을 위한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정치권력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대(大)전제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선덕여왕 시대의 본질에 결코 다가설 수 없을 것이다.

신라 최초의 여왕이라고 하여 오로지 '순수' '순결' 코드로만 선덕여왕 시대를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신라 최초인 동시에 동아시아 두 번째의 여왕이 된 인물이라면 왠만한 남자 정치인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노련한 '정치꾼'이었을 것이라는 당연한 이치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태그:#선덕여왕, #덕만, #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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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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