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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죽은 이들의 영전에 이 붉은 나리꽃 바칩니다
▲ 나리꽃 모든 죽은 이들의 영전에 이 붉은 나리꽃 바칩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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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었네요 / 당신이 떠나가신 이 길 곳곳에 / 하이얀 눈물꽃이 활짝 피었네요 / 길이 흔들리고 있네요 /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뒤돌아보며 / 축 처진 어깨로 걸어오는데 / 참으로 사람이 모질다고 / 이 논둑길 곳곳에 / 하이얀 눈물꽃이 흔들리고 있네요" - 졸시, '눈물꽃' 몇 토막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죽음을 만나게 된다. 가족의 죽음에서부터 가까운 친척, 살가운 벗, 존경하는 스승님을 비롯해 몹시 미워하거나 원망했던 사람에 이르기까지. 죽음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다. 하지만 곰곰이 따지고 보면 삶이나 죽음이나 크게 다른 것은 아닌 듯싶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는 석가모니 연기론을 굳이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을 것이고, 죽음이 없다면 삶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죽음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뜻하지 않았던 천재지변이나 사고사, 자살이 있는가 하면 미리 가늠할 수 있는 자연사나 병사 등이 있다. 그중 가장 슬픈 죽음이 사고사나 자살일 것이다. 사실, 천재지변이나 자연사, 병사 등은 사람이 어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고사나 자살은 언제든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죽음을 '인재'라고 하며 몹시 원통해하고 아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삶과 죽음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몸과 마음처럼 늘 함께 하는 것이라 여기기 시작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만장 삶과 죽음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몸과 마음처럼 늘 함께 하는 것이라 여기기 시작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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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회지에 돈 벌러 나갔다가 주검 되어 돌아온 마을 형

사람은 천재든 인재든 죽음과 맞닥뜨리게 되면 자신과 주변을 다시 한번 차분하게 되돌아보게 된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왜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죽음이 없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지상낙원은 정말 없는 것일까? 하고.

사성제와 팔정도, 연기론 등으로 스스로 생로병사에서 초월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생로병사에서 자유롭게 만든 싯다르타 석가모니도 처음에는 그랬다. 석가모니가 생로병사에서 벗어나는 길(道)을 찾기 위해 온갖 고통을 겪으며 수련한 것도 어느 날 문득 성문 밖에 나가 생로병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모습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사성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것에 대한 집착(集)이다. 집착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苦)이 따르는 것이고, 이 집착을 사라지게(滅) 이르는 그 길이 곧 참된 도(道)라는 것이다. 이렇게 짤막하게 정리하고 나면 참된 도를 닦는 일은 참 쉬운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 어떤 것에 대한 집착을 끊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어릴 때부터 수많은 죽음을 보아 왔다. 까마득하게 어릴 때 고향 창원에서 살 때에는 새치골 가는 길목에 살았던 형이 돈 벌러 도회지에 나갔다가 안전사고로 주검이 되어 돌아온 것을 벌벌 떨면서 지켜보았다. 이어 꼬치친구의 자살과 마을 어르신들의 병사 등 여러 가지 죽음을 쭈욱 지켜보았다. 

삶과 죽음이란 화두에 깊이 빠지게 만든 어머니 죽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만난 것은 중학교 2학년 봄 방학 때였다. 그때 집에 함께 살았던 외할아버지가 이른 새벽에 그만 돌아가신 것이었다. 어머니는 꺼이꺼이 울었고, 인척들도 눈물바람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랐다. 그저 죽음이란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만 여겼다. 한 가지 확실하게 알았던 것은 무덤이란 게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가였다.

나는 그 뒤부터 결혼을 할 때까지 가족의 죽음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결혼을 한 뒤 2년째 되던 해 오월, 내 정신적 물질적 지주였던 어머니께서 덜컥 돌아가시고 나자 나는 너무나 큰 충격과 슬픔에 빠져들었다. 그것도 첫 딸 백일 저녁이었다. 위암으로 5년 동안 투병하시다 57세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죽음은 1년을 넘게 나를 삶과 죽음이란 화두에 깊이 빠져들게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뒤 나는 '눈물꽃'이란 시가 담긴 추모시집 한 권을 어머니 무덤 앞에 바쳤다.

그렇게 어머니를 가슴에 묻은 뒤 7년이 지났을 때 아버지께서도 그만 치매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몇 해 지나지 않아 치매에 걸렸었다. 치매에 걸린 원인은 창원 신도시 건설로 마지막 남은 논밭마저 몽땅 다 들어간 데다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나자 술로 날밤을 샌 까닭이었다. 그렇게 아버지를 가슴에 묻고 나서도 또 1년을 넘게 삶과 죽음이란 화두에 깊숙이 빠져들어야 했다.

사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죽음을 만났다. 가족이 아닌 분 중 가슴을 몹시 아리게 했던 분은 고정희, 김남주 시인이었다. 그 뒤 가장 존경했던 이선관 시인이 간암으로 돌아가셨고, 이듬해에는 채규철 박사가, 몇 해 전에는 가족처럼 지내던 박영근, 박찬, 정규화 시인이 잇따라 이 세상을 떠났다.

전직 대통령을 자살로 토끼몰이한 2MB 정권이 원망스러웠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전직 대통령을 자살로 토끼몰이한 2MB 정권이 원망스러웠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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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가슴에 묻을 묘지마저 남아 있지 않다

나는 그들 모두를 가슴에 또 묻었다. 그동안 어찌나 많은 죽음을 가슴에 묻었는지 이제는 가슴에 더 묻을 묘지마저 남아 있지 않은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어느 정도 죽음에 무덤덤해지기 시작했다. 삶과 죽음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몸과 마음처럼 늘 함께 하는 것이라 여기기 시작했다.

근데, 지난 해 3월에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장모님마저 자궁경부암으로 덜컥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프고 쓰렸다.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5월에는 작가 박경리 선생마저 이 세상을 떴다. 나는 장모님과 박경리 선생도 더 이상 묘터가 더 남아 있을 것 같지도 않은 내 가슴에 또 묻었다.

올 5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마저 서거했다. 세상에, 실족도 아니고, 자살이라니. 누가 노 전 대통령을 자살로 몰고 갔단 말인가. 한동안 말문이 막히면서 정신이 멍했다. 거짓말 같았다. 믿을 수 없었다. 전직 대통령을 자살로 토끼몰이한 2MB 정권이 원망스러웠다. 그 하수인으로 일하는 검찰 수뇌부를 부엉이바위 아래로 밀어버리고 싶었다.

"저기 부엉이 바위 안고 먼저 가는 님아 / 님이 가시는 길에 서민꽃 하얗게 흔들리네 / 산이 노오란 평지나물꽃 쓰다듬으며 울고 / 들이 시커먼 못자리 껴안고 곡을 하네 / 강이 이마에 굵은 주름살 하나 쓰다듬으며 / 님 가시는 하늘로 흐르며 흐느끼네 / 돌것네 정말 돌아버리것네~ / 그대, 정말 바보 같은 님아"-졸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전에 바치는 시 '그대 앞서가는 아름다운 님아' 몇 토막

옆으로 누워 있는 세상, 바로 세우려 했던 노무현 대통령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난 며칠 동안 나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동료 문인들과 대한문 등지에 마련된 분향소에 다니며, 정신을 잃도록 술을 마구 퍼마셨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 7일장을 며칠 앞두고 추모시를 썼다. 나는 추모시를 쓰고 난 뒤 시작노트에 이렇게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너무나 기가 막혀 말문이 막합니다. 그것도 대통령이 태어난 고향 봉화마을 봉화산에 있는 부엉이바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니… 도저히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끝까지 거짓말이라 떠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사실이었습니다. 누군가 그랬던가요. 너무나 큰 슬픔을 당하면 순간 사람이 멍~해진다고요.

그렇다고 언제까지 멍~ 하게 지낼 수만은 없었습니다. 이 전무후무한 사건에 이 땅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 시인으로서 추모시라도 남기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추모시를 쓰는 내내, 몇 해 전 봉화산 부엉이바위로 올라가는 오솔길에서 보았던 옆으로 누워 있는 마애불이 자꾸만 어른거렸습니다.

그 산길 곳곳에 피어 있는 노오란 민들레와 평지나물꽃 그리고 하얀 찔레꽃이 떠올랐습니다. 그 마애불처럼 옆으로 누워 있는 세상, 그 세상을 똑바로 세우려 했던 노무현 대통령! 저는 영원한 우리들의 대통령을 시에, 가슴에 묻었습니다."

지난 8월 18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마저 서거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서울시청앞 분향소 지난 8월 18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마저 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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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관음상은 왜 호미를 들고 있을까

몇 해 앞,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현직에 계실 때 봉화산 정토원에 간 적이 있었다. 백일장 심사 겸 봉화산과 봉하마을 취재를 위해서였다. 백일장이 시작되는 동안 나는 정토원 앞에 서 있는 호미 든 관음상을 보았다. 법당 안에 잘 모셔져 있어야 할 관음상이 길가에 서서 호미를 들고 서 있다니. 절로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호미를 든 관음상을 지나 봉하마을로 가는 봉화산 중턱에 이르자 산비탈에 웬 마애불 하나가 옆으로 드러누워 있었다. 오랜 세월의 비바람에 마애불을 새긴 바위가 넘어진 것일까 싶어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바로 선 바위가 옆으로 넘어진 것은 아닌 듯했다. 누군가 일부러 옆으로 누워 있는 바위에 마애불을 새긴 것만 같았다. 

호미 든 관음상과 옆으로 누워 있는 마애불이라.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부엉이바위를 지나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노 전 대통령이 어릴 때 오르락내리락 했다는 그 산길 아래 오도카니 엎드려 있는 봉하마을은 자그마하고 소박한 시골이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왜 관음상이 호미를 들고 있으며, 왜 마애불이 옆으로 누워있는지를 잘 몰랐다.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서야 어렴풋이 알았다. 관음상이 호미를 들고 있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을 열기 위한 땀을 뜻하는 것이요, 마애불이 옆으로 누워 있는 것은 옆으로 누워 있는 이 세상을 바로 세우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火葬)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 몇 토막

고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가 끝난 날. 서울로 향하는 전세버스를 탄 뒤에도 나는 작은 비석이 있는 봉화산을 몇 번이나 뒤돌아보았다. 노 전 대통령을 내 가슴 마지막 남은 묘터에 또 묻었다. 내 비좁은 가슴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묻은 탓이었을까. 갑자기 가슴이 쓰려오기 시작했다.

막걸리를 안주도 없이 벌컥벌컥 마셔도 쓰린 가슴은 마치 대못을 치는 것처럼 더욱 쓰리고 아팠다. 그때 문득 전세버스 창가에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가 봉하마을 들머리 곳곳에 휘날리는 노오란 천이 되어 자꾸만 흔들거렸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니 이제, 더 이상 울지 마라는 듯이.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가라/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엉겅퀴꽃처럼 피어났다 사라진 두 전직 대통령께 이 꽃을 바칩니다
▲ 엉겅퀴꽃 엉겅퀴꽃처럼 피어났다 사라진 두 전직 대통령께 이 꽃을 바칩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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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삶보다 더 아프다

지난 8월 18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마저 서거했다. 너무나 엄청난 죽음을 짧은 시간 안에 많이 만나서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그날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쇠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멍하기만 했다. 그날 나는 밤을 새워 막걸리만 퍼마셨다. 그리고 휴대폰 메모란에 이런 글을 남겼다.

"큰형 가고 애비까지 갔다. 나 참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네. 이게 무슨 일이여. 세상이 무너지려고 그러나. 그래, 이렇게 갈 바에야 차라리 무너져 버려라. 2MB는 사람 잡아먹는 귀신인가."

이튿날 오후에는 <한국문학평화포럼> 조문단과 함께 장모님께서 생애 마지막 치료를 받았던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에 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화 꽃다발 속에서 환히 웃고만 계셨다. 조문을 마치고 소주를 한 잔 마신 뒤 다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서울분향소로 갔다. 그 분향소에도 김 전 대통령은 국화 꽃다발 속에서 환히 웃고만 계셨다. 
 
"그렇게 가세요 / 두 분은 만나셨나요 / 두 님께서 심어놓은 / 이 땅의 민주주의와 민족통일 사람 사는 세상 / 무럭무럭 잘 카울게요 / 너무 걱정 마세요 / 두 님께서 저승에서 지켜주시는 상생과 평화 / 저희들은 이승에서 꼬옥 지킬게요"

그날 밤, 나는 또 막걸리를 밤새 퍼마시다가 휴대폰 메모란에 윗글을 남겼다. 하지만 아무리 술을 마시며, 추모글을 남겨도 아프고 슬픈 가슴을 달랠 수가 없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는 내게 어머니, 아버지, 장모님 죽음 이상으로 너무나 큰 충격과 슬픔을 지금까지도 남기고 있다. 죽음은 삶보다 더 아프다….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의 초여름이다. /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 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 생활에 특별한 고통이 없는 것이 옛날 청장년 때의 빈궁시대에 비하면 행복하다. /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 어느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5월 2일 김대중 전 대통령 '마지막 일기'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리드피아>에 실린 글을 약간 손질한 글입니다



태그:#삶과 죽음, #노무현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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