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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디지털 카메라를 사러 갔다. 6년 전 산 카메라가 여전히 쓸 만하지만, 새로 사야 한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 온 터였다. 핑계는 이랬다. 구형이어서 대용량 메모리카드를 쓸 수 없는 데다, 배터리도 낡아 여남은 장 찍고 나면 바로 경고등이 들어왔다.

전자상가에서 들뜬 마음으로 카메라를 구경하고 있자니, 6년이라는 세월 동안 디지털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성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지만, 가격은 절반 이하였다. 당시 큰마음 먹고 구입했던 128메가 '대용량' 메모리스틱은 이제 존재하지도 않고, 같은 값에 16기가짜리를 살 수 있었다.

바뀐 것은 성능만이 아니었다. 카메라를 하나 집어 들고 촬영 설정장치를 살펴보니, 이전에는 구경도 못하던 것들이 들어가 있다. 가장 신기한 것은 나이프와 포크가 그려져 있는 메뉴였다. 어떤 사진을 찍으라는 것일까?

설명서를 읽어보니, 이 설정을 쓰면 '음식 색깔이 아주 맛있게 나온다'고 한다. 음식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푸드스타일리스트'를 배려해서는 아니었다. 이들은 휴대용 소형 카메라를 쓰지 않을 테니 말이다. 보통 사람들이 식당이나 집에서 음식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기 좋게 만든 장치였다.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은 자기표현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셀카'를 쉽게 찍도록 만든 카메라는 이런 조류를 잘 반영하고 있다. 왼쪽 위의 제품은 삼성의 '듀얼뷰' 카메라로, 카메라 앞과 뒤에 모두에 디스플레이 장치들 달고 있다. 오른쪽의 휴대용 소니 캠코더는 렌즈를 촬영자 방향으로 돌릴 수 있게 되어 있다. 밑의 이미지는 디지털 촬영 설정 메뉴로, 불꽃놀이나 음식 촬영처럼 일상위주의 기능을 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은 자기표현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셀카'를 쉽게 찍도록 만든 카메라는 이런 조류를 잘 반영하고 있다. 왼쪽 위의 제품은 삼성의 '듀얼뷰' 카메라로, 카메라 앞과 뒤에 모두에 디스플레이 장치들 달고 있다. 오른쪽의 휴대용 소니 캠코더는 렌즈를 촬영자 방향으로 돌릴 수 있게 되어 있다. 밑의 이미지는 디지털 촬영 설정 메뉴로, 불꽃놀이나 음식 촬영처럼 일상위주의 기능을 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Samsung/S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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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와 나이프', 웹의 사적 구획화

알다시피, 개인 웹페이지에 가면 주인이 얼마나 엄청난 산해진미를 주문하거나 요리했는지 자랑하는 사진들로 즐비하다. 현대인들에게 '자랑은 곧 삶'이 되었고, 이런 소비자들의 요구에 따라 상품이 진화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셀카'에 최적화된, '촬영자를 향한 렌즈'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는 블로그나 싸이월드, 페이스북 같은 '교류 서비스'가 큰 역할을 했다. 과거 인터넷 공간은 '공유지'에 가까웠다. 물론 초기 인터넷 시절에도 개인 홈페이지는 존재했으나, 이를 위해서는 만만찮은 비용과 기술이 필요했다.

지금은 무제한 저장 공간을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가 널렸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인터넷에 안정된 공간을 확보하려면 꽤 돈이 들었다. 그리고 이 터에 쓸 만한 개인의 집, 즉 '홈페이지'를 세우려면 높은 수준의 하이퍼텍스트(HTML)를 쓸 줄 알아야 했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편집해서 올리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블로그가 등장하면서 누구나 인터넷에 사적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블로거가 정치인이면 정치를 할 테고, 영화평론가면 영화 이야기를 할 것이다. 보통 사람이면 일상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일상의 사소한 정보를 교환하는 서비스의 등장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모든 시민은 연예인', 트위터

인터넷 언어는 '구술성'을 특징으로 한다. 즉 말하듯 글을 쓴다는 것이다. 제3자를 위한 게시물이 아닌 한, 인터넷의 언어는 늘 말을 받을 2인칭 상대가 전제되어 있다. 인터넷의 소통이 일상적 대화의 형식을 띠는 것은 당연하다.

일상의 대화에서는 문법이 무시되고 격식이 파괴되며, 단문이 사용된다. (이 사실은 실제 대화를 기록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무리 조리 있게 말하는 사람의 대화도 적어 놓고 보면 앞뒤가 맞지 않기 일쑤고, 아무리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도 만연체 문장으로 말하지 않는다.)

초기의 블로그는 이런 구술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대부분의 글이 짧았으며, 일상에 기초한 내용들이 많았다. 그러나 애초에 대중적 공간으로 만들어진 블로그에 '전문 블로거'들이 가세하면서 글쓰기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기대수준을 높여놓았다. 그들과 맞서 주목을 받으려면 제법 심오한 내용을 다뤄야 할 뿐 아니라, 구성과 문체, 그리고 맞춤법까지도 까다롭게 신경을 써야만 했다.

트위터는 글을 140자 이내로 제한함으로써 형식과 격식의 압박을 '강퇴'시켜 버렸다. '심오함'의 강박도 사라졌다. 한 문단이 채 안 되는 글에서 무슨 심오함을 기대한단 말인가. 그저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마음에 드는 글이 있으면 링크를 걸어 보내면 된다. 누구에게? 나 자신에게. 아니면 내 '추종자'에게. 대문에 걸린 '셀카'가 말해주듯, 이제 '모든 시민은 연예인'이다.

무엇을 뺄 것인가, 140자의 말줄이기 놀이

 올 가을에 출판될 예정인 '140자 글쓰기 가이드.' 휴대폰 문자메시지는 인터넷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트위터의 글자제한 역시 모바일의 영향으로 탄생했다. 140자 내의 글쓰기는 장문의 블로그에 비해 형식과 내용 모든 면에서 덜 억압적이다.
 올 가을에 출판될 예정인 '140자 글쓰기 가이드.' 휴대폰 문자메시지는 인터넷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트위터의 글자제한 역시 모바일의 영향으로 탄생했다. 140자 내의 글쓰기는 장문의 블로그에 비해 형식과 내용 모든 면에서 덜 억압적이다.
ⓒ D. Sago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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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지면이 허용되는 블로그는 글쓰기 훈련을 받은 작가에게도 부담스런 공간이다.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까. 문단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는가. 너무 딱딱하지는 않은가. 마무리는 만족스러운가. 그러나 트위터의 '140자 원칙'은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도 '차고 넘치는' 기쁨을 맛보게 한다.

블로그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을 보탤 것인가'라면, 트위터의 핵심은 '무엇을 뺄 것인가'다. 글자수를 줄여 전보를 보내듯, 트위터는 사용자에게 '창의적 선택'을 요구한다. 이로 인해 글쓰기는 재치를 발휘하는 유쾌한 게임이 된다.

이미 사람들은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받는 데 익숙해져 있다. 140자 제한은 휴대전화가 인터넷 글쓰기에 끼친 영향을 잘 보여준다. 미 대륙과 유럽에서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모바일 메시지는 보통 160자로 제한되어 있다. 이 세계표준은 1980년대 중반에 생겨난 것으로, 당시 빈약한 무선신호 전송기술로 보낼 수 있던 거의 최대치에 해당했다.

트위터의 글자제한도 여기서 나왔다. 애초에 모바일 인터넷을 염두에 두고 서비스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트위터 창립자 가운데 한 명인 잭 도시가 올 2월 18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40자 제한은 휴대폰으로 내용을 자르지 않고 한 번에 글을 올리고 게시물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나머지 20자는 사용자 이름을 표시하기 위해 떼어 두었다.

평론가의 블로그와 내 친구의 트위터

인터넷이 등장한 이후 평론가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일반인들이 게시판이나 블로그 등에 영화나 책 등에 대한 평을 활발히 올리기 시작하면서 평론가들이 설자리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평론가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과거에도 그들의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평론가들이 호평한 영화는 흥행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인터넷이 존재하기 전부터 있던 말이니 말이다. (대중들의 선호를 역으로 보여주는 것도 영향력이라면 영향력이겠지만.)

 사진은 트위터로 최근 개봉한 영화제목을 검색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20초 이내,' 그리고 '30초 전'에 입력된 회원들의 '트위팅' 입력 내용이 검색되어 있다. 상단에 '검색 이후 새로 입력된 관련정보가 있다'는 안내문이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진은 트위터로 최근 개봉한 영화제목을 검색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20초 이내,' 그리고 '30초 전'에 입력된 회원들의 '트위팅' 입력 내용이 검색되어 있다. 상단에 '검색 이후 새로 입력된 관련정보가 있다'는 안내문이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Twi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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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입소문'의 위력은 거의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입소문의 설득력은 '친근성'에서 온다. 무엇을 추천하는 사람이 나와 가까운 사람이거나 내가 좋아하는 이일수록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위력적인 이유는 이 친근한 정보의 그물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검색엔진으로 영화제목을 검색해 보라. '최고의 영화'에서 '최악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평들이 올라와 있을 것이다. 이 익명의 '아무개씨들'이 내린 평가들을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수많은 견해 중 누구 것을 받아들일까? 문제는 또 있다. 바로 정보의 '신선도'다.

검색엔진보다 빠른, '신선한' 정보

검색엔진을 통해 얻는 정보는 모두 과거에서 온다. 검색업체는 일정기간을 두고 '인덱싱(indexing)'이라는 작업을 한다. 검색어와 특정 사이트의 정보를 연결하는 것이다. 이 작업을 거쳐야만 비로소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놓치거나 배제되는 정보도 많다.

검색엔진의 인덱싱 주기는 대상 웹사이트의 인기도나 업데이트 주기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다르지만, 짧게는 수십 분에서 길게는 수십 일에 이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검색엔진에 잡힌다는 것은 인터넷에 정보가 올라온 후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트위터 첫 화면에 떠 있는 검색창. 광범위한 인터넷 정보를 인덱싱해야 하는 검색엔진에 비해 훨씬 최신의 내용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트위터 첫 화면에 떠 있는 검색창. 광범위한 인터넷 정보를 인덱싱해야 하는 검색엔진에 비해 훨씬 최신의 내용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 Twi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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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사이트에 가면 내가 아는 사람들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사이트에는 '실시간 검색' 기능이 있어서 1분 이내에 입력된 정보도 찾아낼 수도 있다. 물론 이 검색정보들도 완전한 의미에서 '실시간'은 아니지만, 검색엔진에 비하면 '신선도 높은' 정보임에 틀림없다.

앞의 기사에서 언급한대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수록된 정보들 가운데 상당 부분은 검색으로 잡히지 않는다. 검색 가능한 일부 정보조차 인덱싱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 서비스들이 기존의 검색영역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구글의 방어벽' 또는 '제2의 인터넷'을 구성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물론 검색업체들도 뒷짐 지고 구경만 하지는 않는다. 구글은 올 8월에 검색속도를 높이고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업데이트 내용을 최대한 신속히 반영하는 새로운 검색 서비스(코드명 '카페인')를 발표했다. 새로운 검색엔진 '빙'을 선보이고 최근 야후와 검색제휴 계획을 발표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2년 전 페이스북에 2억 4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고추장 마케팅'·'토종의 힘'의 허구성

8월 13일 <한겨레>에는 "트위터도 당한 '고추장 마케팅'"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최근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미니블로그 트위터"가 유독 "국내에선 뜻밖에도 순식간에 2등으로 역전을 당했다"는 것이다. 기사를 계속 읽어보자.

"(트위터가) 네이버를 운영하는 엔에이치엔이 내놓은 후발 주자 미니블로그 '미투데이'에 밀려버린 것이다. 미투데이가 선점 기업인 트위터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등록한 '친구'들이 전하는 소식을 휴대전화 문자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월 300건 무료로 주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아직 이런 서비스를 도입하지 않은 트위터로서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한 가지 분명히 하자면, 트위터는 한국에 '진출'한 적이 없다. 아직 돈을 버는 서비스도 아니고, 수익모델도 정해지지 않은 실험적 서비스니 당연할 것이다. 진출도 하지 않은 서비스가 '휴대전화 문자서비스 월 300건 무료' 같은 전략을 '도입'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한겨레>의 예를 들었지만, 사실 이런 기사는 한국의 어떤 신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늘 지면과 포털 사이트를 장식하는 '토종 웃고, 외산 울고... 한국 휴대폰의 힘' 같은 기사 말이다.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것은 아이폰, 구글, 트위터, 그리고 페이스북 등 세계인을 사로잡는 제품과 서비스는 한국과 전혀 다른 인터넷 환경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값싼 데이터 서비스나 온라인상의 표현의 자유 보장 같은 것 말이다. 저렴한 데이터 서비스를 쓸 수 없는 환경에서 아이폰은 버튼 없는 전화기에 지나지 않으며, (모바일에 기반한) 트위터의 '140자 제한'도 큰 매력을 갖기 힘들다. 의무적으로 본인확인을 거쳐야 하고, '문제'가 되는 글은 언제나 삭제되거나 '블라인드' 처리가 되는 것은 물론, 검찰이 이메일까지 뒤져 증거물로 압수하는 나라에서 자유롭게 발언하기는 어렵다.

일상의 사소한 발언 하나에도 '열사의 비장함'을 가져야 하는 환경은 어느 면으로도 정상으로 보기 어렵다. 세계적 서비스가 한국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특이환경' 탓이 크다. 꼭 '고추장 마케팅'이나 '토종의 힘'만은 아닌 것이다.

 한국의 한 포털 사이트의 회원가입란. 주민등록 번호와 실명을 입력해서 '본인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고, 주소와 휴대전화번호까지 의무적으로 입력해야 가입할 수 있다. 이와 달리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서비스는 이메일 주소만으로 가입할 수 있고, 원하면 몇 개의 계정도 만들 수 있다.
 한국의 한 포털 사이트의 회원가입란. 주민등록 번호와 실명을 입력해서 '본인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고, 주소와 휴대전화번호까지 의무적으로 입력해야 가입할 수 있다. 이와 달리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서비스는 이메일 주소만으로 가입할 수 있고, 원하면 몇 개의 계정도 만들 수 있다.
ⓒ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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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넷 서비스의 무덤

비표준 기술, 독과점과 담합에 의한 시장왜곡, 표현의 엄격한 규제 등 한국의 독특한 환경에 '최적화된' 서비스는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한국과 비슷한 환경을 가진 '형제국가' 한두 군데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한국적 환경'이 외국 서비스의 진입만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 진출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네이버의 일본시장 실패나 싸이월드의 미국과 유럽시장 실패에서도 보듯,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가 국제적 성공을 거둔 사례는 전무하다. 앞으로 전망은 더욱 어둡다. 게다가 한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던 하드웨어 분야는 급속도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예컨대 휴대폰 산업은 애플이나 구글처럼 소프트웨어 기반업체들의 지배권 밑으로 편입되고 있다. 이제 제대로 된 인터넷 기반 플랫폼을 갖추지 못한 하드웨어 기업은 소프트웨어 업체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 세계 최강의 휴대폰 업체인 노키아 주식이 올 들어 16퍼센트 하락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삼성과 엘지 등의 하드웨어 업체들이 긴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심비안'이라는 자체 플랫폼을 가진 노키아는 한국의 어떤 업체보다 나은 상황이다.) '토종'도 좋고, '삼성 만세'도 좋지만, 한국이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는지 객관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낡은 노키아, '찌그러진' 삼성. 휴대폰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이동하면서 기존에 비교우위를 누리던 기업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사진은 <비즈니스위크>의 기사들로, 애플이 가져온 혁명적 변화로 인해 기존의 휴대폰 업계들이 위협받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왼쪽 기사는 노키아 주식 하락을 보도하고 있고, 오른쪽 기사들은 삼성이 아이폰의 외형은 흉내내고 있으나, 열악한 소프트웨어로 인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오른쪽 상단의 '바람 빠진' 휴대폰과 하단의 '우울한' 휴대폰은 모두 삼성의 스마트폰을 지칭한다. 외신에는 일상적으로 등장하는 이런 분석 기사를 국내언론에서는 접하기 어렵다.
 낡은 노키아, '찌그러진' 삼성. 휴대폰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이동하면서 기존에 비교우위를 누리던 기업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사진은 <비즈니스위크>의 기사들로, 애플이 가져온 혁명적 변화로 인해 기존의 휴대폰 업계들이 위협받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왼쪽 기사는 노키아 주식 하락을 보도하고 있고, 오른쪽 기사들은 삼성이 아이폰의 외형은 흉내내고 있으나, 열악한 소프트웨어로 인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오른쪽 상단의 '바람 빠진' 휴대폰과 하단의 '우울한' 휴대폰은 모두 삼성의 스마트폰을 지칭한다. 외신에는 일상적으로 등장하는 이런 분석 기사를 국내언론에서는 접하기 어렵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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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질 기사 "한국은 자본주의가 아니다"에서는 한국이 어떻게 이렇게 특이한 기술적, 사회적 환경을 갖추게 되었는지 살피고자 한다. 아울러 이에 대한 대안도 함께 모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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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