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천명공주가 갑자기 '하차'하고 덕만의 신분이 판명된 뒤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에게 대항하는 팀의 인적 구성이 바뀌었다. 종래에는 천명-유신-덕만 3총사가 반(反)미실 캠프를 형성한 데에 비해, 최근에는 덕만-유신-알천-비담-월야 '5형제'가 반미실 캠프를 구성하고 있다.

 

과거의 캠프에서는 3총사가 공주·화랑·낭도라는 신분에서부터 각각 확연하게 구별된 데에 비해, 현재의 캠프에서는 5형제가 다들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지라 신분상으로는 각각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 잘못하다가는 자기 자신이 그냥 파묻혀 버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인지, 반미실 캠프의 멤버들은 저마다 색다른 캐릭터를 무기로 시청자들에게 자신을 적극 어필하고 있다.

 

저마다 제각각의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는 다섯 명의 반미실 전사들 가운데, 지난 24일과 25일에 방영된 제27부 및 제28부에서 가장 두각을 보인 등장인물은 비담이었다. 일식 문제를 놓고 미실 측을 교란하기 위해, 비담이 가면을 쓰고 스스로 미실캠프에까지 끌려갔던 것이다.

 

평소에는 아무 때나 실실 웃고 꽤 건방지다는 인상을 풍길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 앞에서 아무 주저 없이 손가락과 콧속의 마찰을 일으키기도 하던 비담이었다. 그러던 비담이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도사 흉내를 내며 미실 측을 헛갈리게 할 때는, 상당히 진지했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꽤 무게가 있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비담이었다. 만화 캐릭터 같다던 종래의 평가를 그저 무색하게 하는, 점잖은 정극(正劇) 캐릭터의 이미지였다. 물론 가면을 쓰고 있을 때만….

 

실제 역사에서 비담은 어떤 캐릭터였을까?

 

이처럼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독특한 캐릭터를 앞세워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비담. 그는 실제로는 선덕여왕 말기에 상대등으로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김유신에게 진압되어 그 자신은 물론 구족의 멸문지화를 초래한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실제 역사 속에서 비담은 어떤 인물로 묘사되었을까?

 

<삼국사기>에 3회, <화랑세기>에 1회 나오는 비담에 관한 기록들은 모두 다 선덕여왕 16년(647)의 반란사건에 관한 것들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담의 캐릭터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 내용들이 사료에 따로 기록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록이 거의 없다는 난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료상의 행간(行間)으로부터 비담의 캐릭터를 제한적으로나마 일정 정도는 추출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에 관한 기록들이 모두 다 동일한 반란사건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기록이 매우 상세한지라 그로부터 일정 정도는 비담의 캐릭터를 뽑아낼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반란이나 혁명을 시도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 개인의 캐릭터가 반란·혁명에 압축적으로 반영되기 쉽다. 1패 뒤에도 몇 번이고 더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스포츠 경기와 달리, '1패'가 곧바로 사실상 '죽음'을 의미하는 반란·혁명의 경우에는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의 역량이 그 안에 죄다 투입되기 마련이다. 사회 전체의 역량이 압축적으로 투입되는 전쟁을 통해 국가의 칼라가 드러나듯이, 그래서 일본이 벌이는 전쟁과 미국이 벌이는 전쟁이 우리에게 서로 다른 이미지로 다가오듯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담처럼 반란·혁명을 시도한 인물의 경우에는, 그 개인의 캐릭터가 그런 사건 속에 상당 정도로 녹아들어가기 마련이다. <삼국사기>의 비담 반란사건을 통해 그의 캐릭터를 일정 정도로 추출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이 비담의 모든 것이 그 사건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왕이 되고자 했던, 자기중심적인 인물

 

그럼, 서기 647년에 발생한 반란사건으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비담의 캐릭터는 어떠한 것일까? 사료상에 나타나는 비담의 캐릭터 중에서 주요한 것으로는 대략 세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비담은 자기중심적인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삼국사기> 권41 '김유신 열전'에 따르면 그는 선덕여왕을 폐하고 자신이 직접 왕이 되고자 했다.

 

그런데 국가해체의 조짐이 명확히 드러나는 시기에는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국가전복을 꿈꿀 수도 있겠지만, 신라의 국력이 한창 왕성해지던 때에 '되지도 않을' 국가전복을 꿈꾼 사람이라면 '체질적'으로 무언가를 뒤집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볼 수 있다.

 

혼란기에 나타나 세상을 뒤엎는 사람들은 객관적 분위기 혹은 남들에게 떠밀려 억지로 무대에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비담처럼 '멀쩡한' 안정기에 나타나서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세상을 뒤엎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개 타고날 때부터 자기중심적인 기질이 많은 사람이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전봉준처럼 객관적인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에 혁명을 일으킨 사람의 경우에는 반란의 원인을 내면보다는 객관적인 환경에서 찾게 되지만, 비담처럼 참 생뚱맞은 시기에 나타나서 국가전복을 시도한 사람의 경우에는 반란의 원인을 환경보다는 주관적인 내면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징 조작으로 전세를 바꾼 '기획력'의 대가

 

둘째, 비담은 기획력이 탁월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정부군과의 교전이 10일간 계속되었는데도 승부가 판가름 나지 않자, 비담이 전격적으로 뽑아든 카드는 상징조작이었다. 한밤중에 정부군 진영에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큰 별을 '여왕이 패전할 조짐'이라고 선전하면서 군사들의 사기충천을 유도한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던지 반란군 병사들의 기세가 "땅을 진동"시키고, 그로 인해 선덕여왕까지 무서워서 어쩔 줄 몰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열흘간 칼과 활로도 판가름 나지 않던 승부가 하룻밤 새에 이런 선전전 때문에 판가름 날 뻔했던 모양이다.

 

이는 비담이 상징을 적절히 조작했고 또 그런 조작의 결과를 병사들에게 효과적으로 각인시킬 만한 능력을 보유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담이 탁월한 기획력의 소유자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싸움은 결국 상징조작 대 상징조작의 대결로 결판이 났다. 비담이 상징조작을 통해 전세를 바꾸려고 하자, 이를 간파한 김유신 역시 동일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이 미실의 흉내를 냈듯이, 실제 역사에서는 김유신이 비담의 흉내를 냈던 것이다.

 

불붙은 연을 하늘로 날린 뒤에 "어젯밤에 떨어진 별이 도로 하늘로 올라갔다"고 소문을 퍼뜨린 김유신의 역(逆)선전이 주효하여 정부군의 사기가 '천정'을 치고 반란군의 사기가 '바닥'을 침에 따라, 군사대결은 결국 정부군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인 김유신 때문에 결국 실패하기는 했지만 비담의 상징조작이 한때 승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뻔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에, 우리는 비담이 상당한 기획력의 소유자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볼 수 있다.

 

상대등을 지내면서 역모 꾀한, 이중적 성격의 소유자

 

셋째, 비담은 이중적 성격의 소유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여 반드시 이중적 성격의 소유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비담의 경우에는 그렇게 평가해도 괜찮을 만한 근거들이 있다.

 

선덕여왕의 남편 겸 국정총괄자였던 용춘과 을제의 사례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선덕여왕과 정치적으로 가장 가까운 남자는 동시에 선덕여왕의 연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최측근을 애인으로 만드는 이런 방식은, 위작 논란이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에 따르면, 여성이라는 정치적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공주 시절부터 선덕여왕이 구사해온 방법이었다. 이런 사례들을 고려할 때에, 상대등을 지낸 비담 역시 선덕여왕과 이성적으로 가까웠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자신과 정치적으로 가까웠을 뿐만 아니라 이성적으로도 가까웠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상대로 그토록 대규모의 군사반란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은, 웬만큼 이중적인 성격을 소유하지 않고는 쉽게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한편, 상대등이라는 지위는 누구보다도 정권유지 혹은 체제유지와 깊은 이해관계를 갖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재야를 배경으로 왕조에 도전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이중적 성격 여부를 운운할 여지가 없겠지만, 왕조 수호의 책임을 지는 상대등의 직무를 보는 동안에 왕조 파괴를 위한 군사반란까지 은밀히 준비했다는 점은 비담이 이중적 성격의 소유자였을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부군과 10일 이상 대치하면서 한때 주도권을 잡은 사실은, 비담이 상당히 치밀하게 반란을 준비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대등 집무실에서 정부 사무를 보는 와중에도 반란 준비를 꼼꼼히 체크하는 비담의 모습으로부터 우리는 치밀함보다는 이중성을 더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의 비담도 드라마 속의 비담처럼 평소에 아무 때나 실실 웃고 꽤 건방지게 행동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개인적 역량이 총집중된 반란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비담의 캐릭터는 위와 같이 자기중심적이고 기획력이 높으며 이중적 성격의 소유자였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었다고 판단해볼 수 있다. 


태그:#선덕여왕, #비담, #김유신, #삼국사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