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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제주지사 주민소환 투표를 하루 앞두고 제주도가 달아오르고 있다. 무대응을 전략으로 삼았던 김태환 소환 대상자가 24일에는 투표 불참을 호소하는 기자회견까지 자청하고 나섰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선거 참여가 꼭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선거를 코 앞에 두고 민심이 미묘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강정마을 며느리 김순희씨의 연설

 

지난 21일 오후 2시 제주시민회관에서는 제주특별자치도선거방송토론위원회(위원장 이재권)가 주관한 '김태환지사 주민소환투표 옥내 합동연설회'가 열렸다. 하지만 토론회가 열리기 전날, 김태환 지사는 불참을 선언했다.

 

김 지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 기간이라는 이유를 들어 "국장을 이틀 앞둔 시점에서 연설회에 나가 상대방의 주장을 서로 비판하는 모습을 도민들에게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판단에서 불참한다"고 그 사유를 밝혔다.

 

21일 연설회가 소환운동본부 측 연설자만 참석하여 반쪽 행사로 치러지는 바람에 맥 빠진 연설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날 소환운동본부 측에서 내세운 연설자 김순희(여·50)씨의 연설이 방송을 타고 시민들에게 전달되면서 예상외로 파장을 일으켰다.

 

"저는 강정마을의 며느리입니다. … 그런데 지금 강정마을은 공동체가 완전히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평소에 형님, 동생하던 사람들도, 삼촌, 조카하던 분들도 모두 다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

 

여러분! 사람이 제일 서러울 때가 언제인지 아시죠? 아플 때입니다. 오죽하면 아프면 자식도 서방도 필요 없다는 말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김태환 도지사는 아픈 사람들 더욱 서럽게 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억지로 우기면서 영리병원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미국에서는 암에 걸리면 중산층도 파산된다고 합니다. 저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이미 파산해서 생명을 잃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4년 전에 유방암에 걸려서 수술을 한 암환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재 국민의료보험제도가 있어서 병원비의 10%만을 내고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강정마을 며느리 김순희씨의 연설이 21일 저녁과 22일 오전 TV를 통해 안방으로 전달되면서, 이를 지켜본 시민들에게 감동을 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편, 도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조문이 이어지는 동안 민주당원과 김대중 전 대통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주민소환투표 참여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오가기 시작했다. 제주시내를 중심으로 소환투표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21일에는 주목할 만한 여론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오마이뉴스>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KSOI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자동여론조사 시스템(ARS)에 의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투표참여 의사층 비율이 67.7%에 이르렀다.('투표에 불참한다'는 32.4%)  투표에 참여하겠다는 응답이 예상외로 높게 나온 것. 거리에서 만난 유권자들 사이에도 '도지사의 투표불참 유도가 떳떳하지 못하다'고 답하는 이들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김태환 지사, 투표 불참 호소

 

이런 흐름을 차단하기 위함이었을까? 주민소환투표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김태환 지사가 24일 오전에 오랜만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지사는 이날  9시30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주민소환투표는 실속도 없고 명분도 없으니 투표에 불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김 지사는 "투표불참도 법으로 규정한 유권자의 권리이고, 주민소환투표는 일반선거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만일 투표함이 개봉된다면 읍면동 각 지역별로 찬성-반대 비율이 나올 것이고, 개개인의 찬성과 반대 의사도 공공연하게 나돌 것이므로, 지역간 주민간 또 다른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10년 넘게 끌어온 해군기지 문제를 종식시키고, 특별자치도와 국제자유도시를 완결시키기 위해서라도 주민소환을 부결시켜야 하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투표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지사의 이런 호소에도 불구하고 24일 하루만도 김태환 지사를 비난하고 투표 참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선언이 이어졌다.

 

24일 오전 11시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제주지역 의료종사자(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들로 구성)들이 '주민소환을 지지하는 제주보건의료인 342인 선언'을 발표했다.

 

의료인들은 선언문에서 "김태환 지사는 많은 도민들이 반대하는 영리병원을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이름만 바꿔 다시 추진하고 있"고 "도민의 대의기관인 도의회를 도정의 거수기로 전락시켜가며 얻은 결과를 두고 '도민의 동의를 구했다'고 주장하는 오만함을 보여줬다"고 비난했다. 이어 "26일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권 행사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참정권 행사 홍보하지 않겠다는 선관위, 무책임하다"

 

그동안 침묵을 지켰던 민주당 당원들도 입장을 발표했다. 24일 오후 3시에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민주당 제주도당 소속 당원들이 평당원 210명의 뜻을 모아 주민소환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호소했다.

 

이들은 회견문에서 "작금의 소환관련 찬반투표에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강압과 위협만 없을 뿐 투표를 방해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면서 "기본적인 참정권행사가 눈치를 보는 분위기로 흘러 안타깝다"며 도지사의 투표불참 요구와 공직자들의 투표방해 행위를 꼬집었다.

 

평당원들은 또 "선관위 홍보담당 공무원이 TV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는 개인의 진퇴와 관련이 있어서 홍보에 적극 나설수 없다'고 밝혔는데, 이는 오만하고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 근거로 평당원들은 "2006년 행정계층구조 개편을 위해 주민투표운동을 할 당시 선관위는 지금과 다르게 투표참여를 적극홍보하였고, 그 결과 1/3이상이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하여 4개 자치단체장과 20여명의 기초의원의 자리가 없어졌다"며 "선관위의 지금의 자세는 소환대상자가 주장하는 개함불발을 통한 소환회피에 동조한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원들은 마지막으로 "평생을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하셨다"며, "민주도민으로서 행동해야 할 최소한의 기본은 소환대상자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민주국가의 국민기본권인 참정권을 적극 행사하는 것"이기에 "민주주의 원칙을 재확인하는 소중한 기회에 빠짐없이 참여하여 주시라"고 호소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

 

민주당원들의 기자회견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지자이자 제1야당 당원으로서의 자존심 회복 선언이었다. 내용의 경중에 상관없이 김대중 대통령 서거를 아전인수 격으로 이용해서 소환정국을 벗어나고자 시도했던 김태환 지사에 대한 분명한 반대 입장이 담겨 있다.

 

그 외에도 이날 제주에서는 20·30대 젊은 유권자들이 모여 '2030유권자 9015명 주민소환투표 참여선언 참가자 일동' 명의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기신 '행동하는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말은 민심을 외면하는 독재 권력을 국민들이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 심판해야 된다는 주문이자 호소"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제주를 사랑하는 20·30대의 젊은 유권자들은 반드시 이번 주민소환투표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농어민들도 시민들에게 주민소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24일 오전 제주농어민회관에서는 농어민 9천 여 명의 명의로 '주민소환투표 참가 1만 농민 선언'이 발표되었다.

 

이날 참가자 대표들은 선언문을 통해 "법으로 보장된 주민소환제도는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한 방편"이라고 규정하고, 이런 법이 김태환 지사의 투표불참 유도로 어려움에 쳐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법과 제도의 상실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오게 될 것이며, 한 번 선출된 정치인이 자신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권력을 남용하더라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게 된다"면서 "정치적인 계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결 같이 도민을 위해 지역공동체를 발전시킬 도정의 수장을 원하는 마음으로 주민소환투표에 참여하자"고 촉구했다.

 

주민소환투표를 앞두고 유권자들 사이에 바람이 서서히 불어오고 있다. 적어도 24일 하루 동안 열린 수차례 기자회견만으로도 투표운동기간을 '조용히' 여론의 무관심 속에 넘어가고자 했던 김 지사의 의도에 적잖은 타격이 가해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금 감지되는 이 바람이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날지, 진짜 거대한 태풍으로 발전할지 두고 볼 일이다.


태그:#주민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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