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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서울시청앞 광장에 마련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분향소에 영정사진이 모셔지고 있다.
 19일 오전 서울시청앞 광장에 마련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분향소에 영정사진이 모셔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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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DJ를 가리켜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라고 칭송한다. 18일 자 <뉴욕 타임스>도 DJ의 서거 소식을 전하며 '김대중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에 버금가는 민주화의 거목'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평가가 합리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물론 넬슨 만델라는 세계적으로 탁월한 인물이다. 그는 남아프리카의 인권 지도자로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장기간 옥고를 치른 끝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인물로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인종 차별이라는 시대의 괴물과 맞서 싸웠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DJ 역시 사형언도를 받고 옥고를 치렀다. 특히 그는 차량테러와 납치 그리고 가택연금과 망명 등 보통 정치인으로서는 어느 것 하나도 감내하기 힘든 고난을 두루 겪었다. 그런데 이 모두가 자신의 영달과는 무관한 이 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서였다.

그는 매카시즘과 지역패권주의라는 시대의 괴물과 맞서 싸웠다. 그리고 그는 최초의 정권교체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하던 IMF 환란을 극복했다. 아울러 그는 민주주의를 몸소 실천한 데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 지도자로서 민족 화해를 성사시켰다.

이렇듯 DJ의 수난은 세계의 어떤 저항가보다 혹독했으며, 그의 성취는 어떤 국가 지도자보다 풍성했다. 이런 점에서 DJ를 넬슨 만델라에 필적시키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서구인의 시각일 따름이다. 만약 순서를 바꾸어 넬슨 만델라를 '아프리카의 김대중'이라고 한다면 나는 거기에는 기꺼이 동의할 수 있겠다.

우리에게는 이런 인물을 제대로 예우하여 보낼 의무가 있다. 고인에 대한 추모나 애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화해나 용서를 거론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를 진정으로 추모하고 정녕 화해와 용서를 바란다면 우리는 그를 온전히 보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 세 가지 일이 반드시 관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국장이 필요한 이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18일 밤 서울 시청광장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의 임시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분향하고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18일 밤 서울 시청광장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의 임시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분향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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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60여 년에 이르는 동안 대한민국은 여러 대통령을 배출했다. 이승만에서 노무현에 이르기까지 그들 나름대로의 공과가 있었다. 하지만 '저항과 성취'라는 양면에서 DJ만한 업적을 이룬 지도자는 없다. DJ는 저항하면서도 과격해지지 않았으며 성취를 이루면서도 교만해지지 않았다. 따라서 그를 '전직 중의 하나'로 치부하는 것은 전혀 온당하지 않다고 본다.

한국인들은 제국주의 침략과 분단으로 인한 전쟁 그리고 군부독재의 시련을 겪었다. 이러는 사이 한국인들에게 '자기 것의 우월함'을 보지 못하는 경향이 생겨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백범 김구가 40년 식민지시대를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인물이라면 DJ는 60년 분단시대를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인물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런 인물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자주 나오는 것이 아니다.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DJ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는 것에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형평성'을 고려하여 난색을 표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구실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미 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도사조차 '전직 대통령의 형평성'을 이유로 가로막은 바 있다. 추도사나 장례 형식처럼 개인이 주체가 되는 일에 일률적인 형평성을 따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이미 이승만· 윤보선 대통령은 유족이 원하는 대로 가족장, 최규하·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장을 치렀다. 이로 보아 전직 대통령들의 장례는 유족의 의견이 주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DJ의 유족은 국장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 요구에 조금도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도 국장으로 치러졌다. 여기에 전직과 현직의 차이를 내세우는 논리 역시 옹졸한 변명처럼 들린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면 누구나 전직인 것이다. 게다가 DJ는 박정희처럼 일본군인 출신도 아니고 장기집권을 위해 독재를 하지도 않았으며 엽색 스캔들 따위도 남기지 않았다.

조갑제나 김동길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면 김대중이 박정희보다 못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터이다.

DJ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인물이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그의 서거를 앞 다투어 애도하고 있다. 장례를 국장으로 치러야 외국의 공식적인 조문 사절이 올 수 있다. 또한 국민들은 이런 위대한 인물을 보내는 날 하루를 쉬면서 그를 추억하고 싶어 한다.

마침 한승수 국무총리는 "정부는 고인에 대해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어 장의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최대한의 예우란 무엇인가? 그것은 장례형식을 격상하고 유족이 소망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라고 본다. 한 총리의 발언이 식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둘째, 김정일 위원장은 조문단 보내 예를 표해야

지난 2000년 6월 13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과 직접 영접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역사적인 악수를 하고 있다.
 지난 2000년 6월 13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과 직접 영접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역사적인 악수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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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별세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은 끝내 조문단을 보내지 않았다. 조문은커녕 조문단을 보내자는 안을 제기한 이부영 의원 같은 이는 <조선일보> 등의 무자비한 매카시즘 공세에 타격을 입었다. 원수도 조문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이란 점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은 실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최초로 정상회담을 했다. 이것은 그의 부친 김일성 주석이 살아생전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이었다. DJ가 아니었더라면 누가 평양으로 가서 그를 만났겠는가? 게다가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약속했던 남한 답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복잡한 문제가 개입되어 있을 터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는 DJ에게 최소한 도의적인 채무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은 최고위급의 조문단을 파견하는 것이 도리라고 본다. 아마 DJ는 북한 조문단의 문상을 무척 기꺼워 할 것이다.

'죽음은 모든 것을 녹인다'는 말이 있다. DJ의 서거를 계기로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마련된다면 누구보다도 고인이 응당 반가워할 것이다. 청와대도 "북한의 조문을 반대하지 않는다" 정도로 소극적으로 임하지 말고 "조문단 파견을 원한다. 그것은 고인은 물론 남한 국민도 바라는 일이다" 정도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북한의 조문이 꼭 실현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셋째, DJ에 대한 편견과 음해 종식돼야

김대중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김대중평화센터 주최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에서 '6·15로 돌아가자!'(Let's Return to 6.15)의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김대중평화센터 주최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에서 '6·15로 돌아가자!'(Let's Return to 6.15)의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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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는 이미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4대국한반도평화보장론'이나 '3단계평화통일방안'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정책들을 제시했다. 1972년 그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주장들은 이후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과 6자회담 등으로 현실화되었다.

이런 선견지명 때문인지 그는 용공주의자라는 음해에 시달려야 했다. 민주화를 두려워하거나 통일을 원하지 않는 수구세력들은 그의 주장을 부풀리거나 날조하여 그에게 '좌빨'이라는 굴레를 씌웠다. 여전히 조갑제처럼 한심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사람도 아직 있다. 조갑제는 고인이 전두환에게 받은 사형선고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식의 궤변을 또 늘어놓았다.

또한 최근까지도 한나라당 의원들은 걸핏하면 DJ의 비자금을 거론하곤 했다. <중앙일보> 문창극 같은 이는 병상에서 사경을 헤매는 그에게 비자금을 밝히고 죽으라는 식의 저주의 언사를 퍼부었다. 증거 없이 사람을 음해하는 작태는 DJ가 아니더라도 더 이상 방관되어서는 안 된다. DJ를 음해했던 무수한 정치인과 언론인들을 비롯하여 이에 휩쓸린 나머지 그를 오해했던 모든 사람들이 서거를 계기로 그를 바로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태그:#디제이, #김정일,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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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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