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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제 모교에서 연례행사로 펼쳐진 광복절기념 체육대회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올해로 33회째 열리는 행사를 앞두고 내년 폐교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즉시 관할교육청으로 달려갔습니다. 3년 전 60여 명이던 학생수가 올해 22명으로 줄어든 상태라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주민들도 몇 가지 조건부로 폐교에 동의했다는 겁니다.

 

전남 고흥군 포두면 송산리에 자리잡은 송산초등학교. 해방을 앞두고 개교한 제 모교는 올해 60회 졸업생을 배출했고 광복 64주년과 같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61회 졸업생이 마지막 졸업식을 치르고, '회갑잔치'를 치르며 문을 닫게 됩니다. 이미 1읍·면 1학교 정책이 시행된 상태이지만 용케도 살아남았다가 이제 그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3개리 10여 개 마을의 어린 꿈들이 이곳에서 추억을 만들었고 1970년대 중반 또 다른 학교가 개교해 분가되었다가 다시 합쳐졌지만 42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특별검사 1호 부천성고문사건 공소유지담당변호사와 제3대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조영황 변호사가 1회 졸업생입니다.

 

우리는 초등학교 졸업동기들을 서로 '동창'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냥 '고향친구'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어려서부터 가깝게 지내고 그 우정을 계속 유지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고향친구'들에게 문자로 폐교소식을 알렸습니다. "폐교를 막아야 한다"는 친구부터 "고향의 구심점인데 폐교되면 앞으로 어떡하냐?"고 걱정하는 친구까지 그날 휴대폰이 계속 시달렸습니다. 먹고살기 바쁜 친구들은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기도 하지만.

 

지난 15일 광복 64주년을 기념해 '송산학구체육대회'가 열렸습니다. 폐교소식에 안타까워하던 선배들이 동창회를 겸해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많이 참석했습니다. 덕분에 반가운 선배들, 기억도 아련한 대선배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함께 학교를 다닌 선배들은 "어느 마을 아무개입니다"라고 인사하면 얼른 알아차릴 정도입니다.

 

제가 나이 든 것처럼 그 선배들도 세월에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늙어(?) 갔습니다. 그래도 옛 모습은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재경동문들과 고향을 지키며 아쉽게 폐교를 결정한 선배들까지 모여 설명회도 가졌습니다. 모두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지만 대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폐교되면 관리학교인 면소재지 초등학교에는 10억원 가량이 지원된다고 합니다.

 

그 예산이 폐교에 지원될 리는 만무하지만 어떻게든 교사와 학생들이 없어도 지역주민들의 터전으로 만들어 보려는 계획은 어쩌면 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날 휴가차 고향으로 달려온 친구들도 있어 모처럼 즐거운 만남은 대낮부터 술자리로 이어졌습니다. 동문들과 고향주민들까지 500여 명이 자리를 채웠고 마을대항 배구경기와 윷놀이 등이 펼쳐졌습니다. 한 잔 취한 뒷풀이는 노래자랑과 연예인 공연으로 이어지며 선후배가 한낮의 더위를 잠시 잊은 채 잊지 못할 추억의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승용차에서 잠시 쉬다가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눈을 뜨니 캄캄한 밤입니다. 연극이 끝나고 쓸쓸한 무대처럼 텅 빈 모교교정은 이날 따라 더욱 적막했습니다. 도시와 가까운 학교는 폐교되더라도 다양하게 활용되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농촌의 폐교는  '폐가'로 변합니다.

 

70년대 이전 개교한 학교는 대부분 지역주민들이 땅을 기부해 설립한 학교가 많습니다. 후학양성을 위해 기꺼이 내놓은 땅은 이제 다시 되돌려줘야 합니다. 기부목적이 끝났다면 당연히 돌려줘야 하지만 교육당국은 학교에 심어진 나무 한 그루까지 비싼 감정평가를 해서 매각하게 됩니다.

 

4000여 명의 꿈이 깃든 학교라서가 아니라, 폐교의 아픔을 보상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농촌사회의 구심점이 되었던 학교는 그 용도가 폐기되면 다시 주민들에게 돌려줘야 마땅합니다.

 

폐교를 다시 주민들의 문화센터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경쟁과 효율을 앞세운 정부 정책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보상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내년에는 잡풀로 덮인 폐교에서 선후배들이 만나고 축제를 벌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태그:#고흥, #나로호, #송산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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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어용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세월호사건 후 큰 충격을 받아 사표를 내고 향토사 발굴 및 책쓰기를 하고 있으며,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인생을 정리하는 자서전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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