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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1일 서울시는 대규모의 대중교통개편을 단행했다. 버스노선개편, 중앙버스전용차로 도입 등 다양한 변화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것은 버스와 지하철의 운임을 통합시킨 것이다. 즉 지하철과 버스를 무료로 환승할 수 있고, 요금은 이용한 거리만큼만 내게 하는 '통합거리비례제'가 도입된 것이다.

현재 대중교통요금제도에 따르면 총 5회 동안(4회 환승) 지하철과 버스를 자유롭게 갈아탈 수 있다. 갈아탄다고 해도 기본요금이 추가되지 않는다. 무료환승은 버스~지하철~버스, 지하철~버스~지하철, 버스~버스가 모두 가능하다. 그런데 이 중에서 유일하게 안 되는 것이 바로 지하철~지하철이다.

즉 지하철역에서 나온 후, 다른 지하철역에 들어갈 경우에는 무료환승이 유지되지 않으며, 기본요금을 새로 내야 한다. 지하철~지하철간 환승이 안 되는 이유는, 지하철은 어차피 내부적으로 환승역에서 환승통로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지하철역 바깥으로 나와서 환승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특정한 경우에는 이것이 문제가 된다.

잠실역 환승통로의 모습(가운데)
 잠실역 환승통로의 모습(가운데)
ⓒ 서울도시철도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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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지하철~지하철 환승을 불허하는 이유는 환승역에 환승통로가 있기 때문인데, 실제로는 환승통로가 없는 환승역이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지난 7월 1일 개통된 경의선 전철 서울역(서부역)과 기존 1~4호선 지하서울역이다. 이 둘은 위치도 비슷하고, 이름도 같지만, 철도 서울역을 사이에 두고 정반대에 있는 관계로 환승통로가 없다.

서울역의 두 전철역, 왼쪽이 1-4호선 지하서울역, 오른쪽이 경의선 서울역
 서울역의 두 전철역, 왼쪽이 1-4호선 지하서울역, 오른쪽이 경의선 서울역
ⓒ 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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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례는 7월 24일 개통된 서울지하철 9호선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9호선 노량진역과 1호선 노량진역 사이에도 환승통로가 없다. 환승통로는 1호선 노량진역의 민자역사가 완성되면 생길 예정인데 아직 공사 중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소프트환승'이다. '소프트환승'이란 환승통로라는 하드웨어를 이용한 기존의 환승에 상대되는 말로, 환승통로라는 하드웨어 없이 요금 체계라는 소프트웨어의 수정만으로 가능한 환승이라는 의미이다.

'소프트환승'이 가능한 역은 지하철~지하철간 환승이 가능하다. 즉 지하철역에서 나왔다가 다시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더라도 기본요금이 추가되지 않는다. 버스~버스 환승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9호선 노량진역의 '소프트환승' 안내문
 9호선 노량진역의 '소프트환승' 안내문
ⓒ 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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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설명한 서울역과 노량진역에서는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서, 현재 '소프트환승'이 시행되고 있다. 9호선은 개통 당시부터 '소프트환승'을 시행하였으며, 서울역은 7월 22일부터 시행하였다. 따라서 환승통로는 없지만, 지하철끼리 환승이 가능한 것이다.

'소프트환승'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환승통로의 건설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경의선 서울역은 낮 시간에 1시간에 한 대 꼴로 매우 뜸하게 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그런데 1~4호선 서울역을 연결하는 환승통로를 무리하게 만들 경우 건설비에 비해 이용객이 너무 적어 경제성이 떨어진다.

경의선 전철 서울역의 모습. 낮시간에는 1시간에 1대씩만 매우 드물게 열차가 운행된다.
 경의선 전철 서울역의 모습. 낮시간에는 1시간에 1대씩만 매우 드물게 열차가 운행된다.
ⓒ 코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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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역도 마찬가지로서, 현재 무리하게 환승통로를 지어놓을 경우, 향후 1호선 노량진역 민자역사 건설시 철거를 해야 하므로, 중복투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소프트환승'을 시행하면 막대한 환승통로 건설비 없이도 환승이 가능해지므로, 예산절감이 가능하다.

'소프트환승'의 또 다른 장점은 주변 역세권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지하철역 환승통로는 그냥 보행자용 터널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없이, 그냥 지하를 걷기만 하는 것뿐이라, 환승객이라는 유동인구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단순한 보행자용 터널에 불과한 기존 지하철 환승통로 (사진은 동작역)
 단순한 보행자용 터널에 불과한 기존 지하철 환승통로 (사진은 동작역)
ⓒ 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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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프트환승'을 통해서 승객들이 외부로 나와서 환승을 하게 된다면, 기존 지하철 역 주변에 있는 상업시설에게 유동인구 증가라는 큰 효과를 줄 수 있다. 지하철역에서 나온 뒤 30분 안에만 상대 지하철역에 다시 들어가면 되므로, 중간에 편의점이나 약국에 들러 물건을 사는 등의 간단한 활동은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현재 노량진역 부근은 순수 9호선 이용객뿐만 아니라, 지상을 이용하여 1~9호선간 '소프트환승'을 하려는 승객들로 유동인구가 크게 늘어났다. 따라서 이 승객들이 역세권 상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소프트환승'에는 단점도 있다. 첫째로 외부로 나와야 하므로 비를 맞거나 햇볕을 쬐이는 등, 환승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1호선 노량진역의 경우, 개찰구가 지상 2층에 있어서, 승객들은 9호선 지하에서 나와 지상 2층에 올라갔다 다시 지상 1층으로 내려가야 하는 불편도 생긴다. 환승통로가 있다면, 2층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렇듯 '소프트환승'은 대체적으로 동선이 좀 불편한 편이다.

향후 건설 예정인 9호선 노량진역의 환승통로 평면도, 아래가 9호선역, 위가 1호선 역이다
 향후 건설 예정인 9호선 노량진역의 환승통로 평면도, 아래가 9호선역, 위가 1호선 역이다
ⓒ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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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환승'의 또 다른 단점은 버스~버스 환승처럼 처리되므로 환승가능횟수가 1회 차감된다는 것이다. 환승통로를 이용한 지하철환승은 그렇지 않다. 아울러 소프트환승을 이용할 경우, 지하철 요금의 계산방식이 승객에게 불리해진다는 점도 문제다.

지하철 요금은 환승과 관계없이 무조건 최단거리로 계산된다. 환승통로를 이용하는 하드환승에서는 지하철 운영기관이 승객의 환승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환승과 관계없이 승객이 최단거리를 이용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프트환승을 할 경우 환승을 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소프트환승'역에서 이용거리가 다시 계산된다. 결국 '소프트환승'이 하드환승에 비해 요금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드환승과 소프트환승의 지하철 요금계산거리 비교
 하드환승과 소프트환승의 지하철 요금계산거리 비교
ⓒ 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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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요금은 어떻게 계산되나? - 환승과 관계없이 무조건 최단거리로 계산


최적경로와 최단경로의 비교. 최단경로가 비현실적이라도 요금은 최단경로로 계산된다
 최적경로와 최단경로의 비교. 최단경로가 비현실적이라도 요금은 최단경로로 계산된다
ⓒ 서울메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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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요금은 승객에게 유리하도록 항상 최단거리 기준으로 계산된다.

출발역이 종로5가, 도착역이 방배역인 경우 요금은 1000원이 나오는데, 이 요금은 최적경로인 (종로5가-서울역-사당-방배: 15.2km)로 계산된 것이 아니다. 최단경로인 (종로5가-동대문-동대문운동장-청구-약수-교대-방배: 14.5km)로 계산된 것이다. 최소환승경로로 계산할 경우 1100원이 된다.

최단경로는 환승을 5번이나 해야하기 때문에, 실제로 이렇게 이용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요금은 승객들에게 유리한 최단경로로 계산되는 것이다.

이렇듯 '소프트환승'이란 가까운 두 역 사이에서 개찰구 프로그램을 바꾸어 환승통로 없이도 무료환승을 유지해주는 신개념의 환승방법이다.

그 동안 서울~수도권에서는 '소프트환승'제도가 없었으나, 지난 7월 경의선 전철과 지하철 9호선 개통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으며,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환승통로 건설비를 줄이면서도 승객들에게 무료환승 혜택을 주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아울러 '소프트환승'역 주변 유동인구의 증가를 통해 역세권 발전까지 기대되고 있다.

노량진역 주변 역세권
 노량진역 주변 역세권
ⓒ (주)서울시메트로9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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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수도권에는 역 사이가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환승통로가 없어서 불편한 곳이 더 있다. 철도 청량리역 앞의 '1호선 지하청량리역'과 '중앙선 지상청량리역', 철도 용산역 앞의 '4호선 신용산역'과 '1호선 용산역' 등이 그런 곳인데, 이런 역들에도 '소프트환승'이 도입된다면, 환승통로 건설비를 들이지 않고도 승객들에게 환승편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용산역과 신용산역은 매우 가깝지만 환승통로가 없다
 용산역과 신용산역은 매우 가깝지만 환승통로가 없다
ⓒ 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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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범위를 넓혀보자면 '2호선 강남역'과 '9호선 신논현역', '1호선 동암역'과 '인천1호선 간석오거리역', '1호선 남영역'과 '4호선 숙대입구역'도 들 수 있다. 이들 역은 간격이 수백m로 멀긴 하지만, 같은 역세권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소프트환승'이 가능해지면 편리할 것이다.

공공교통이란 기본적으로 토목과 건축이라는 시설에 의존하긴 하지만, 그 운영체제는 매우 유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설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좋지만, 운영체계의 변경을 통해 같은 효과를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매우 훌륭한 것이다.

안전하고 튼튼한 환승통로 건설을 통하여 승객들에게 환승혜택을 제공하는 하드환승도 필요하겠지만, 건설비 없이 소프트웨어 변경만으로 승객들에게 조기에 무료환승혜택을 줄 수 있는 '소프트환승'도 꼭 필요하며 매우 중요하다.

덧붙이는 글 | 한우진 기자는 교통평론가, 미래철도DB 운영자(http://frdb.railplus.kr), 코레일 명예기자입니다



태그:#소프트환승, #지하철, #전철, #9호선, #코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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